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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Jul 04. 2024

손님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

고기리막국수


어느 날, 가격 인상 후에 저지선 없이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매장의 담당자가 찾아왔어요.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묻더라고요. 안타깝게도 가격 인상에 대해 별도 안내도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가격이 오르니 더 이상 사서 먹을 이유가 없어진 매장이었죠. 그렇다고 가격만 문제였을까요? 어떤 소비자는 단순히 감정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좀 잘 팔리더니 금방 가격 올리는 거 봐" 하고 말이죠. 누군가는 조만간 양과 질이 줄어들지 않을지 지레짐작하기도 해요.

그 자리에서 담당자에게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별한 포스트는 아니었어요. 단지 깨끗한 주방 사진이 올라가 있는, 매주 정기 화요일 휴무에 국숫집 사람들은 쉬지만 국숫집은 쉬지 않는다며, 화요일마다 오전 7시부터 청소전문업체를 통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을 공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고객에게 돈을 지불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일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원리를 따져보면 그게 전부라고 말해주며, 가격 인상에 대한 사과의 글과 품질에 대한 약속을 안내해 드리자고 제안했어요.

그 이후 매출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추가로 조언해 준 점도 없었는데, 매장 스스로 무언가를 더 추가해서 개선해 나갔어요. 청소 후 깨끗해진 주방 사진을 올리거나 주문해 주신 고객을 위한 고객 감사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손님과의 접점을 늘렸습니다. 어느 날은 담당자가 저에게 새로운 걸 배웠다며 얘기했어요. "우리의 서비스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에 고객이 만족하는 걸 느껴요" 하고 말이죠.


손님이 떠난 자리를 유심히 살펴보아도 그들이 남기고 간 게 무엇인지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가끔씩 우리에게 피드백을 주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무엇 하나 말하지 않고 떠나버리거든요. 그렇게 뒤늦은 원인 파악을 하곤 합니다.

한편, 고기리막국수는 조금 다릅니다. 손님이 떠난 자리에 꽤나 많은 것들이 남아요. 브랜드 이름이 '고기리' 막국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시그니처 메뉴인 들기름 막국수를 출시할 수 있던 계기도, 들기름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법이 세상에 등장한 것도, 모두 손님이 고기리 막국수에 남기고 간 선물이었죠.




지역 맛집을 넘어 브랜드로



고기리막국수의 성공 스토리는 여러 채널을 통해 소개되었어요. '고기리'막국수라는 이름을 달기 이전, 막국수를 너무도 좋아하는 한 부부는 마을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외딴곳에서 막국수 가게를 엽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막국수 단일 메뉴를 팔며 점차 입소문이 돌았고, 부부끼리 먹던 들기름 막국수가 손님들에게 입소문이 퍼져 고기리막국수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죠. 수요미식회 출연과 코로나 기간을 거쳐 수용 인원과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들며 연간 30만 명이 방문하는 매장으로 발돋움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에서 배운 막국수 레시피로 시작해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간 고기리막국수의 이야기는 김윤정 대표의 저서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에 자세히 나와있어요. 이외에도 배달의 민족에서 운영하는 배민외식업광장 채널, EBS 비즈니스 리뷰 등에 출연하며 성장한 브랜드로서 업계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고기리막국수


지역마다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맛집은 하나씩 꼭 있어요. 가끔씩 그런 맛집을 찾아갔다가 '이렇게 많이 팔면 얼마나 벌까?'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씩은 해봤을 법하죠. 하지만 그렇게 잘되는 모든 가게가 사람들에게 꼭 브랜드로 비치는 건 아닙니다. 브랜드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고객 경험이 모여야 하거든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어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듯, 고객 경험에 브랜드 정체성이 잘 녹아있는 게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고기리막국수는 웨이팅이 긴,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지역 맛집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손님과 교환하며 브랜드 경험을 늘려갔죠. 김윤정 대표는 그 부분에 대해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단지 손님에게 늘 진심을 다한다고 설명해요. 그리고 그들의 경영 방식을 '진심 경영'이라고 정의합니다.


고기리막국수의 진심 경영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어요.


1장 설렘
- 장사는 손님이 오기 전부터 시작된다

2장 맞이
- 화려한 서비스보다 정교한 진심으로

3장 사이
- 손님과 주인의 ‘관계’가 ‘사이’가 될 때

4장 정성
- 음식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5장 여운
- 다시 찾게 되는 가게의 매력


오픈을 하기 전의 준비 과정부터 손님이 떠난 이후까지 순차적으로 써 내려간 게 고객여정지도와 비슷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인 내가 마치 고기리막국수의 손님이 된 것처럼 그들이 진심으로 준비한 동선을 어느새 따라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책의 초반 부엔 김윤정 대표가 오픈하기 전 매일 같이 지키는 루틴을 소개합니다. 손님의 시선으로 매장의 입구부터 걸으며 청소를 하거나 흐트러진 부분을 바로 잡는 일이죠. 장사가 시작되기 전 손님의 여정을 따라가며 오픈 준비를 할 때 느끼는 김윤정 대표의 설렘은, 마치 손님이 고기리막국수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장을 방문할 때의 설렘과 비슷합니다. 고기리막국수가 손님들과 라포를 쌓아가는 방식이죠. 그들만의 비결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습니다. 사실 누구나 따라 하고 실제로 많은 매장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단지 '진심 경영'이라는 고기리막국수의 경영 방식에 묶여있다는 게 큰 차이를 만들 뿐입니다.

다른 가게에서도 할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고기리막국수의 진심 경영의 예시를 조금 더 살펴볼까요? 항시 청결함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으로 매장에서는 흰 행주만 사용합니다. 웨이팅은 길지만 식사만큼은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 간격도 여유롭게 배치했죠. 사리 추가는 가격이 4000원이지만 막국수 한 그릇이 통째로 다시 나갑니다. 물막국수를 시켰어도 비빔막국수를 사리로 먹을 수도 있어요. 아기들과 함께 온 손님들을 위해 아기국수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화장실은 손님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머물다 가는 느낌이 들도록 건식으로 인테리어를 했어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매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시골의 작은 가게를 멀리서도 찾아주는 이유가 되었죠.




손님이 떠난 자리



고기리막국수도 하루에 한 그릇밖에 팔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막국수라는 메뉴가 계절에 맞지 않으니 떡국이라도 팔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막국수 가게 이전에 압구정에서 이자카야를 했던 김윤정, 유수창 대표는 80여 가지가 넘는 메뉴를 만들었습니다. 딱히 가게에 정체성을 찾지 못했죠. 가로수길로 상권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폐업을 결정한 당시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막국수만큼은 단일 메뉴로 운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에도 매출이 저조하면 잘한 결정이 맞는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었어요. 김윤정 대표의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게 만든 건 겨울철에도 막국수를 먹으러 찾아주신 손님 한 분 덕이었습니다. 한 겨울에도 먼 곳으로 막국수를 찾아주시는 손님에게 떡국을 드셔보라고 제안할 수 없었거든요. 막국수 전문점이 떡국을 팔기 시작하면 막국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겨울철에 막국수를 드시러 온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님이 떠난 그 자리에는 가게가 존재하는 이유가 남게 됐습니다.


김윤정 대표는 EBS 비즈니스 리뷰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 보면 꼭 남겨야 할 본질이 남는다'는 말을 남깁니다. 여기서 본질은 곧 가게의 정체성이기도 한데, 우리만의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하다 말하죠. 김윤정 대표가 정의하는 고기리막국수의 정체성은 '막 만들지 않은 막국수'입니다. 막국수라는 이름과 달리 막국수를 막 만들지 않았죠. 정갈하면서도 거칠지 않은 모양새에 메밀 본연의 맛을 끌어올린 막국수가 바로 고기리막국수입니다.


모양이 거칠거나 조악하지 않은 고기리막국수 | 사진: 네이버플레이스의 고기리막국수


'막 만들지 않은 막국수'라는 정체성에 고기리막국수의 경영 방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느껴지시나요? 고기리막국수를 손님에게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왜 남들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디테일이 고기리막국수에서는 특별하게 진심 경영으로 묶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면 고기리막국수라는 브랜드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브랜드의 완성은 소비자이다



고기리막국수의 성장을 지켜보면 소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브랜드를 기획하는 건 사장님이나 기획자가 할 일이지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는 결국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기리막국수의 예시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대표 메뉴이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도와준 들기름 막국수는 단골손님들의 시식에서 그 명성이 시작됐습니다.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정의되던 막국수 카테고리에 새로운 유형의 막국수를 소개할 용기를 내지 못하던 때에 단골손님에게 시식을 권하며 좋은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국수를 1/3을 먹고 육수를 부어 먹기'라는 들기름 막국수 맛있게 먹는 법은 실제로 손님이 먹는 방식을 따라 해 먹어본 결과물입니다. 원래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던 매장명도 고기리에서 받은 손님의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으로 고기리막국수로 재탄생할 수 있었죠. 이렇듯 고기리막국수라는 브랜드에는 손님들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있습니다.


고기리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 | 사진: 고기리막국수 김윤정 대표의 인스타그램 채널 @gogiri.gram


유독 고기리막국수의 손님은 떠나고 난 자리에 많은 걸 남기고 가는 듯 보여요. 보통의 가게에서는 피드백을 남기는 손님을 찾기 힘든 반면에, 고기리막국수의 성장에는 손님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이는 고기리막국수가 진심으로 손님을 대한다는 경영 방식에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더 깊게 파보면 고기리막국수에서의 손님은 매장을 만들어가는 주체이기 때문이에요. 이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 김윤정 대표가 쓴 책의 목차 중 하나입니다.


3장 사이: 손님과 주인의 ‘관계’가 ‘사이’가 될 때


우리가 손님일 때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매장의 이벤트 때문에 리뷰를 쓸 때 그 매장에 어떤 애정을 담아 메시지를 남기는 경우는 거의 없죠. 가끔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거나, 반대로 좋은 경험을 한 매장이더라도 그 매장에 애정 어린 피드백을 남기거나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는 경우도 없을 겁니다. 반면, 나의 친한 친구가 매장을 차렸다고 하면 조심스럽지만 어디가 아쉬운지 하나라도 더 얘기해주고 싶어 지죠. 김윤정 대표는 매체를 통해 자기를 소개할 때 '식당 하는 옆집 언니, 누나' 정도로 소개하곤 하는데 맥락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손님과 단순히 관계를 맺는 게 아닌,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어 하는 그 마음과 같이 말이죠.


홍성태 교수님의 정의에 따라 브랜드를 '소비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적 유대와 신뢰를 포함한 종합적인 경험'이라 했었죠. 브랜드는 필연적으로 소비자와의 관계, 소비자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고기리막국수는 손님이 매장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이해하고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을 원해요.

고기리막국수의 진심 경영은 어떤 매장이든 따라 할 수 있는 굉장히 기본적인 방식처럼 보이지만, 브랜드 완성의 핵심을 관통하는 경영 철학입니다. 브랜드의 완성은 결국 소비자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손님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이를 전략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고기리막국수의 사례를 보며 항상 느끼는 건, 무언가 한 끗이 조금 다릅니다. 김윤정 대표는 단지 손님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말과 함께 고기리막국수가 걸어온 스토리를 설명할 뿐이에요. 어쩌면 잘 다듬어진 스토리텔링의 힘일 수도, 김윤정 대표의 일관되게 겸손한 태도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브랜드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고기리막국수의 정체성에 그들이 손님을 마주하기 위해 준비한 사소한 디테일이 모여 고객의 경험이 만들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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