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우서울
외식업계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서울시 내 외식업 폐업 점포 수가 6290개에 다다랐는데,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던 2020년 1분기의 6258개보다 많은 수치라고 해요. 외식업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태계의 근간이라 볼 수 있는 자영업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일종의 양극화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은 안 좋아지고 이왕이면 한 번 먹을 때 맛있고 인기 있는 가게의 음식을 즐기고 싶은 게 당연해 보입니다. 줄 서는 식당이 늘어나는 만큼 폐업하는 가게도 많아지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에요.
외식업은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산업에 속해요. 노동한 만큼의 생산물을 팔아서 정직하게 이득을 챙기는 데다 상권이라는 게 있어서 성장을 저해하는 천장도 존재하죠. 수요가 늘어날 수 없기에 내 몸을 아무리 갈아도 쏟아낸 시간만큼 돈을 못 벌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외식업 비즈니스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폐업하는 점포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최근 몇 년간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이 되었던 이슈는 '인건비 절감'이었습니다. 테이블링, 태블릿 메뉴판, 서빙로봇 등 서버 역할의 대체군이 보편화된 데다가, 주방 내부에서도 조리 로봇이 등장하며 다양한 기술적 접근을 통해 인건비 절감을 시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접객이나 음식 조리를 위해 쓰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장에 나와있는 기술을 잘 활용하면 매장의 전체적인 생산성도 높일 수 있죠. 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손님이 많아지는 건 아니라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외식업계의 상황과는 다르게 몇몇 주요 상장 식품 기업들의 경우에는 2024년 2분기를 기준으로 꽤나 큰 폭의 실적 향상을 보였어요. 특히 국내 소비가 줄어드는 실정에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 성과를 얻은 기업들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CJ 제일제당의 비비고와 삼양의 불닭 시리즈, 오리온의 꼬북칩 같은 식품들이 해외에서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식품이에요. 한정된 수요의 국내 시장 비즈니스에 그치지 않는 모습이죠. 이제는 외식업 비즈니스도 해외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의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 이전에 주제로 다뤘던 하남돼지집은 해외 진출을 통해 외연 확장을 해나가고 있어요.
문제는 작은 브랜드에게는 이 모든 걸 고려할만한 기회와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고피자, 롸버트치킨처럼 조리 로봇을 개발해 투자를 받는 테크 기업이 될 수도 없고, 하남돼지집처럼 글로벌 시장을 두드릴 여유도 없어요.
그럼에도 시장 문제를 풀어나가는 브랜드와 시장 상황을 공부하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판단하고, 가진 기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시장은 어느샌가 '적자생존'의 치열한 환경에 놓였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적응하고 적용해야 해요.
이런 때에 시장에 새로운 어젠다를 던지는 인물이나 브랜드를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그중 F&B 시장에 공간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부동산 가치 상승을 통해 수익을 얻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글로우서울'은 현재 F&B 시장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에요.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가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그들이 해왔던 프로젝트가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를 스페이스 솔루션 기업이라고 정의하는 글로우서울은 익선동, 창신동 등 지역 활성화를 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부터, 의왕 타임빌라스 같은 큰 규모의 공간까지 설계하며 F&B 시장에만 한정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글로우서울을 설립하기 전 유정수 대표는 IT 스타트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습니다. 심지어 천문우주학과를 나왔으니 요리에서도, 건축에서도 전공자가 아니었죠. 글로우서울의 시작은 그에게는 부업의 개념이었던 2015년 익선동의 '글로우키친'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익선동이라는 장소에 크게 매력을 느꼈다고 해요. 그렇게 만든 4곳의 익선동 F&B 매장을 시작으로 청수당, 온천집 같은 글로우서울을 대표하는 매장이 익선동에 들어섭니다.
흥미로운 매장들이 들어서자 죽은 상권이었던 익선동에는 점차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유정수 대표는 상권이 살아나고 그가 만든 공간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며 오프라인 상업 공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합니다. 기존 성공한 매장들의 성공 요인을 보여줄 만한 공통된 키워드를 뽑아봤을 때, '공간 기획과 컨설팅'이 글로우서울이 가야 할 기업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유행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가격을 낮추는 과열 경쟁도 필요 없는 '공간'이라는 키워드의 새로운 비즈니스는 글로우서울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글로우서울이 처음에 자리 잡았던 익선동은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어요. 이후 대전 소제동, 서울 창신동, 가로수길 등 소외되거나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개발하며 대표 로컬크리에이터로 자리 잡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지닌 브랜드는, 특히 요즘 같이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에는 더 각광받을 수밖에 없죠. 글로우서울이 이후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으며 B2B 사업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합니다.
매장의 성공 요인에 음식의 맛이 전부가 아니라는 명제가 F&B 시장에 생겨나면서 공간과 인테리어의 중요성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다르게 표현하면 음식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러 오는 공간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님이 공간에 매료되어 소비를 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시가 런던베이글뮤지엄입니다. 최근 매각 루머와 함께 3000억 원의 몸값을 요구한다는 뉴스가 뜨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외식 브랜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금액이죠.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회사인 LBM의 2023년 매출액이 360억 원, 영업이익이 126억 원으로 알려져 있고, 이에 따르면 영업이익률은 35%에 육박합니다. 노티드를 운영하는 GFFG가 당해에 적자로 전환된 걸 생각해 봤을 때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죠. 법인이 2022년에 설립되어서 아직 정확한 공시가 되지 않아 추정만 가능하지만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음식 원가율이 비교적 낮겠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즉, 손님들은 베이글의 판매가가 원가 대비 높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언가에 돈을 지불한다는 거죠. 감각적인 콘셉트와 그를 잘 표현해 주는 공간 설계 같은 요인 말이죠.
글로우서울의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과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가치 창출의 새로운 요소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매일의 노동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설계된 공간이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관점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유정수 대표는 방송을 통해 가게 솔루션을 진행하면서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됐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뚜렷한 콘셉트 없이 설계된 공간을 뜯어고치는 건 물을 아래에서 위로 역류시키는 일이니까요. 글로우서울은 공간을 설계하는 비즈니스를 구축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상업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어젠다를 책과 방송을 통해 던지며 산업의 리더 역할도 수행하고 있어요.
유정수 대표가 쓴 책 '있는 공간, 없는 공간'에는 글로우서울이 상업 공간을 설계할 때 기준으로 삼는 철학과 유행에 휘둘리지 않을 시장의 법칙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공간에 대한 유정수 대표의 가치관은 브랜드의 규모가 크던 작던, 평수가 넓던 좁던 차별하지 않아요. 전체 시장에 통용될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죠. 부피가 클수록 매력적이라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상대적인 비교일 뿐입니다. 중요한 점은 각자의 환경에서 누구나 적용해 볼 만한 시장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점이죠.
<있는 공간, 없는 공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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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6대 4의 법칙|유휴 공간이 있는 매장이 살아남는다
2장 선택과 집중의 법칙|사람들을 오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하다
3장 차원 진화의 법칙|공간의 차원이 올라갈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4장 최대 부피의 법칙|높고 큰 공간이 사람을 매혹시킨다
5장 경계 지우기의 법칙|경계가 지워질 때 공간은 자연스러워진다
6장 세계관 구현의 법칙|끝까지 밀어붙인 공간이 경쟁력을 갖는다
용리단길 요리사 남준영 셰프의 브랜드 기획 스토리를 기억하시나요? 베트남 비스트로 '효뜨'에 놓을 오브제를 찾기 위해 베트남에서 180kg에 달하는 소품을 들고 온다거나, 든든한 한 끼이자 아침식사로서의 쌀국수를 제공하는 '남박'의 영업시간을 오후 3시까지로 제한하거나, 일자로 길게 늘어져있는 좁은 공간을 일본식 스탠딩바인 타치노미로 구현한 '키보' 등은 F&B 시장에 브랜드 기획력의 힘을 보여주는 예시였어요.
또, 유정수 대표가 소개한 법칙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침 쌀국수를 위해 저녁 영업을 포기한 남박의 선택과 집중을 볼 수 있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타치노미를 구현하기 위해 의자를 없앤 세계관을 지키는 노력도 확인할 수 있죠. 남준영 셰프의 브랜드가 유명해진 이유를 고려해 보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만큼이나 브랜드 기획이 중요하고, 때론 음식보다도 역할이 크다고 느껴집니다.
공간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브랜드를 기획하고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전체 영업기간 동안 매일 같이 음식을 만드는 노동과 동일한 영역에 놓여있습니다. 단지, 몇 년 동안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을 기획과 설계의 경우에는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것뿐이에요.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조사하고 준비해 공간을 만들어내느냐가 F&B 시장에서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저부가가치의 비즈니스 모델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작은 브랜드의 공간이 활용되기 위해서 말이죠. 글로우서울이 그랬듯, 시장의 흐름을 캐치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