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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Mar 18. 2018

캄보디아에서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다

프놈펜에서의 첫 번째 달리기

  나는 지금 앙코르와트의 나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다. 3일 전 이곳에 왔다. “코00 단원”으로 파견되어 2년간 봉사할 예정이다. 내가 파견되어 근무할 곳은 프놈펜에서 360km 떨어진 태국 국경에 맞닿아 있는 “민쩨이”주에 있는 민쩨이 대학이다. 파견되기 전에 한국에서 8주간의 교육이 있었고 임지인 민쩨이에 가기 전 8주간을 프놈펜에서 교육을 또 받는다. 프놈펜에서의 교육은 주로 현지어 학습이지만 임지에서 일하기 전 알아야 할 캄보디아의 문화 역사 생활습관 등도 포함되어 있다. 외교부 산하단체에 속한 단원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빠르게 현지에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이곳에 오며 나는 캄보디아가 매우 더운 나라(연평균 온도 35도 이상)이고 1인당 GDP가 1,600$의 빈국인데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할 환경이 어떤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걱정은 더위와 좋지 않은 도로 사정일 테고 기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었다.

  3일 전 밤 11시(한국시간으로는 밤 1시)에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하루를 지내고 첫날 O/T를 마친 후 나는 제일 먼저 달릴 곳을 알아봤다. 어둑해진 저녁에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주변을 천천히 달리며 달리기에 환경이 어떤지, 캄보디아를 조금이라도 알며 달리는 구간은 어디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날 밤 나는 캄보디아 왕궁이 있는 중심가로 천천히 달려갔다. 어둡지만 발에서 느끼는 도로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특히 길가에 바짝 붙어 오토바이, 톡톡(오토바이 삼륜 택시?)이 무수히 지나가기에 주의하며 거의 걷다시피 하여 중심가까지 3~4km를 걸으며, 달려 봤다.

왕궁 인근의 독립기념탑

   프놈펜에서 달리기 조사 차 밤에 천천히 달리며 내린 결론은 밤에 달리는 것은 도로 사정이나 캄보디아 교통환경을 볼 때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프놈펜에 와서 처음 맞는 일요일 3일 차. 나는 어젯밤 자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며 프놈펜의 시내 곳곳을 두발로 디뎌보며 느껴보기로 했다. 6시 반에 일어났다. 어둠은 가시고 이른 시간이라 덥지는 않으니 첫 도전이 오히려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프놈펜의 아침 날씨와 공기는 매우 좋다.

숙소를 출발하는 나

  이미 핸드폰 맵으로 프놈펜 시내를 익혔고 종이 지도도 하나 장만하였으니 길을 잃고 달릴 걱정은 없다. 집 앞을 나서니 역시나 도로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인도는 가게에서 내놓은 상품이 점유하고 있고 도로 곳곳이 파이고 깨져 차도 갓길로 달리는데 오토바이와 톡톡, 그리고 차들과 같이 섞여 달리는 느낌이다. 다만 도로가 그러다 보니 모두들 속도를 내지 않고 달리는 게 그나마 다행다.

사람과 차가 뒤섞여서 가는 프놈펜 도로

  큰길로 나오니 그나마 차선이 넓은 데다 갓길이 있어 달리기에 나쁘진 않지만 주의를 요하며 달려야 했다

대형 차로 옆의 갓길

  이렇게 3.5km를 달려오니 저 멀리 이틀 전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보았던 독립기념탑이 보였다. 그 뒤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그 공원은 똔레샵강을 끼고 좌측으로 돌면 캄보디아 왕궁이 있고 그곳을 지나 1km 정도 더 가면 "왓프놈"이라는 조그만 언덕이 있는 공원에 닿는다. 그곳이 오늘 정식으로 뛰는 나의 첫 코스의 최종 목적지다.

한낮에 본 독립기념탑은 밤의 야경과 차이가 많다

  나는 독립기념탑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길게 공원으로 이어진 공원길을 달렸다. 여기서부터 강가까지는 약 1.3km, 집 근처 한강변을 달리며 느꼈던 강변 자연의 멋을 여기 똔레샵강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독립기념탑에서 똔레샵 강으로 향하는 공원의 노르돔 시아누크 국왕 동상

  조금 달리다 보니 좌측에 북한 대사관이 보였다. 깃발이 선명하니 금방 알 수 있다. 캄보디아 왕궁 인근에 있는 걸 보니 캄보디아 공산정권 시절에 북한과 친밀했던 관계를 대사관의 위치와 크기가 말해주고 있다. 나는 달려오며 러시아 대사관 앞도 지나왔다. 그 규모가 어찌나 큰지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린이대공원 크기와 같았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 근처에 있는 중국대사관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캄보디아가 지금 한창 개방 중이고 해외 자본을 유치 중이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상이 예전에 어느 정도였는지 그 나라 대사관의 위용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겠다.

인공기도 선명한 북한대사관.캄보디아 왕궁과 가장 가까이 있는 대사관이다

  드디어 똔레샵강에 도착했다. 강폭이 넓고 웅장함이 며칠간 캄보디아를 겉으로만 보고 느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강이 아기자기하고 정교하다면 똔레샵강은 광야이고 끝없는 물줄기였다.

이른 아침의 똔레샵강변
똔레샵강변으로 산책나온 가족들

  숙소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3.5km. 나는 한 블록 안쪽으로 돌아들어가 캄보디아 왕이 살고 있는 왕궁 방향으로 달렸다. 이곳은 정치 일번지이고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 도로나 공원이 잘 정돈되어 있고 달리기에도 아주 좋은 환경이다. 공원도 이어져 있어 숙소를 나오면서 땅을 쳐다보면 달려야 하는 수고는 안 해도 된다. 눈으로 주변을 관광하며 달려도 충분하다. 하긴 내가 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건강도 있지만 그보다는 달리며 눈으로 느끼는 자연인데 이제야 나의 눈은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 셈이다.

  한 블록을 돌아 나오니 저 멀리 왕궁이 보인다. 그 앞에까지 이어진 공원에는 캄보디아-베트남 우호 기념탑이 우뚝 서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한국과 일본처럼 앙숙인데 공원에 이런 탑이 있는 건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하지만 어떠랴. 싸우는 거 보단 서로 잘 지내는 것이 좋은 거니까.

캄보디아-베트남 우호탑. 저멀리 왕궁이 보인다

  왕궁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드는 외국 관광객들로 꽤나 붐볐다. 입장료가 10달러이니 캄보디아의 생활수준으로는 꽤나 비싼 편이다. 나는 오늘 뛰는 것이 목적이기에 왕국에 입장할 생각도 없었지만, 하려 해도 안된다.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은 입장이 안된다고 입구에  있었다. 다른 나라의 문화나 생활습관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지켜야 할 규범이다.

외국인 단체여행객. 중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나는 왕궁 주변길을 달렸다. 이 길은 차량도 안 다니고 산책 나온 캄보디아인(혹은 캄보디아인 여행객)도 많이 보인다. 왕궁은 담이 높아 안의 면적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인 건축양식을 띠진 않았다. 현재 왕궁에는 국왕인 "노로돔 시하모니"가 거주하고 있다. 이 왕궁은 1866~1870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것으로 프랑스 스타일에 캄보디아 전통양식이 어우러진 형태다. 왕궁 안의 벽화도 프랑스 화가들이 그렸다고 한다.

왕궁 앞 공원의 모습. 비둘기에서 평화를 연상한다.

  왕궁 주변을 천천히 달리는 모습을 보던 왕궁 경비대가 웃으며 인사를 하기에 나도 다가가 인사를 했다. 내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했더니 좋다며 모자를 다시 쓰고 복장을 다듬는데 표정이 너무나 근엄(?)하여

웃음이 나왔다. 사진기 앞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다 멋을 부리고 싶은가 보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왕궁경비대

  나는 오늘 달리며 프놈펜의 많을 것을 보고 느꼈다. 어느덧 시간은 7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목적지인 "왓프놈"을 향해 달렸다. 왕국에서 왓프놈까지는 1km 조금 넘는다. 프놈펜이라는 말은 곧 내가 닿을 왓프놈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펜"이라는 이름의 부인이 홍수에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온 불상을 건져 언덕(프놈)에 사원(왓)을 지어 극진하게 모셔 그 후 이 언덕을 프놈펜으로 불렀다.

  왓프놈으로 달리던 중간에 본 "happy new year"가 새롭다. 캄보디아는 새해를 쫄츠남이라 하여 매년 4/14~4/16이 캄보디아의 설날이다.

캄보디아의 설날을 알리는 아치

  단숨에 달려 왓프놈에 도착했다. 산을 좋아하는 한국사람이 보면 뒷동산이나 마찬가지의 낮은 언덕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 뜻을 더 깊이 새기는 것이 중요하지. 몇 계단 올라 정상인데 그곳은 캄보디아인들이 이곳을 성스럽게 생각한다는 걸 말해주듯 많은 사람들이 불상 앞에서 절하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순수에 경의를 표하며 잠시 묵상 후 내려왔다.

왓프놈과 오르는 계단

  왓프놈을 내려온 나는 오늘의 달리기를 마감했다. 이젠 왔던 길을 돌아가면 된다. 약 5.5km를 달려온 것인데 아침 태양이 떠오르니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톡톡"을 타고 돌아갈까?? 길가에서 무료하게 손님을 기다리는 "톡톡"의 유혹이 잠시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캄보디아 대중교통수단 "톡톡"

  나는 뛰어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뛰었다. 왔던 길 되돌아가는 거라 볼 건 다 봤고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니 빠르게 뛸 수밖에 없었다. 올 땐 길도 섧고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하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지만 이젠 뛰어 돌아가는 목표 하나밖에 없으니 오로지 뛰는 일념으로 가면 된다. 더위를 잊고  빨리 뛰었다. 덥다 덥다 하면 더 더운 거니까.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며 나는 오늘 두 발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뛰었기에 샅샅이 볼 수 있었고 두 발과 눈으로 캄보디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광객들이 프놈펜에 오면 관광코스로 잡는 곳을 두 발로 느끼며 뛰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나의 달리기는 역시 캄보디아에서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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