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노트 Jun 21. 2024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

얼스어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CSR은 기업이 자신의 경제적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 의무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 활동이 환경,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창출하려는 자발적인 노력을 포함해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도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졌어요. 현대의 기업가 정신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여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가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해요.


갑자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각의 존재 이유가 변해온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기업이 그렇듯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고객을 모으는 게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였다면, 지금은 사회적인 역할 역시 중요해졌습니다. 우리가 대전시의 대표 명물인 성심당을 응원하고, 매출이 저조한 매장을 무료로 컨설팅해 주는 유튜버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사회적 책임에서 친환경 얘기를 빼놓을 수 있을까요? F&B 브랜드 중에 친환경하면 첫 번째 사례로 소개되는 브랜드가 있어요. 매스컴에서도 많이 언급하고 이근상 대표의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에서도 대표 사례로 소개되었던 '얼스어스'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곳에서 소개된 브랜드라 이번 매거진에 포함하는 게 맞을까 고민도 했어요. 그러다 올해 얼스어스의 세컨드 브랜드였던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이 영업종료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간의 도전을 다시 조명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라는 소개로 그치지 않고 성장해 가는, 존재의 이유를 확인해 가는 브랜드로서의 얼스어스가 보였거든요.




미션은 시장을 성장시킨다.



2017년에 제로 웨이스트 카페로 등장한 얼스어스는 꾸준하게 매체의 관심을 받아왔어요. 길현희 대표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합니다. 환경 운동이라고 하면 뭔가 좀 과격할 것 같은 선입견도 있던 시기였어요. 어릴 때부터 친환경에 관심이 있었던 길현희 대표는 카페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보여주고 싶어 얼스어스를 오픈합니다.

얼스어스는 'For Earth, For Us', 지구를 위하는 일이 곧 우리를 위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해요. 지구에게 미치는 영향이 나에게 무관하고 생각이 든다면 친환경을 외치지 않았을 거라고 설명하며,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친환경을 실천하고 싶다 말합니다.

제로 웨이스트 카페인 얼스어스에서는 이런 할 수 있는 만큼의 친환경적 요소가 곳곳에 담겨있어요. 빨대 대신 스푼, 냅킨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는 등 매장 내에서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소비재를 친환경 품목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베이커리에 무지했음에도 직접 디저트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쓰레기 발생을 막기 위해서였어요. 메뉴 선정에 있어서도 종이 호일 같은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상하려 노력합니다.


이 중에서도 얼스어스가 매체의 관심을 받게 한 대표적인 친환경은 다회용기를 제외한 무포장 원칙이에요. 케이크를 포장하려면 손님이 직접 다회용기를 들고 와야만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친환경에 대해 몸소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포장 용기가 없어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아 죄송한 마음도 컸다고 해요. 그래도 무포장 원칙을 잘 지키다 보니 얼스어스의 가치에 공감하는 손님이 늘면서 자연스레 매체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런 관심을 통해 친환경에 대한 느슨함을 다잡으며 얼스어스는 성장해 갑니다.


얼스어스의 무포장 원칙 | 사진: 네이버 플레이스의 얼스어스


한편으로는 얼스어스가 친환경 마케팅을 잘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친환경과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만나면 다소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는데, 길현희 대표는 친환경이 돈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돈이 된다는 건 소비자가 그만큼 원한다는 이야기이고, 기업이 눈치를 보며 사업 방향성을 정하게 되니까요. 마케팅이라는 수단이 친환경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린워싱 사례가 많은 만큼, 기업의 친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정착이 우선이지만요.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얼스어스였을까요?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을 안 쓰는 게 당연하도록, 개인 텀블러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게 일상이 되도록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한 계기가 말이죠. 개인의 인식과 참여자의 작은 변화들로 인해 시장은 변해갑니다. 시작이 어디부터였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간에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누구라도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존재의 이유



얼스어스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카페로 관심을 얻었지만, 실상 우리도 해볼까 하는 용기를 주지는 못하고 있다 느꼈거든요. 어쩌면 얼스어스의 친환경이 높은 허들로 존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 허들을 낮춰 누구나 한번 실천해 볼 수 있는 가게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에 얼스어스의 세컨드브랜드,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을 오픈하게 돼요. 제로 웨이스트가 아닌 '레스 웨이스트(Less waste)'로 가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 노력합니다. 단순한 카페로 시작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친환경을 제로 웨이스트 카페로 구현하고, 매체를 통해 친환경을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얼스어스는 카페 너머에 있는, 자신만의 존재의 이유를 쫓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걸 선택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넘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친환경의 허들은 어디쯤인가를 테스트할 수 있는 새로운 가게를 통해서요.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의 레스 웨이스트 | 사진: 얼스케이크 베이크샵 인스타그램 @earthquake.bakeshop.kr


우리는 수많은 브랜드를 만납니다. 작게는 수많은 가게를 마주치죠. 이들에게는 어떤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게 존재 이유에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상품을 팔지, 얼마나 빠르게 테이블을 회전시킬지, 객단가를 높일 수 있을지 등의 고민을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했죠. 시대가 변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사회적 요구를 담아내거나,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릇으로 브랜드의 역할은 커지는 중이에요. 앞서 언급했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가 정신의 현대적 의미와 비슷하게,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방향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역 축산/농가와 협업해 좋은 품질의 버거를 제공하며 최상위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된 므므흐스, 전통 약과를 재해석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선물을 만들려는 프리미엄 약과 골든피스, 새로운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충주 로컬 브랜드로 성장한 댄싱사이더 등, 현대적 의미로 브랜드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어요. 얼스어스를 포함해 이 브랜드들의 존재 이유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설명하긴 힘듭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더해져야 비로소 브랜드의 존재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요.


2023년 6월 20일, 성수에서 정식 오픈을 진행한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은 2024년 3월 3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종료를 합니다. 영업기간 중에 느꼈던 부족함을 보완해서 더 나은 매장으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면서요.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의 영업종료 공지 | 사진: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의 인스타그램


영업종료 공지에서도 레스 웨이스트 카페로서의 정체성이 묻어납니다. 얼스어스의 무포장 원칙과는 다르게 포장이 가능하지만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종이 포장만 가능한 점, 이 종이 포장을 위해 메뉴 선정을 진행한 점이 특히 눈에 띄어요. 결국 포장에서의 '친환경'과 '고객의 불편함', 그 중간 지점을 찾기 위한 노력일 필요했을 테니까요. 이번 영업종료에는 다양한 이유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더 나은 레스 웨이스트 가게로 나아갈 연습 과정이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어디서 찾을까?



모든 브랜드가 현대적 의미의 존재 이유로 태어난 건 아닙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큰 고민을 하기보다, 개인적인 목표에서 출발해 어떻게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를 고심하죠. 작은 브랜드, 작은 가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는 게 배보다 배꼽이 큰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거든요.


얼스어스의 시작은 길현희 대표의 인스타그램 활동이었습니다. 회사의 업무로 제작한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게 관심을 받게 되어 '홈카페 인스타그래머'로 이름 붙여졌고, 예쁜 다회용기 식기와 잔에 담긴 카페 음식 콘텐츠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이 경험을 계기로 재활용품을 줄이는 카페를 내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로 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를 오픈하게 됩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이 바로 이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매장에서 재활용품을 줄이도록 예쁜 다회용기에 담아 제공하는 일, 친환경을 친근하면서도 좋은 경험으로 설계하는 일 말이죠.


얼스어스의 시작이었던 길현희 대표의 인스타그램 | 사진: 얼스어스 인스타그램 @earth__us


가게의 시작도, 브랜드의 출발도 결국 개인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몰입하고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해요. 지금은 경제적 이익에 집중하고 있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반응이 좋다면 브랜드만의 주요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돼요. 그 포인트를 통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적 가치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리미엄 반찬을 만드는 '집반찬연구소'는 식사 준비하는데 하루에 3시간 정도 걸린다는 아내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어요. 50년으로 환산하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식사 준비를 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6년이면 정말 긴 시간인데, 이 시간을 좀 더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고객에게 시간을 선물합니다>라는 가치를 내세워 프리미엄 반찬을 만들게 됐습니다. 시간이라는 건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보물이니까요.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 시작해 다른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전달한다면, 그렇게 브랜드는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됩니다.


얼스어스는 제로 웨이스트 카페로, 얼스케이크 베이크샵은 레스 웨이스트 카페로. 길현희 대표는 카페라는 수단으로써 어떻게 하면 친환경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듯해요. 브랜드는 사람과 같다고 많이들 표현하죠. 우리가 각자의 성장 과정에서 성찰하고 학습하며 자아를 형성하듯, 얼스어스라는 브랜드도 일련의 과정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듯 보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품은 브랜드로서 말이죠.






얼스어스가 이미 많은 매체에 소개된 만큼 이번 챕터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꽤나 고민이 됐어요. 참고할 기사나 영상이 많음에도 글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건 브랜드로서의 얼스어스를 잘 소개하고 싶은 제 욕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브랜드보다 브랜드를 만드는 개인이 더 주목을 받기도 하는데, 얼스어스는 브랜드 존재감이 더 강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이 주목 받든, 브랜드가 주목 받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브랜드 인식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브랜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잘 전달되고 있다는 의미겠죠. 건강한 성장 과정을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을 선물하는 얼스어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07화 학생들에 의해, 학생들을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