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당
집 앞에 새벽까지 여는 혼술집이 하나 있어요. 아예 상호명에 '혼술집'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어서 혼자 간단하게 술 마시고 싶은 사람은 종종 가겠다 싶었죠. 저녁에 러닝을 하고 집에 오는 길목에 불 켜진 매장을 지나다 보면, "오늘은 손님이 많이 오셨으려나" 하고 매번 궁금해서 쳐다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갈 일이 없지만, 만약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한 번은 가봐야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점이 있는 콘셉트는 아니거든요. 분명 혼술을 좋아하거나, 그런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장님일 거라 상상하며,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장님과의 대화에 곁들이는 술 한잔은 꽤 즐거울 것 같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점점 독립성을 강조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고령화와 함께 1인 가구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1인 비즈니스 모델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수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 파악할 수 있어요. 혼술집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혼자서 먹는 밥과 술에 대한 니즈가 증가했다는 걸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파악하게 됩니다.
어릴 때 일본으로 여행을 가면 '이치란라멘'에는 한 번씩 꼭 들렸어요. 매장 문 앞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고르고 주문서에 요구사항을 자세하게 작성한 뒤, 주방을 마주하고 있는 바 형태로 된 비좁은 좌석에 앉습니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다 보면 맞은편 주방에서 음식을 내어줘요. 라멘 자체가 맛있기도 했지만, 일본의 다소 개인주의적인 문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해서 더 좋아했던 것도 같습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식당보다 조용하게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저의 성향에 더 맞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에도 이치란라멘과 비슷하게 지금은 '아오리의 행방불명'으로 상호를 바꾼 '아오리라멘'이 한때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치란라멘에서 콘셉트를 따온 아오리라멘은 당시 일본에서의 경험과 1인 식사에 대한 니즈를 갖고 있는 소비자를 정확히 겨냥해 냈죠. 뉴스 1면을 도배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아오리라멘은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직격탄을 맞게 됐고, 위기 끝에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며 아오리의 행방불명으로 개편을 하게 됩니다. 만약 오너 리스크가 없었다면 꾸준히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1인 좌석 형태의 매장 콘셉트는 꽤나 매력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갔어요.
당시 우리나라의 이치란라멘이 아오리라멘이었다면, 지금은 '미분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떠들면 혼나는 쌀국숫집으로 유명한 미분당은 2014년 3월 신촌에서 시작해 어느새 10년 이상 살아남은 장수 브랜드가 되었어요. 베트남 쌀국수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해 제공하는 쌀국수와 1인 식사에 맞춘 조용하고 협소한 공간이 미분당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았죠. 프랜차이즈이지만 지점별로 맛의 편차도 덜한 편이고, 호불호도 거의 없을만한 맛을 선보이는데, 불호가 있다면 대부분은 매장의 분위기와 서비스 때문일 거라 예상돼요. 그렇게 떠들지도 않았는데 직원이 조용히 해달라고 말해 기분이 상했다는 리뷰를 꽤 봤거든요. 서비스적인 측면에서 그런 행동이 당연하고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특색 있는 콘셉트를 오랫동안 유지해나가고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미분당이라는 브랜드만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만큼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미분당은 굉장히 특이한 공간입니다. 외식을 즐기러 나온 소비자에게 독립성을 강조해요. 사람 냄새가 조금 덜 난다고 할까요? 보통 외식이라 하면 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구경도 좀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표현하는 등 주변인과 함께하는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미분당은 그런 분위기를 일절 차단하려고 하니, 어찌 보면 무모하면서도 용기 있는 선택으로 보여요. 소비자에게 "우리 음식을 먹는데 집중해" 하고 무언의 가이드를 해주는 셈입니다. 그만큼 쌀국수 맛에 자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죠.
미분당의 공간은 소비자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옷가지, 가방 등 음식을 먹을 때 거슬릴 수 있는 부피감이 있는 물건을 벽면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으면, 미분당을 맛있게 즐기는 법이 안내되어 있는 설명들이 테이블 곳곳에 붙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나만의 개인 테이블처럼 서랍에는 식기가, 윗 선반에는 소스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반찬이 부족할 땐 빈 접시를 바 위쪽에 올려놓으면 직원이 알아서 채워주고, 심지어 사리추가가 무료라서 원하는 만큼 쌀국수를 즐길 수 있어요. 그 좁은 공간에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오밀조밀하게 세팅을 해두었죠.
우리에게 오롯이 음식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요즘 식사는 곁들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영상을 보거나, 식사를 하며 대외활동을 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미분당은 단순하게 혼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음식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매장의 공간 설계만 봤을 때 그런 강요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이에요. 마치 이곳에서만이라도 음식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배려처럼 느껴집니다. 직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건 물론 아쉬운 부분이지만, 전체적인 공간 설계와 분위기에는 쌀국수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하려는 미분당의 의도가 느껴져요.
미분당의 대표 메뉴인 힘줄이 들어가 있는 쌀국수를 받아 국물을 한번 들이켜면, 나주곰탕에서 느낄 수 있는 깔끔한 국물의 맛이 전해집니다. 테이블에 붙어있는 소스 제조법에 따라 해선장과 핫소스를 조합해 고기, 숙주를 살짝 찍어 먹기도 하고, 야들야들한 힘줄과 숙주를 순정 상태로도 즐겨요. 오늘따라 배가 안 찬다 싶으면 면을 추가해서 한 번 더 쌀국수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그릇은 또 비워져 있죠. 음식을 먹고,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는데도 꽤 다양한 방식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온몸의 감각을 음식에 할애하는 게 미분당에서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제 미분당은 우리나라의 대표 쌀국수 프랜차이즈가 됐습니다. 가맹점은 100호점을 돌파했고, 인테리어 유사 행위로 타 쌀국수 업체에 부정경제행위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 2023년에 승소 판결을 받으면서 미분당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지켜냈어요. 한때 불었던 쌀국수 열풍은 다소 바람이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며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교하고 고집스러운 콘셉트의 힘일까요? 저에게도 1인 식사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브랜드가 미분당인 걸 보면, 그 집요함이 눈에 띄는 브랜드를 만드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치란라멘의 방식을 한번 적용해 보자"의 마음에서 그쳤다면, 지금의 미분당 같은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았겠죠. 조용해야만 하는 분위기에 대한,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피드백으로 받을 때마다 잘못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브랜드가 설계하고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결과물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존재해야 합니다. 미분당에게는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전달하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명분이 있고, 명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브랜드는 브랜드의 코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선해 나가며 성장합니다.
미분당을 보면서 브랜드는 결국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미분당에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비판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깊게 뿌리가 내린 나무는 잘 흔들리지 않아요.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죠. 인기와 유행에 따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기보다,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찾아 브랜드다움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 코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열광하는 소비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선택은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