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시장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무슨 주제로 입을 뗄지 종종 고민하곤 해요. 단어가 추상적인 만큼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매출과 현금 흐름에 민감한 F&B 시장에서는 브랜드를 이상이나 허구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이해충돌과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브랜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피곤해하는 심정도 이해가 되죠. 그러다 보니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줄곧 '브랜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보는 시간이 됩니다. 추상적인 그림을 상세하게 정의해 가며 서로의 주파수를 조금씩 맞춰나가는 과정을 가져요. 같은 의견엔 공감하고 견해의 차이는 인정하다 보면 어느새 지식의 전달을 넘어, 지식의 공유를 위해 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그림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빗대어 표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느껴요. 매거진을 통해 여러 F&B 브랜드를 소개하게 된 계기도 이런 이유입니다. 직관적으로 대입해 볼 수 있는 대상을 살펴보며 브랜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사이트를 얻기도 합니다. 최근에 '2024년 안동국제탈춤 페스티벌'의 먹거리 콘텐츠 개발을 백종원 대표의 더본코리아가 맡는다는 뉴스 기사를 봤어요. 지역 축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백종원 대표와 더본코리아는 그동안 무수한 브랜드를 만들어왔죠. 그중에서도 지역축제라는 키워드의 중심이 된 '예산시장'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이번 예산 맥주 축제에는 사흘 동안 예산군 인구의 4배가 넘는 35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어요. 그만큼 예산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크다는 걸 확인한 셈이죠. '예산형 구도심 지역상생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예산시장의 변화 과정은 브랜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시입니다.
예산시장은 100년을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시장으로 오랫동안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사랑받으며 지역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어요.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지역 경제는 활기를 띠었죠. 그러나 수도권 집중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산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인구 감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예전의 북적이던 시장은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갔고,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예산시장은 생존을 고민하는 수많은 전통 시장 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2017년, 예산을 고향으로 둔 백종원 대표가 예산시장에 관심을 가지며 변화가 시작돼요. 더본코리아는 예산군과 협약을 맺고 예산형 구도심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시설을 현대화하는 것만이 아닌, 옛 시설물을 재활용하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시장을 되살릴 계획을 세워요.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는 일은 시설을 뜯어고치는 방식보다 훨씬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기에 관계자들의 우려를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장이 가지고 있는 본모습과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백종원 대표는 알고 있었죠.
전통시장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리뉴얼을 진행한 예산시장의 지역상생 프로젝트는 소비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과를 보여줍니다. 예산시장은 2023년 리뉴얼 이후, 2023년 12월 중순까지 약 300만 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하며 다시 활기를 띠었어요. 시장의 새로운 모습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예산시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서 인식되기 시작했죠.
브랜드의 의미를 찾으려는데 예산시장을 예시로 드는 건 조금 뜻밖이라 느낄 수 있어요. 예산시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호명이라던지, 때로는 기업명이 될 수도 있는 상업적인 이유로 탄생한 집합체라기보다 지역에 속해있는 시장, 즉 장소이니까요. 특히 우리나라의 외식업은 프랜차이즈의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여러 개의 지점으로 확장할 수 있는 형태를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적인 개념으로 브랜드를 정의해 보면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 이미지, 경험 등을 통한 소비자의 인식'을 브랜드라고 설명해요. 예산시장이 특별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소비자의 인식이 유독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백종원 대표가 이끈 예산시장 리뉴얼의 파급효과이기도 하죠.
예산시장의 변화는 단순한 물리적인 선에서 그치지 않아요. 지역상생 프로젝트는 예산시장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었고,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을 방문하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요소들과 현대적 편리함이 공존하는 예산시장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장소로 다가왔어요. 이는 예산시장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시장에서 느끼는 경험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게 된 것이죠.
브랜드의 핵심은 소비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고, 그 경험이 반복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에요. 예산시장은 백종원 대표, 더본코리아와 함께한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성공적으로 구축했습니다. 기존에 쇠퇴하던 시장은 지역 경제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심지로 재탄생했어요. 예산형 구도심 지역상생 프로젝트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지역 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됩니다.
예산시장이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산시장이 백종원이라는 영향력이 큰 브랜드와 만난 게 첫 번째 이유이지만, 거기에 더해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회적 명분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됐습니다. 각 지역의 인구 감소는 비단 예산군만의 문제는 아니죠. 지방 소멸의 시대로 가고 있는 지금, 어떻게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지역 불균형 문제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게 중소벤처기업부의 주요 사업 내용 중 하나입니다. 브랜드는 점점 사회적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어요.
'사회적 문제'와 '영향력이 큰 브랜드'라는 두 가지 요인에 '창의적인 해결법'이라는 마지막 요소를 더해주면 예산시장이라는 브랜드의 마법이 완성됩니다. 예산시장이 화제가 된 이유는 백종원이라는 브랜드의 명성뿐만 아니라 바가지 없는 가격 덕분이었어요.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잘 찾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청결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예산시장 프로젝트의 경우 특히 위생 관리에 신경 쓰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청결은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일 뿐, 전통시장을 찾을 이유는 되지 못하죠. 그래서 예산시장은 청결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가격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더합니다.
가격 경쟁력은 예산시장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되었어요. 소비자가 타 지역을 여행할 때의 경험을 따라가 보면 그 이유가 나옵니다. 여행을 왔으니 돈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여행지라서, 혹은 특산물이라서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 먹어야 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법하죠. 특히 지역 축제에 열린 음식 부스의 가격은 축제니까 사 먹게 되는 비싼 가격으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지불하지 않을 금액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가 하면, 사유지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외지 상인들이 "백종원 때문에 우리가 망하고 있다"며 비난을 하는 모습이 뉴스에 뜨기도 했어요. 소비자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예산시장은 이 부분을 개혁합니다. "특별한 장소에 왔으니 그만큼 지불해야 해"라는 지역의 메시지를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로 바꿔놓았어요. 위생관리를 통해 전통시장을 잘 찾지 않은 이유를 없애고, 가격 경쟁력을 통해 전통시장을 찾을 이유를 만들어주며 지역상생 프로젝트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습니다.
다시 돌아와 브랜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까요? 소비자의 경험으로 뚜렷한 브랜드가 되기까지 수많은 이해관계가 모입니다. 예산군에서는 지방소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고, 예산시장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싶었어요. 백종원 대표는 고향인 예산군이 눈에 밟혔고, 더본코리아는 지역개발사업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목표 삼았죠. 마지막으로 소비자는 언제나 그렇듯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각자의 이해관계는 '예산시장'이라는 단 한 단어로 모여 브랜드를 이뤄요.
브랜드란 그릇과도 같아요. 무엇을 담을지, 어떤 용도로 쓸지 설계해 그릇을 빚으면 잘 빚어진 그릇 위에 알맞게 음식이 담겨 아름다운 플레이팅을 이룹니다.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음식을 담게 되면 때로는 넘쳐 보이고, 때로는 빈약해 보이죠. 이렇듯 브랜드는 분명한 목적에 의해 태어납니다. 예산시장 지역상생 프로젝트처럼 사회적 문제 해결의 목적일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구현한 개인적인 목적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목적에 맞는 소비자 경험을 기획하고 브랜드의 정체성에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브랜드 안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모여있는 만큼 작은 빈틈으로도 공급자는 소비자를, 소비자는 공급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해요. 그럴 때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은 언제나 그렇듯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브랜드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브랜드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치를 품고 있어요. 예산시장과 백종원 대표의 협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활동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됩니다. 더본코리아는 예산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지역 축제의 음식 콘텐츠를 맡아가며 지역개발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고,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손대면 핫플! 동네 멋집'의 두 번째 시즌은 소멸되어 가는 지역의 대표 장소를 '핫플'로 재탄생시킨다는 주제를 갖고 있어요. 이러한 흐름은 지역 로컬크리에이터의 성장을 위한 정부의 지원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예산시장은 F&B 시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방소멸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의 소멸의 시대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어떻게 장사해야만 살아남는가에 대한 교훈을 유튜브 채널이나 현장을 통해 생생히 전달해주고 있어요. 고유의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소비자의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외지 상인과의 갈등이나 소비자의 반응을 통해 깨닫기도 하죠. 지역상생의 그릇으로서, 더 나아가 F&B 업계의 대표로서 예산시장은 브랜드의 의미를 담은 훌륭한 예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