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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Jul 16. 2024

컵밥으로 우주정복

Cupbop


모든 브랜드가 정밀한 계획과 철저한 계산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가게를 차리고 운영하다 보면 생각보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많거든요. 실행과 실패, 그리고 다시 실행. 그 무한한 반복을 통해 돌파구가 생기고 새로운 길이 생겨요. 최근 성심당 이슈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을 느낍니다. 접근성이 좋던 대전역에서 나와야 할 위기에 놓이자 성심당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번졌죠. 위기를 극복하면서 브랜드는 더 단단해집니다. 소비자는 스토리에 매료되고, 뚝심 있게 위기를 극복해 내는 브랜드를 좋아하니까요.


요즘 스토리텔링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단연 Cupbop(컵밥)이에요. 국내에는 매장이 없어서 노량진 컵밥을 말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는데,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꽤나 유명한 한식 브랜드입니다. 미국 유타에서 사업을 시작한 컵밥의 송정훈 대표가 마침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푸드트럭 한 대로 시작해 연 매출 600억에 이르는 브랜드로 키워낸 성과도 굉장하지만, 결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참 드라마틱해요.

컵밥의 스토리텔링은 F&B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힐 만큼 매력적입니다.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남자가 무모하게 시작한 사업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성장하고, 심지어는 미국의 투자 경쟁 프로그램인 '샤크탱크'에 나가 모든 투자자에게 오퍼를 받아요. 몇몇 손님들은 컵밥의 문화에 매료되어 식구가 되기도 했어요. 컵밥의 초창기 손님이었던 권덕 COO는 요식업의 요자도 모른 채,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있는 금융업계를 떠나 컵밥에 합류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수 있던 계기도 인도네시아의 재벌 2세였던 손님의 끈질긴 구애가 시작이었죠. 창문이 바람에 뜯겨나가던 트럭 한 대에서 200여 개의 매장을 열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컵밥이라는 브랜드는 성심당이 그랬듯 단단해졌습니다.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컵밥의 송정훈 대표 | 사진: 송정훈 대표의 인스타그램 @cupbop4ever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시작은 뚜렷한 계획 없이 구매해 버린 푸드트럭 한 대였거든요. 어떻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컵밥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낸 걸까 하고요. 컵밥이라는 브랜드를 세밀하게 얘기하자면 족히 책 한 권은 나올 만큼 내용이 많아요. 그 많은 요소들 중에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단어와 문장을 통해서요.


"컵밥으로 우주정복"
"정, 흥, 덤"


이 간단한 문장들이 컵밥을 연 매출 600억의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다소 과장되어 보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의 모음이지만, 이 문장들에는 엄청난 힘이 내포되어 있어요. 언어의 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힘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언어의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단, 한 문장



2005년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축사를 나섭니다. 약 15분간 진행된 축사에서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들은 미래에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축사가 끝날쯤 스티브 잡스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한 문장을 반복하며 축사를 마무리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겸손한 자세로 도전하라'는 의미를 지닌 이 문장은 약 15분간의 긴 축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스티브 잡스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유명해요. 이 문장에 포함된 단어는 딱 3개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죠.


1963년 8월, 워싱턴에서는 인종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 위해 '워싱턴으로의 행진'이 진행 중이었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많은 대중들 앞에 섭니다. 그들 앞에서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읽어가던 중, 무대 근처에 있던 가스펠 가수 마하리아 잭슨의 "그들에게 당신의 꿈을 말해줘요"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요청을 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원고를 잠시 내려놓고 즉흥적으로 연설을 시작합니다.


"I have a dream"


역사적 연설의 시작이었던 이 문장은 당시 모여있던 군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게다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상으로 몇 번이고 되돌려보는 명문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에서의 연설을 통해 '나의 꿈'을 말했죠. 하지만 군중들에게, 그리고 영상을 돌려보는 우리에게는 마틴 루터 킹 목사만의 꿈이 아닌 '우리의 꿈'의 나열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또 그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 요인과 복합적인 스킬이 담겨있을지 모르지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딱 문장 하나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컵밥으로 우주정복


Cupbop의 슬로건 <컵밥으로 우주정복> | 사진: Cupbop의 인스타그램 @eatcupbop


컵밥은 우연한 기회와 무모한 용기를 통해 태어났지만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그들만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빠르게 성장한 브랜드가 모두 오래 살아남는 건 아니에요. 외식업은 인기와 유행에 따라 소비의 유형이 급격하게 바뀌는 시장인 데다가 소비자의 선택지마저 넓습니다. 심지어 컵밥은 한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 유타에서 번개가 치듯 번쩍하고 태어난 브랜드였어요. 권덕 COO는 자본이 많은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여 한국 음식 시장의 지분을 뺏어갈까 봐 매일밤 걱정하기도 했죠. 특색 있는 상품을 통해 성장한 브랜드는 유행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브랜드의 수명까지 줄어들곤 합니다. 현시대에 브랜딩의 중요도가 높아진 이유이기도 해요.

송정훈 대표와 권덕 COO는 이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 경쟁 프로그램, 샤크탱크에 출연합니다. 컵밥에 특별한 기술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모든 투자자의 투자 제안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죠. 그들이 늘 그래왔듯, 해낼 수 없어 보이는 일도 컵밥이라는 브랜드라면 꼭 해낼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컵밥으로 우주정복"


전 세계 어딜 가나 컵밥을 맛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다소 무모해 보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딱히 느껴지지 않죠. 그들이 지금까지 성장해 왔던 과정과 미디어에 노출된 태도에서 일관된 무모함을 보여왔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10년이 넘는 컵밥의 시간이 요약된 한 문장일 수도 있겠습니다. 딱 문장 하나로 컵밥의 모든 걸 표현해 낸 거죠.



정, 흥, 덤


컵밥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라고 설명합니다. 그 문화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정, 흥, 덤'이죠. 송정훈 대표가 자주 언급하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첫 장사에서 대박을 낸 후에 귀신 같이 손님이 사라진 어느 날, 컵밥의 푸드트럭 바로 옆에는 유타에서 제일 유명한 와플 가게의 푸드트럭이 있었고 웨이팅 손님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텅 비어있던 컵밥의 푸드트럭이 초라해 보였어요. 그럼에도 그는 침울해있기보다 즐겁게 풀어보려 했습니다. 푸드트럭 안에 있는 직원들끼리 게임을 하며 웃었고 트럭이 흔들리도록 뛰었죠. 그러자 와플 푸드트럭 앞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궁금해서 줄을 서기 시작하더니 이내 길고 긴 웨이팅 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일화는 컵밥이 말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를 보여주는 예시이자 컵밥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인 '정, 흥, 덤'의 시초이기도 해요.


정: 한 달에 한 번씩 컵밥의 푸드트럭을 방문해 준 손님의 집을 방문해서 음식을 제공하고 함께 놀아줍니다. 손님에게 받은 사랑을 나눠줄 뿐만 아니라, 유타의 지역 안에서 컵밥과 주민들의 끈끈한 정을 만들 수 있어요.

흥: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함께 춤을 추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하고 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듭니다.

덤: 처음 방문한 손님이나 한국말로 인사하는 손님들에게 사이즈 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를 주는 한국 고유의 덤 문화를 도입했어요.


컵밥의 '정, 흥, 덤' | 사진: Cupbop의 인스타그램 @eatcupbop


유타에서 열렸던 음식 페스티벌, 한국 음식이 하나도 없어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에서 출발한 사업 계기가 컵밥의 브랜드 문화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정 흥 덤', 단 세 글자로 정의할 수 있는 컵밥의 문화는 브랜드의 행동 양식이자 정체성이 되었어요. 컵밥은 한국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하고 있거든요.

매장 곳곳에 한국말이 적혀있는 걸 넘어서 코카콜라와의 협상 끝에 음료 머신에 처음으로 한글을 썼습니다. 유통 회사 시스코에 한국 간장을 유통하도록 요청해서 마침내 한국 간장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었죠.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추석 등 주요 명절을 기념하는 문화 행사 '밥심'을 주최하며 외부 활동 또한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매장만 해도 200개가 넘는 큰 회사이지만, 그들의 활동이 일관될 수 있는 이유는 브랜드 정체성이 누구나 이해하고 외울 수 있을 만큼 쉽고 단순한 문장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쉬운 말로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뿐인 세상에서 단순함은 정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정의한다, 고로 존재한다



컵밥이 시작부터 '컵밥으로 우주정복', '정, 흥, 덤' 같은 문장과 함께 출발한 건 아닙니다. 우연히 시청하던 다큐에서 노량진 컵밥이 나오는 걸 본 게 사업 아이템의 시작이었죠. 단지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해 푸드트럭 안에서 게임을 했을 뿐이에요. 이런 순간적인 판단들이 겹쳐 컵밥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하고 단단한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구성원과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 정의했기 때문이에요.


컵밥의 푸드트럭 | 사진: Cupbop의 인스타그램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만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잠깐 시간을 내서 나의 브랜드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신가요?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게 되거나 딱히 대표할만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죠. 때론 도출해 낸 문장이 진부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예비유니콘 사업으로 선정된 스타트업 종사자와 대화를 나누다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 한 가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사람을 만나며 관찰해 본 결과, 그들의 공통점이 '단어를 정의하는 일'을 잘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라고 직원이나 공동 창업자에게 말했다고 생각해 보죠. 여기서 '성공'이라는 단어 때문에 동상이몽이 필연적으로 발생해요. 누군가에게는 매출이, 다른 이에게는 순이익이 그 척도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소 추상적인 단어를 만난 순간, 반드시 그 단어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해요. 그래야 참여자들의 동상이몽을 줄여 한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거든요.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단어를 정의하는 일'이라면, 잘 성장하는 브랜드의 특징은 '한 문장을 만드는 일' 아닐까요? 컵밥을 비롯해 매거진을 통해 소개하는 브랜드들은 보통 본인들만의 문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 만들지 않은 막국수'의 고기리 막국수와 '포장이 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카페'의 얼스어스도 그랬죠. 브랜드에게 필요한 건, 이런 '단 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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