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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Oct 10. 2024

학생들에 의해, 학생들을 위해

도스마스


사람들에게는 유독 좋아하는 브랜드가 하나씩은 꼭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본인이 직접 구매해 봤거나, 특별한 경험을 공유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스치듯 브랜드를 마주쳐도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며칠 전에 날이 풀려서 선유도로 피크닉을 갔는데, 저에게는 정말 추억이 많은 부리또 가게가 선유도점을 신규로 열었더군요. 돗자리를 펴고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언제 고민했냐는 듯 자연스레 부리또를 사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주문을 하면서도, 테이크아웃을 하고 선유도로 향하면서도, 돗자리를 펴고 앉아 부리또를 먹으면서도, 기분 좋은 감정이 가시질 않았어요. 마치 예전 풍경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부리또 가게 '도스마스'를 접한 건 대학생 시절이던 201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안산에서 서울까지 왕복 4시간의 통학을 하는 바람에 공강이나 주말에는 안산에 있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 자주 갔어요. 초중고를 안산에서 나왔다 보니 에리카 캠퍼스에는 친구들도 꽤 많아서 주변을 걷다 보면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에리카 캠퍼스에만 있는 부리또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도스마스였어요. 부리또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도스마스뿐만 아니라 '밀플랜비' 같은 경쟁 브랜드가 생겨나기도 했죠. 저렴하지만 풍족하게 먹을 수 있고, 가볍고 빠르게 먹을 수도 있는 부리또의 매력은 학생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습니다. 게다가 소비자였던 학생들은 도스마스의 뿌리가 되어, 대학가를 중심으로 가맹사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도스마스의 부리또 | 사진: 도스마스 홈페이지


외식 브랜드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곳을 하나 고르라 하면 과감하게 도스마스를 고릅니다. 미식의 경험이 늘고 훌륭한 브랜드가 하나둘씩 탄생하더라도, 지나간 세월에 대한 추억과 숙성된 경험의 향수는 이길 수 없어요. 대학생 시절의 풍경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브랜드만의 힘이 있죠.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우리는 결국 소비자에게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죠.




'베풀고 돌려주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기부



도스마스의 시작은 푸드트럭이었습니다. 미국 한인타운에서 순두부집을 운영하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사업을 접은 이규하, 안성희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점심으로 자주 먹었던 부리또를 팔아보려 지인에게 1,000만 원을 빌렸어요. 그렇게 2010년 2월, 수원역에서 시작한 푸드트럭은 남이섬으로 이동해 줄을 서는 노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놀라면서도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6개월간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자금을 마련한 뒤에는 한양대 에리카 앞에 첫 점포를 냈어요.

6개월간의 푸드트럭 장사의 경험은 일종의 시장조사와 같았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부리또 맛의 현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당시 부리또가 한국에서는 특이한 음식이어서 새로운 음식 문화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대학생이 주 타깃 고객층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간절한 상황 속에서 길을 찾아낸 도스마스의 여정은, 어쩌면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진로에 대한 난관의 길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스마스가 성장하고 성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의 미래를 투영하는 친구들이 가끔 있었어요. "원래 푸드트럭으로 시작했잖아", "우리 학교에 장학금도 주고 있어" 등의 이야기를 하며 도스마스를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학교에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듯, 도스마스에게도 어떤 동질감을 느낀 게 아닐까 싶어요.


한양대 에리카 학생들과 도스마스가 끊어지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도스마스가 지원한 장학금 사업 덕분이었습니다. 도스마스에서 근무한 1호 아르바이트생이 학교의 교무팀과 다리를 놓아주어 시작된 이 사업은 이규하 대표의 '베풀고 돌려주자'는 철학의 실현이었어요. 도스마스는 학생들이 주 고객이어서, 학생들의 사랑 덕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답할 수 있는 방법도 고객이자 동료인 학생으로부터 나올 수 있었죠. 또, 학생들 덕에 미국에 두고 온 딸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어요. 고객으로서, 직원으로서, 그리고 지역 공동체로서 학생들과 함께 꿈을 키워온 도스마스였습니다. 그러니 도스마스에게 장학금 지원은 당연하면서도 아깝지 않은 비용이었죠.



한양대 에리카에 위치한 도스마스 본점의 전경 | 사진: 도스마스 위키백과


가맹사업을 시작한 도스마스는 대학가 상권을 기반으로 점포를 늘려나가며, 학생이라는 뿌리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어요. 사업 초반에는 빠른 성장을 맛보기도 했고,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2023년 기준 27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회사가 되었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1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강점을 잃지 않고 꾸준히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 졸업생이 되어 두세 번 정도는 나갔을 짧지 않은 기간이죠. 그 시간 동안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이 학창 시절의 새로운 추억을 도스마스와 함께 쌓아나갔습니다.




좋은 브랜드의 기준



도스마스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브랜드라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대비 가맹점수가 그리 많지 않고, 대학가 상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부리또라는 상품의 한계도 명확한 상황이에요.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도스마스의 한국식 부리또보다 미국 현지에서 먹는 듯한 부리또가 더 시장성을 띄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식문화가 크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죠. 상업적으로만 보면, 도스마스는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어요.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서는 대학교 상권 이외의 상권에서도 먹힐만한 브랜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도스마스를 좋은 브랜드라 볼 수 없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갑이 풍족하지 않던 대학생 시절에 저렴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던 부리또, 이미 도스마스 하면 대학교의 풍경이 떠오를 만큼 훌륭한 브랜딩이 되어있거든요. 도스마스라는 브랜드를 소개하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브랜드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로 돌아가게 돼요. 브랜드의 정의부터 왜 브랜드를 만드려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단순히 상업적인 요소로만 판단할 수 없거든요. 브랜드의 본질을 고민하는 게, 꼭 인생의 가치관을 찾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브랜드에게도, 우리의 인생에서도, 돈이라는 요소는 모든 가치를 집어삼킬 만큼 강력해서 균형 잡힌 가치 판단을 방해하기도 해요. 그러나 돈이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모든 매력을 대변하는 게 아니듯, 브랜드의 매력 또한 단순 상업적 요소로만 환산할 수 없습니다.


도스마스의 성장 과정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어요. 학생들의 가볍지만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어주었고, 그들의 사랑을 통해 가맹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죠. 높은 재료비의 비중을 고려하여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매장 구조를 기획함으로써, 장학금을 지원하며 '베풀고 돌려주자'는 철학을 실현함으로써, 도스마스와 학생들은 짙게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소비자에게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일이에요. 브랜드라는 그릇을 통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하죠.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가치가 소비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려면, 명확한 메시지와 일관적인 태도를 담은 브랜딩이 필요해요. 소비자가 공감하는 브랜드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브랜드만의 매력을 마주하고, 그 지점의 눈높이에서 브랜드의 좋은 점들을 판단하게 돼요. 브랜드가 전달하는 가치를 소비자와 얼마나 공유할 수 있는지가 좋은 브랜드인지를 확인하는 기준이 됩니다.






양화공원에 앉아 도스마스의 부리또를 먹다 보니, 문뜩 한강을 바라보며 부리또를 먹고 있는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도스마스가 대학생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한강에서 부리또를 먹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장소와 환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스마스의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고, 나이가 들어 학생 때와는 다른 환경에 놓인 제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살아남는 게 아닌가 하면서, 어느새 또 도스마스에 나이가 든 나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재밌고도 신기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도스마스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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