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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파이 Jun 19. 2022

생일 다음날 푹푹 떠먹는 케이크

일요일 아침, 넓은 접시에 반 즈음 남은 케이크를 올리고 포크를 준비했다. 뜯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신선한 원두 봉지를 열고 커피 머신으로 와르르 커피콩을 쏟아부었다. 나의 몫으로 따뜻한 물과 섞을 에스프레소 샷, 남편 몫으로 얼음 조각을 담은 컵에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어제부터 기다려 온 시간이다.


케이크를 양껏 푹푹 떠먹을 준비 끝. 생일 다음날 케이크를 먹을 때 나이프는 필요 없다. 가지런한 가장자리를 신경 쓰며 케이크를 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고른 올해의 생일 케이크는 이전과는 좀 다른 롤케이크 두 가지였다. 촉촉한 빵 안에 하얀 생크림 가득, 그 안에 콕콕 박힌 애플망고와 딸기.


생일날 잘라먹는 케이크도 맛있었지만 다음 날이 하이라이트였다. 완벽한 생일을 보내고 예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커피를 테이블에 올리자마자 포크로 케이크를 한 움큼 떠서 입에 넣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생크림과 과일, 크림을 완전히 삼키기 전 쌉싸름한 커피 한 모금. 케이크가 절반 씩만 남은 것이 아쉬웠다. 두 배는 먹을 수 있는데!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도 평소에 먹는 것과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법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간식으로 먹을 바나나를 자주 사다가도 아기 백일상을 꾸밀 때는 백화점에서 흠집 하나 없는 프리미엄 바나나를 고르게 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간극을 좁혔다. 작년에는 S호텔에서 비싼 녹차 케이크를 사고, 재작년에는 딸기 케이크가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시간 맞춰 케이크를 픽업했지만 이번에는 평소 좋아하던 체인점의 생크림 롤케이크를 생일 당일에 배달 앱에서 주문했다. 맛있는 케이크이기는 하지만 왠지 둥그렇고 커다란 케이크가 아닌 롤케이크를 생일 케이크로 한다는 것이 다소 신경이 쓰였고, 평소에도 먹는 케이크를, 직접 픽업하는 수고와 설렘도 없이 배달해서 먹는다는 것도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이 한 줄로 생각을 정리하고 토요일 아침 배달 앱을 켰다. 다행히 두 가지 롤케이크 모두 재고가 있었다. 생일이니까 두 가지 롤케이크를 하나씩, 두 개나 시켰다는 점이 특별한 점이었다. 롤케이크 두 개를 붙여 놓으니 위에서 보면 사각형 케이크 하나처럼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생일 케이크로 크림 케이크는 절대 고르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경험의 폭을 좀 더 넓혀 보고 판단할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생크림 케이크라고 접했던 것은 먹자마자 속이 울렁거리는 맛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식물성 크림으로 만들어진 케이크였던 모양이다. 당시는 하얀 크림 케이크를 다 생크림 케이크인 줄 알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생크림 케이크는 도저히 입에 맞지 않는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자발적으로는 절대 먹지 않았다. 어쩌다 하얀 크림 케이크를 먹어야 할 때면 크림은 싹싹 긁어내 한쪽으로 치워 두고는 케이크 시트와 과일만 먹었다.


동물성 생크림과 식물성 크림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먼저 접했던 것이 먼저였는지, 우연히 다시금 크림 먹기에 도전해 정말 맛있는 하얀 크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십 수년이 지나고 20대가 되어서야 생크림에 대한 나의 오해는 풀렸다. 속이 터질 듯한 크림빵, 속을 크림으로 가득 채운 롤케이크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생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오해를 풀고 30대의 생일에는 시트보다 생크림의 비율이 더 높은 케이크를 직접 골라 먹기에 이른 것이다.


케이크 모양을 유지할 필요 없이, 보관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푹푹 떠먹고도 아쉬운 마지막 한 입. 전 날 도착한 선물이 포크를 내려놓는 아쉬움을 덜어 주었다. 핸드워시, 치킨, 조명 등등의 선물 사이, 메신저로 친구 한 명이 생일날 먹은 딸기 롤케이크를 하나, 다른 친구 한 명이 애플망고 롤케이크를 하나 보내왔다. 덕분에 생일날 먹은 케이크를 똑같이 하나씩 더 먹을 수 있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며 여기저기 치이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를 챙겨야 마땅한 시간’에 민감해졌다. 생일날은 내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니 오히려 완벽해야 한다는 가벼운 강박이 생겼다. 예쁜 케이크와 꽃다발과 수 십 장의 사진이 남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케이크를 더 마음 편히 먹다니.


올해에는 평소 먹는 케이크를 생일 케이크로 고른 것으로 이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졌으니 내년에는 조금 더 성장해 볼 생각이다. 무엇이든 마음이 시키는 케이크를 먹고, 깔끔하게 자른 완벽한 구도의 케이크 사진이 아니더라도 맛있게 먹은 사진을 남겨 봐야지. 다음날보다는 생일에 행복한 것이 좀 더 이 날을 축하하는 취지에 맞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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