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빵
인기 있는 음식점에는 반드시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가 하나씩 있습니다. 2010년대 새마을식당의 폭발적인 유행을 기억해 보면 알람에 맞춰 끓여주는 7분 김치찌개가 딱 그런 케이스였어요. 다른 매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자박한 짜글이 스타일로 조리하며 밥에 덜어 김을 올려먹는 레시피까지 소비자를 열광시킬만한 요소를 듬뿍 가지고 있었죠. 불맛이 가미된 연탄불고기를 먹고서 기다리는 7분 김치찌개에 대한 기억은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케팅에 있어서 상품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요. 소비자의 인식에 강력하게 각인될 이미지가 되거든요.
팀구매 플랫폼 '올웨이즈'의 성장 스토리에서도 마케팅에 상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바이럴에 실패하던 올웨이즈는 비슷한 유형으로 큰 성공을 이룬 중국 '핀둬둬'의 케이스를 전해 듣게 되는데, 핀둬둬의 휴지가 너무 저렴해서 중국에서 핀둬둬 휴지를 안 써본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어요. 전반적인 기능보다 상품 하나에 집중해야 된다는 걸 깨달은 올웨이즈는 1kg의 양파를 1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10인 팀구매 상품을 만듭니다. 핀둬둬의 휴지처럼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이후 또 한 번의 테스트로 감귤 3kg를 1만 원에 구매할 수 있는 99인 팀구매 상품을 제작합니다. 이번엔 상품을 만들면서도 99인은 모으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했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감귤을 구매하기 위해 100팀의 팀구매가 성사된 걸 확인합니다. 전국의 아파트 단톡방과 맘카페에 팀구매 상품에 대한 공유 글이 돌아다니며 바이럴이 됐거든요. 100만 원의 비용을 쓰려던 계획은 반나절만에 1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게 되는 기적으로 변했고, 1만 명의 총 유저수는 3일 만에 13만 명으로 증가하며 올웨이즈는 이커머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품 하나가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어요.
마케팅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개인이나 조직의 목적을 만족시키는 교환 과정을 원활히 창출하기 위해서 4P를 가지고 하는 활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4P는 '마케팅 4P'라고도 불리며 마케팅을 이루는 축이에요.
마케팅 4P
Product: 제품
Price: 가격
Place: 유통
Promotion: 판매 촉진(광고, PR, 세일즈 프로모션)
흔히 마케팅을 광고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광고는 마케팅 4P의 요소 중 하나일 뿐입니다. 올웨이즈의 감귤 99인 팀구매 상품의 경우는 제품에 대한 기획과 품질, 그리고 저렴한 가격이라는 요소가 합쳐져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되어준 셈이죠.
문제는 상품을 통해 브랜드가 이름을 알리고 난 이후입니다. 마케팅은 인지도를 높여줄 수는 있지만 브랜드의 신뢰를 높여주지는 못해요. 한 번 유행은 탈 수 있어도 그게 지속 가능하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손님 테이블에서 7분의 타이머가 울리길 기다리며 군침을 흘리던 새마을식당의 7분 김치찌개는 더 이상 손님상에 타이머를 두지 않습니다. 가게와 점주의 편의를 고려해 주방에서 조리가 다 된 상태로 음식이 나오는데 이 지점에서 상품의 매력도가 떨어졌어요.
상품은 필연적으로 변합니다. 아무리 대표 메뉴라 해도 여러 가지 환경이 변화를 요구하죠. 대량 생산을 고민하게 되거나, 원자재 값이 변하거나, 효율을 택하거나,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하거나, 트렌드에 따라가는 등의 수많은 요인들 속에 놓입니다. 상품은 늘 개선해 나가야 하며 이를 통해 브랜드도 성장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트리기도 해요. 필연적으로 변하는 상품의 개선 속에서 지켜야 할 것과 변경해야 할 것을 나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상품이 품은 브랜드의 가치입니다. 7분 김치찌개가 가진 7분을 기다리며 타이머를 바라보던 약 10년 전 소비자의 경험이, 어쩌면 새마을식당이 가지고 있던 브랜드의 가치였을 수 있어요. 이 지점에 브랜딩이 존재합니다.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영역은 마케팅이 아닌 브랜딩이거든요. 소비자의 경험을 지킬 수 있도록 가게와 점주가 불편을 감수할 '이유'를 만들어내는 일이 새마을식당에게 필요한 브랜딩이 아닐까 싶어요.
한 때 유행을 끌었던 카페 감자밭의 감자빵은 마케팅 4p로서의 상품과, 브랜드 철학을 품은 상품의 역할을 모두 보여준 훌륭한 교보재였습니다. 흙이 묻은 듯한 감자 모양의 빵을 통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감자빵을 씹었을 때 느껴지는 쫀득한 식감은 호기심만큼의 만족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맛이었어요. 사업의 계기조차 아버지의 감자농장에서 마땅한 판로를 찾지 못해 2억 원 이상의 감자가 폐기되는 문제에서 비롯한 지역 농가 문제의 해결이었죠. 사회적 가치까지 품은 감자빵은 2022년 연매출 200억을 초과하며 브랜드 성장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법인 전환 이후 3년 만에 달성한 성과였죠. 하지만 매출 성장의 과정에서 조금씩 잡음이 발생해요. 브랜드 철학에 맞지 않는 몇 번의 선택을 하게 되고, 감자밭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쩌면 그들이 원했던 길의 반대 방향에 놓였을지도 모릅니다.
2020년에 요식업은 표절 논란으로 들끓었어요. 시작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하여 백종원 대표의 칭찬을 받았던 포항 덮죽 가게의 메뉴와 상표를 도용한 한 프랜차이즈 업체였습니다. 국내 1호 덮죽 프랜차이즈 '덮죽덮죽'으로 소개하며 가맹점을 모집한 이 프랜차이즈 업체는 메뉴명까지 '골목 저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악의적인 도용 논란을 일으켜 전국민적 분노를 샀어요. 포항의 덮죽 가게 사장님은 메뉴 개발 노력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형태로 무너지는 걸 보며 덮죽을 뺏어가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했고, 도용을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사과와 사업철수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제삼자가 '덮죽집'으로 상표등록출원을 내면서 사건이 장기화되었고, 3년이 지난 2023년이 되어서야 포항 덮죽 가게 사장님은 상표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 사건은 요식업에서 조리법이 특허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표절이 국민적인 이슈가 되는데 일조한 사건이었습니다.
덮죽의 도용 이슈가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카페 감자밭과 파리바게트 간의 감자빵 표절 논란이 발생해요. 코로나 시기에 수요 감소에 시달리는 감자 농가를 돕기 위해 파리바게트가 2020년 10월 초 '강원도 감자빵' 3종을 출시해 한정 판매를 한다는 뉴스가 떴는데, 이에 카페 감자밭 측에서 감자빵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대기업과 소상공인의 상생을 위해 판매를 중단해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덮죽 표절 논란이 얼마 지나지 않아 SPC라는 대기업이 연관된 이슈가 한 번 더 발생했기에 더 큰 화젯거리가 되었어요. 파리바게트는 2년 전인 2018년에 중국 파리바게트에서 감자빵을 출시했고, 레시피를 표절하지는 않았지만 상생의 의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에 대승적 차원에서 판매 중단한다 말하며 제품 생산을 멈추었죠. 이후 파리바게트는 논란이 된 강원도 감자빵을 제외한 2종을 출시했고 농가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상생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선언하며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위 두 사건은 비슷한 표절 논란처럼 보이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소비자는 덮죽을 도용한 프랜차이즈 업체에는 분노했지만 감자빵 표절 논란에는 의문을 표했죠. 사실 관계의 여부를 떠나 상반된 반응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당사 업체의 의도 차이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덮죽을 도용한 업체는 상업적 목적에 악의적인 의도가 담겨있다면, 파리바게트의 경우 농가와의 상생을 이유로 상품을 출시했기 때문이에요. 카페 감자밭이 표절 의혹을 제기할 때 파리바게트에게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고, 파리바게트는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카페 감자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논란이 없는 상품으로 정비하며 농가와의 상생 프로젝트까지 이어나갔죠.
브랜드가 던지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을 때, 카페 감자밭이 말하는 상생은 선한 의도인가를 파리바게트와 비교하게 됩니다. 이는 소비자의 반응으로 이어지며 카페 감자밭의 상생이 과연 선한 건지 질문을 받게 되죠. 그 질문의 형태는 높은 가격에 대한 의문으로, 실제 레시피의 출처에 대한 조사 등으로 파생됩니다. 표절 의혹 당시 정말로 억울한 심정에 의혹을 제기했을 수 있지만, 상생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놓치는 안 좋은 선택의 결과를 만들어 냈어요. 만약 카페 감자밭이 파리바게트의 상생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농가 상생의 움직임이 많은 곳에 퍼지길 응원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감자빵을 독점하진 못하더라도 농가와 상생하겠다는 의지만큼은 조금 더 내보일 수 있었겠죠.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 저와 같은 사람이 평가를 내리는 건 정말 쉽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당시 사건 속에 속해있는 경우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게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 판단하기가 힘들어요. 그 상황 속에 당사자였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거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선택의 순간은 자주, 그리고 치명적으로 옵니다. 순간마다의 판단이 어렵다는 걸 안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은 한결같은 판단의 기준이겠죠. 그 기준이 브랜드 철학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오랫동안 브랜드를 지속시켜 줄 원동력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에 있어요.
감자빵의 제조공법과 디자인으로 표절 논란이 있던 2020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감자빵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업체에서 판매 중인 감자빵을 만날 수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겉모양으로는 딱히 큰 차이를 못 느낄 만큼 비슷한 제품들에는 '원조', '리얼' 같은 수식어가 붙어있죠. 인기를 얻어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상품의 경우엔 소비자에게뿐만 아니라, 판매자에게도 관심을 받습니다. 특히 유행하는 상품은 감기처럼 널리 퍼지는 특성이 있어요. 그 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을 가리는 일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상품이 곧 브랜드가 되어 나의 브랜드를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생기죠. 고기리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도 마찬가지였어요. 고기리막국수가 들기름 막국수 레시피의 최초 개발자라고 말하지 않아도 대중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경험과 추억을 통해 연상 지어요. 그런 의미에서 상품이 브랜드가 된 경우에는 원조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을 무기로 삼습니다. 브랜드가 상품의 소유권을 호소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알아서 인정을 하니까요.
고기리막국수는 우려 속에서도 들기름 막국수가 널리 퍼지도록 두었습니다. 들기름 막국수를 접하고 막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자체로 기쁜 일이 아니겠냐는 생각이었죠. 어쩌면 겉모습만 비슷하게 따라한 가게의 메뉴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경쟁력을 가질 거라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순간의 판단은 고기리막국수에게는 결과적으로 날개가 되어주었습니다. 들기름 막국수가 대중화되면서 소비하는 인구도 늘어나니 결국 고기리막국수의 막국수를 경험해 보려 방문하는 손님들이 늘어났어요.
상품이 브랜드가 되어버렸을 땐 나의 브랜드가 그 상품을 품을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상품의 성장과 브랜드의 성장은 별개의 영역이라 소비자에게 같은 인식을 심어주려 시도해도 불가능해요. 카페 감자밭의 감자빵을 먹어본 소비자는 가까운 베이커리에서 감자빵을 발견하면 기꺼이 구매해 먹어보죠. 이 과정을 소비자의 이탈로 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꾸준히 나의 상품을 선택할, 혹은 소비자에게 다시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내가 먹는 감자빵이 농가를 살리는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그 브랜드를 선택합니다.
카페 감자밭은 이후 2021년, 2022년을 거치며 연매출 200억을 초과하는, 매출 성장으로는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냐는 다른 문제겠죠. 어떤 인기 있는 매장이던지 눈에 띄는 상품을 통해 규모의 성장을 이루고, 그다음 단계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필요해져요. 이를 돕는 건 결국 브랜딩입니다. 브랜드 철학이 올곧이 서있는 브랜딩이 필요하죠. 2023년 공시 매출액이 175억으로 감소하며 전년대비 -18% 성장을 기록한 감자밭은 숙제를 떠안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감자빵을 기부하며 사회공헌을 하고 강원도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상생 활동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또 다른 선택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지는 그들이 만들고 싶은 브랜드 철학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