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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Mar 31. 2024

대만 타이베이를 달려 보니..

달리는 데 코스는 역시 중요하다

   "아빠! 가까운데 어디 해외 한번 갔다 올까?" 이달 초 큰딸이 해외여행 한번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나는 가까운 곳으로 짧게 갔다 오자고 했다. 일본과 대만으로 압축되어 최종 행선지는 타이베이. 3박 4일의 일정으로 비행시간도 길지 않아 이웃 가듯이 비행기를 탔다. 중국에서 오래 근무하며 중국 전역을 다녔고 홍콩도 여러 번 갔었던 나는

 타이베이가 충칭의 도시나 홍콩 구시가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사위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데 더 의미를 뒀기에 어디를 갈까 그런 고민보다는 힐링의 시간이 되길 바랐고 바쁘게 직장 생활하는 딸과 사위도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나의 계획은 딱 하나 어디를 뛸까였다. 여행지에서의 달리기 계획만큼은 중요했다.


   이틀간 아침에 조깅만 했던 나는 셋째 날 도시를 크게 한번 달려보기로 했다(이틀간 있으면서 타이베이 도시가 달리기에 도로사정이 좋지 않고 특히 강을 끼고 달리는 코스가 없어 실망했던 차였다). 오전에 큰딸과 사위 그리고 아내와 나, 넷이 대만국립박물관을 다녀와 점심을 먹은 후 특별한 일정이 없던 오후, 딸과 사위는 호텔수영장으로 아내와 난 호텔방에서 쉬고 있었다. 아내는 잠깐 낮잠에 빠졌다. 무료하던 나는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아내 몰래 살짝 방을 빠져나왔다. 언제나 출발의 기분은 좋다. 미지의 세계를 두 발로 달린다는 기분. 온도는 28도.

   타이베이 시내는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왔다 갔다 하며 천천히 달렸다.

자전거도로 및 인도

   1.5km 달려 화산1914창의문화원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대만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었다. 지금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많은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곳이다. 토요일 오후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괜히 안으로 들어가 군중의 무리 사이로 뛰었다. 예술과 젊음, 그리고 마라톤. 전혀 연관 없는 단어를 얽어맸는데 어색하진 않다.

화산1914창의문화원구

   다음 목적지는 중정기념관. 장개석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달리다 보니 오토바이가 스타트라인에서 출발을 기다리듯 신호등에 서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시내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달리며 감흥이 크게 와닿지 않은 건 달리고 있는 도로(인도)의 환경 때문인 거 같다. 그만큼 길에 붙어 달리고 있다. 오토바이의 굉음과 매연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보며 달리는 것은 결코 달리기에 좋은 코스라고 말할 수 없다. 인도에 자전거 도로 표시가 없는 곳은 그만큼 인도 폭이 좁아 더 조심해서 달려야 했다. 한참을 달려 중정을 끼고 쭉뻗은 인도가 눈에 보여 빠르게 그곳까지 달려간 것은 지금 달려온 도로가 그다지 좋은 기분으로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중정기념관 담벼락

   중정기념관은 타이베이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우리도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맨 처음 찾은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4.5km를 달려 중정기념관 광장에 서 있다. 광장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나왔다. 민소매 차림에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여행자는 나 한 사람뿐. 누구 눈치 볼 거 없이 혼자 잘난 듯이 뛰는 모습이 광장의 풍경과 조화롭지 않은 건 맞는 거 같다.

중정기념관

   중정기념관을 지나 총통부까지 가는 길은 그나마 달리기에 좋은 코스였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은  총통부 건물.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모방해 1914년 개장한 도쿄역과 비슷한 느낌이라는데 일본 식민지시절에는 대만총독부 청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관에서 주는 느낌이 잠깐 유럽의 어느 도시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식민지 역사의 산물인걸. 총통부 건물을 앞에 두고 우회전하여 시먼딩 방향으로 뛰었다.

총통부

   사실 오후 갑자기 뛰러 나오게 된 건 강가를 달리고 싶어서였다. (타이베이는 단수강이 시내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여행 오기 전 타이베이 달리기 계획을 세우며 단수강변을 한강변의 모습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단수강변은 강변을 한강변처럼 꾸민 공간도 극히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걸어서 강변으로 진입하는 길조차 찾기 어려웠다). 구글 지도를 보며 강변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타이베이의 명동이라는 시먼딩을 지났다.

시먼딩 거리

   여기서 강변까지는 멀지 앉은 거리다 지도상으로는. 그런데 강변이 가까이 있는 거 같아 계속 달리는데 번잡한 길뿐이다. 사람이 진입하는 길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인도는 가게 앞 내놓은 물건들 때문에 달리기조차 불편했다. 그렇다고 도로로 달릴 수도 없다. 인도와 접한 차선은 오토바이가 수없이 달리기 때문이다.

옛날을 기억하며 달리는 길

   결국 나는 강변으로의 진입을 포기해야 했다. 이렇게 길이 안 나오는 거라면 한강변과 같은 공원이나 자전거도로가 있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결국 이번 타이베이 여행에서 나는 강변 근처를 가보지도 못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버스정류장의 인도를 지나칠 때는 걸어서 사람 사이사이를 빠져나왔다. 사실 이런 게 사람 사는 모습이긴 하다. 달린다고 나왔다가 좀 걷는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다. 길거리에서 삶을 배우는 것도 내가 달리는 이유 중 하나니까.

타이베이 버스정류장 모습

   타이베이 시내의 도로는 오래전 조성되었는지 가로수가 구척장수처럼 열을 지어 아름답다. 어떤 나무는 몸통의 꽈배기 모습이 이채롭다.

시내 가로수

   호텔에 도착하니 땀에 흠뻑 젖었다. 도로 바닥을 잘 살피며 달려야 했기에 눈으로 담는 풍경이 적은 게 아쉬웠다. 하지만 최소한 10km 달렸으니 큰 짐을 덜은 듯했다. 그렇다, 어디 도시를 가든 10km는 달려야 마라톤 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오늘 저녁은 딸과 사위, 아내와 함께 딘타이펑에서 식사 예정이다. 다양한 딤섬과 우육면, 단단면 그리고 대만 맥주. 거기에 평소 말이 거의 없는 사위와 대화를 곁들여서. 그래! 우리 사위 딸 고맙다,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두.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위와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하는 지금 타이베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타이베이 시내 달리기가 나에가족 간 정을 배가시켜 주는 듯했다.

시내 10km 달린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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