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목장
시리얼 선물을 하나 받은 김에 우유를 사야겠다 싶어 집 근처에 있는 마트 유제품 코너에 들렀습니다. 그동안 흰 우유를 안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모르는 우유 제품들이 정말 다양하게 있더군요. 저지방, 무지방 정도의 차이만 알고 있었지 락토프리, 유기농, 저온살균 같은 제조 공법이나 등급에 따른 우유가 브랜드별로 다양하게 있어서 놀랐어요. 거기에다가 해외에서 수입한 멸균 우유까지, 도대체 뭘 골라야 하나 몇 초간 멍 때린 기억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2018년에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소한 우유를 찾아 삼만리 해봤습니다"라는 제목이 달려있는 글을 봤어요. 어릴 때 먹었던 파스퇴르 우유의 독특하고 진한 맛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른이 되어 먹어본 파스퇴르 우유의 맛이 연해졌다는 느낌을 받아 그때 느꼈던 맛이 무엇일까를 추적해 나가는 연대기의 글이었죠. 4편까지의 글이 있고 5편을 기다리고 있는 커뮤니티 유저가 많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서, 안 그래도 도대체 우유 제품이 왜 이렇게 많고 다른지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우유에 대한 정말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소한 맛을 좌우하는 우유의 지방 함량과 온도, 살균 방식의 차이, 흰 우유 소비의 감소와 프리미엄 우유의 성장, 락토프리 우유가 단 이유 등 글쓴이의 여정에 따라 우유에 대한 제 지식도 한층 올라갔어요. 덕분에 우유를 살 때 성분표를 보고 고를 수 있는 여유도 생겼죠.
하나 재미있던 건, 그 글의 1편이 올라오고 나서 매일유업에서 글쓴이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고 해요. "우유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본사로 초청을 합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와 대접을 받으며 2시간가량 우유에 대해 궁금했던 질문과 답을 주고받아요. 그리고는 매일유업의 우유에 대한 애정과 진심에 꽤나 감동을 받죠.
매일유업은 사회공헌이나 직원 복지 등이 화제가 되며 탄탄한 브랜드 평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희귀병 환자를 위해 특수 분유를 만들어온지가 20년이 넘었고, 저출산 문제에 대한 직원 복지로 출산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하며 소비자에게도 널리 알려졌어요. 유제품 소비 인구가 줄어드는 게 곧 유업계의 위기이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생존의 문제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과대해석처럼 보여도 한 산업군의 거대 공룡이 기업을 어떻게 끌어가는지, 사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속에서 브랜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배울만한 점들이 꽤 많이 있어요. 실제로 저출산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의 분유 판매량이 심각하게 줄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볼 수도 있죠.
고소한 우유를 찾아 삼만리를 떠난 여행기의 시작점이었던 파스퇴르는 유기농 우유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매일유업의 유기농 카테고리의 대표 브랜드로는 상하목장이 있어요. 흰 우유를 더 이상 완전식품으로 소비하지 않고 다양한 가공음식으로 소비하게 되면서, 그 반대급부로 기능성에 집중된 유기농 우유 같은 프리미엄 제품군이 성장하기 시작했죠.
우유의 프리미엄화와 함께 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도 올라가면서 유기농 브랜드의 성장도 가속화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국내 유기농 우유 시장이 약 50억 원 규모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1000억 원대 규모로 약 20배의 성장이 있었어요. 그 중심에는 시장 점유율 1위인 상하목장이 있죠. '자연에게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다'는 가치를 품고 있는 상하목장은 2008년 브랜드 출시 직후부터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자리한 상하목장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가축이 함께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목표로 하여 탄생했어요. 그 배경에는 유기농 사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던 고(故)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의 비전이 있었죠. 김복용 회장은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청정지역을 탐색한 끝에 전라북도 고창을 선택합니다. 고창은 비옥한 황토, 깨끗한 물, 그리고 해양성 기후를 지닌 곳으로 유기농 목장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어요. 매일유업은 자연친화적인 유기농 환경에서 젖소를 기르고, 방목형 사육 방식을 적용해 최고 품질의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는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상하목장의 탄생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어요. 젖소 한 마리당 넓은 방목장이 필요하고, 사료 역시 유기농 농산물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많은 낙농가들이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초기에는 84개의 농가 중 40곳, 그러다 실패를 거듭하며 남은 14곳만이 유기농 목장 운영에 참여했죠. 이런 어려움에도 고창군은 낙농가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08년에 상하목장의 첫 유기농 우유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상하’라는 브랜드명은 고창군 상하면의 지역명에서 따온 것으로, 유기농 사업에 참여한 낙농가들의 노고와 고창군의 지원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합니다. 매일유업은 이러한 브랜드 스토리를 마케팅에 반영하여 상하목장이 소비자들에게 신뢰받는 친환경 유제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죠. 상하목장 광고는 실제 농가주들이 출연하여 유기농 목장의 가치를 직접 전달했고, 이를 통해 소비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습니다.
상하목장의 탄생 배경부터 상하목장을 브랜딩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일유업의 고집스러운 면이 보입니다. 기존 일반 우유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운 환경에 젖소를 적응시키는 모험을 해달라고 낙농가를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이었요. 사업 초기에는 유기농 먹이에 적응하지 못한 소들이 야위어가다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는데도, 유기농 목장 운영에 마지막까지 참여한 낙농가들은 미래를 위해 어렵게 시작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식 같은 소들을 보냈을 테지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를 떠올릴 때 매일유업이 공유한 미래에 대한 가치가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이끌었을 겁니다.
김복용 회장이 2006년 타계한 후 2년 반 만에 탄생한 상하목장은 유기농 사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농업 모델을 제시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기농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고 있어요. 특히 매일유업과 고창군이 조성한 체험형 농촌 테마파크, 상하농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방문객들에게 자연과의 공존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가 어떻게 자연환경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교육하고 있어요. 상하농원은 지속 가능한 농업의 상징으로 소비자들이 자연을 체험하며 농업과 환경의 상호 관계를 배울 수 있는 장소로 설계되었습니다. 단순한 생산 과정의 의미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농업과 환경 보전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교보재가 되고 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냥 우유에 지나지 않나?" 매일유업의 고집과 낙농가의 고초, 지역사회의 노력과 친환경의 가치를 소비자가 전부 이해하기에는 그냥 매일같이 먹는 우유에 지나지 않나 하고 말이죠. 소비자는 특정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모든 가치를 오롯이 전달받기가 힘듭니다. 마치 선물 받은 시리얼에 말아먹을 우유를 고르기 위해 진열대 앞에 섰던 기억처럼, 소비자에게는 이미 수많은 정보가 눈앞에 있어요. 정보의 과잉 속에서 개인의 관점에 따라 무엇을 선택할지는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가격이기도, 누군가의 추천이기도, 매체를 통한 홍보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소비자의 눈에 보이는 제품, 그 이면에 존재하는 브랜드의 비전과 가치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제품의 이면에 존재하는 브랜드의 비전과 가치는 단순한 물질적 소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상하목장과 같은 브랜드는 소비자가 마시는 우유 한 잔 뒤에 자연과 사람, 지역사회의 협력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주죠. 이는 건강한 먹거리 제공을 넘어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상하목장은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전달하며, 더 나아가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가치는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는 언제나 제품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합니다. 브랜드의 진정성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죠.
브랜드에게 있어서도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단순히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주며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해 주죠. 김복용 회장의 유기농에 대한 고집으로 시작해 상하목장이 탄생한 것처럼, 매일유업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자연에게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다'는 가치를 끝내 실현해 냈습니다. 이런 가치 실현은 단순한 판매 전략이 아닌 사회적 책임의 일부이며,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존속하기 위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에요. 소비자는 언젠가 내가 선택한 우유가 단순한 제품을 넘어 자신의 건강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선택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