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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Jun 25. 2024

브랜드는 문화라는 꽃을 피운다

티티티(Time to Travel)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어느새 새로운 브랜드가 탄력을 받는 F&B 업계가 마치 K팝 시장 같은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마침 아이돌 그룹 '키스오브라이프'의 디렉터 이해인님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룹을 만들거나 무언가를 제작할 때의 프로세스를 장사처럼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대중화된 시장은 없고 세밀화된 개인의 취향을 자극하려면 소비자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고 타겟팅하는 게 중요하다 덧붙이면서요. 음악 시장이 청각만큼이나 시각적인 장치가 중요해졌듯, F&B 시장도 음식의 맛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본 지식처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눈이 호강할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더해줄 음악 선정, 피부로 느끼는 가구 선택과 직원의 서비스까지. 단순하게 비교하긴 힘들지만 매장 하나 오픈하는 게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일만큼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자영업은 종합예술이라는 말에 시간이 갈수록 공감하게 돼요.

엔터테인먼트 종사자가 문화를 선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소비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고 영향력이 세기 때문이에요. 연예인의 패션 스타일을 팔로우하거나 맛집을 소개하면 바로 다음날 긴 웨이팅이 생기듯 소비자와의 접점이 굉장히 가까운 시장입니다. 문화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야 만들어지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F&B 업계도 비슷해요.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식사를 하고 그만큼 소비가 잦아 접점이 많아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시장은 문화를 만든다기보다, 오히려 문화에 휘둘린다는 느낌이 듭니다. 빠르게 지나는 유행에 대세를 좇아 우후죽순 쏟아지는 매장들. 그곳에 대체 어떤 정체성이 존재할까요?


이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게 오픈을 준비하던 어느 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문화를 전달하는 일이 아닐까' 하고 번뜩 깨달은 요리사가 회사를 하나 차리게 돼요. 여행하는 듯한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취지로 회사의 이름을 티티티(Time to Travel)로 짓고는 그들 스스로를 <문화 기획사>라고 소개합니다. F&B 업계에 문화 기획사라니. 조금은 엉뚱한 아이디어에 웃음 짓다가도 소비자와 문화를 이으려는 혜안에 놀라움을 줘요. 휘둘리지 않고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느껴지거든요.




F&B의 문화 기획사



<용리단길 요리사 남준영> 표지


티티티를 세운 사람은 용리단길 요리사로 유명한 남준영 셰프입니다. 티티티라는 회사명보다 남준영 셰프의 이름이, 그가 만들어낸 효뜨, 남박, 키보, 꺼거, 사랑이 뭐길래라는 브랜드가 훨씬 익숙해요. 용리단길이 뜨기 시작하면서 매스컴에 화제가 될 때 남준영 셰프가 많은 주목을 받았거든요. 올해 1월에는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책, <용리단길 요리사 남준영>를 출간하기도 했죠. 용리단길 내 대표 맛집으로 자리 잡은 테디뵈르하우스의 초기 컨설팅에도 참여하는 등 브랜드와 매장이 늘어가는 것 이상으로 남준영 셰프의 하루도 바빠져만 갔습니다. 개인이 감당하던 일을 분산하고 조금은 체계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기 위해 문화 기획사, 티티티가 등장합니다.

티티티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나 책의 내용을 살펴봐도 티티티를 설명하는 비중이 크지 않거든요. 남준영 셰프가 곧 회사이고 그의 결정으로 브랜드가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번 장에서 개인이 아닌 팀 티티티를 조명하는 이유는 남준영 셰프 개인이나, 그가 기획한 브랜드들이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직면해 있다고 느껴서입니다. 남준영 셰프는 본인을 경영자보다는 기획자에 더 가깝다고 말해요. 브랜드가 탄생함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기획 외에 더 많은 일이 필요합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결국 조직이 필요하죠. 그 조직만의 올바른 문화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저는 티티티의 '문화 기획사'라는 단어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의 외식 산업은 프랜차이즈 중심에서 호스피탈리티 그룹(Hospitality Group) 형태로 중심이 옮겨오고 있어요. 호스피탈리티는 서비스 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으로 사람들을 환대하고 편하게 느끼도록 하는 행동과 태도를 말합니다. 소비자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것 이상의 경험을 원하고, 브랜드는 점차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띄게 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됐죠.

대표적인 호스피탈리티 그룹으로는 쉐이크쉑의 창업주 대니 마이어가 회장으로 있는 USHG(Union Square Hospitality Group)가 있어요. Enlightened Hospitality라는 비즈니스 철학을 통해 여러 특색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국내외 외식업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노티드 도넛의 GFFG 같은 호스피탈리티 그룹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다양한 브랜드 컨셉을 통해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높은 품질의 서비스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말이죠.


Enlightened Hospitality는 대니 마이어(Danny Meyer)와 유니언 스퀘어 호스피탈리티 그룹(USHG)이 주창한 경영 철학입니다. 고객이나 투자자보다 직원을 가장 먼저 배려하는 경영 방식이며 이를 통해 직원 사이에 발생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고객, 지역사회, 공급업체, 투자자 순으로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티티티는 호스피탈리티를 강조하는 다른 그룹들과는 다르게 자신을 문화 기획사라고 설명합니다. 호스피탈리티가 업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나왔다면, 문화를 기획한다는 개념은 '내가 하려는 일의 본질'에 대한 접근에 가까워요. '서비스업으로서의 외식업'이 시장에서 당연한 개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서비스와 배려 그 이상의 가치를 더하는 패러다임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티티티의 기획법



여행하는 시간이라는 뜻의 티티티답게 그들이 만드는 문화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브랜드를 기획한 남준영 셰프는 여행 중 마주치는 수많은 순간을 기록하고, 순간의 일부를 공간으로 구현해요.

첫 브랜드 효뜨는 식사를 위한 일반 음식점이 아닌, 음식과 다양한 주류를 곁들여 먹는 베트남의 비스트로 문화가 담겨있습니다. 베트남 길거리에서 늘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에 180kg의 소품을 실어오기도 했어요. 노점상 아주머니가 사용하던 파라솔을 구매하기 위해 통하지 않는 언어로 몸짓발짓을 써가면서요. 그렇게 들여온 소품들은 매장을 여행하는 공간으로 꾸며주는 디테일이 되었습니다.

애정이 깊은 브랜드인 남박은 베트남의 아침 쌀국수를 생각하며 컨셉이 잡혔어요. 설렁탕, 순댓국처럼 든든한 한 끼 식사로서 소비되는 쌀국수를 우리나라에서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이를 위해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오픈을 하는 과감한 결정도 합니다. 남박의 매장 앞에 서면 <NOODLE-SHOP-SERVICE>라고 적혀 있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간판을 볼 수 있어요. 남준영 셰프가 프랑스 여행 중에 눈여겨보았던 한 세탁소의 색감과 분위기를 기억해 자신의 감각으로 구현합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건 의도가 아닌 초보자의 실수에서 비롯됐지만 그게 남박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프랑스의 한 세탁소에서 영감을 얻은 남박의 간판 | 사진: 네이버 플레이스의 남박


이렇듯 브랜드를 기획하며 여행의 디테일을 살리는 자신만의 방식을 다져온 남준영 셰프는 이후 오픈한 매장에서도 연이어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며 빠르게 자리 잡습니다. 언뜻 내가 하고 싶은 걸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지만,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연이어 만든 데는 몇 가지 비결이 담겨있어요.


- 살아남는 브랜드의 코어, 지역상권

티티티의 문화 기획은 지역상권과의 밀접한 연결을 중시합니다. 용리단길 요리사 남준영을 만든 신용산 부근에는 아모레퍼시픽 등 직장인 인구가 밀집해 있죠. 효뜨와 꺼거, 키보 등 용리단길에 자리 잡은 매장은 이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이 되는 데 집중했습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보다 주변의 주민들과 직장인들이 주 고객층이 되어야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죠. 아사히 생맥주 판매량 전국 1위를 달성하기도 했던 서서 먹는 술집 키보는 주변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술집이 주변에 없다는 데서 기획되었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길거리 맥주집을 연상케 하는 용리단길의 효뜨와는 달리, 강남에 오픈한 효뜨의 인테리어는 프랑스 거리에 있는 베트남 식당을 컨셉으로 잡았어요. 각 지역마다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물이죠.


- 비일상적인 공간의 낯섦

여행을 하는 듯한 공간의 다른 말은 비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죠. 티티티는 비일상적인 공간의 낯섦을 창조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간에서 기분 전환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티티티의 어원처럼 여행에서 얻은 좋은 낯섦을 구현하여 고객들이 그 공간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도록 합니다. 때로는 협업을 통해 새로운 콜라보를 하기도 해요. 신선한 조합을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죠. 최근에는 '시장의 본질과 순기능으로의 정화'라는 목적으로 광장시장에서 <광장한 효뜨네 국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광장한 효뜨네 국수 프로젝트 | 사진: 팀 티티티의 인스타그램 계정 @ttt.corp


- 고객과의 공통분모, 타협

상상력, 기획력만큼이나 브랜드 성장의 기반을 만든 건 적절한 타협입니다. 티티티의 브랜드들은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이에요. 메뉴가 생소해 주문을 머뭇거리는 고객을 보며 처음 오는 손님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메뉴판을 교체합니다. 현지의 음식을 들여올 때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레시피를 조정도 했죠. 홍콩식 중국집 꺼거의 주요 메뉴인 토마토탕면이 대표적인 예시예요. 홍콩의 토마토탕면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맛인데, 여기에 얼큰함을 추가해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변형시킵니다.

타협이란 적절한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에요. 고객중심의 가치에서 출발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공통분모를 찾는 검증 단계이기도 하죠. 그렇게 티티티만의 특별한 컨셉을 지닌, 고객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완성됩니다.




브랜드와 식문화



티티티와 같은 브랜드가 만들어가는 문화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단어를 정의해 보면, 문화란 인간 사회가 창출하고 공유하는 지식, 신념, 예술, 관습 등의 총체를 의미해요. 인간은 집단생활을 통해 생활양식과 가치 체계를 만들죠. 이게 언어나 종교, 음식 등의 형태로 표현이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해요.

브랜드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오늘날의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특정 가치와 이미지를 전달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져요. 예를 들어, 애플은 단순한 기술 회사가 아니라 혁신, 고급스러움, 세련된 디자인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식되죠.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특정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합니다.


티티티는 여행하는 공간을 만드는 문화 기획사로서 소비자에게 비일상적인 낯섦을 제공해요. 일상이 지치거나 힘들 때, 직접 여행은 가지 않더라도 티티티가 제공하는 공간을 통해 여행에서 느끼는 기분으로 치유받을 수 있어요. 베트남 길거리에서 보았던 아침 쌀국수의 전경을, 일본에서 경험했던 시원한 맥주의 맛을 내 주변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일종의 새로운 식문화라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문화를 통해 어떤 가치를 공유합니다. 티티티의 브랜드에도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흔적이 남아있죠. 아침 쌀국수를 먹으러 멀리서 남영까지 찾아와 남박에서 쌀국수를 먹는 손님, 베트남 음식점에서 얼큰한 신용산 국밥을 주문하는 효뜨에서의 점심, 가볍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버리는 키보에서의 저녁 등. 티티티는 소비자의 하루에 맞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공유합니다. 이들이 전달하는 가치에 반응하는 손님들이 모여 티티티만의 문화가 탄생하게 되죠.


일본식 타치노미 선술집 키보 | 사진: 네이버 플레이스의 키보


'브랜드가 전달하는 가치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모여 문화가 탄생한다'는 말을 곱씹어보게 됩니다. 어쩌면 이 말이 넓은 범위의 업의 본질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브랜드로서의 본질 말이죠. 티티티가 말하는 <문화 기획사>라는 정의에 그들의 혜안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 기획이 곧,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아직까지 어떠한 투자도 받지 않고 본인들만의 힘으로 착실하게 성장해 나가는 티티티의 대표 남준영 셰프는 언젠가 공공시설을 기획해보고 싶다 말합니다. 호주에서의 경험을 빗대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함께 다닐 수 있는 공공시설이 적다는 이유였어요. 대상이 식당이 아니어도 그들이 기획하는 출발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특정한 가치 전달을 위해, 소비자와의 타협점을 만들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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