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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Sep 20. 2021

글쓰기가 재미있나?

그리고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그런데 ㅇㅇ님은 글쓰기가 재미있나요?

한창 열변을 토하는 나에게 L님이 물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요. 재미있지 않아요."

찰나의 정적을 가르며 용기 내어 진실되게 대답했다.


전화로 근황을 떠들어대는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글 쓰는 거 재미있니?"   

"아니. 글 쓰는 거 힘들어. 하나도 재미있지 않아."

즉각 나온 투정 어린 나의 대답에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음악을 좋아하기에 열심히 우쿨렐레를 치는 엄마는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사실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대체 재미있지도 않은 글쓰기를 난 왜 계속하는 걸까? 글쓰기가 재미있냐는 물음을 맞닥뜨리자 바로 대답할 수 없으면서.


글을 쓸 때면, 외면은 고요하지만 내면에서 꽤나 치열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노트북 앞에서 멍한 눈으로 타닥타닥 쓰거나 눈을 껌뻑 껌뻑 일 뿐이만, 안에서는 내가 가진 모든 사고체계를 동원하여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선박의 키를 틀어쥔 듯 주제와 방향성이 엉뚱하게 돌아가지 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물이나 배경 설정을 조사할 땐 망망대해 인터넷 바다 위에서 낚싯대를 던져 원하는 정보가 올라올 때까지 검색과 골라내기를 반복한다. 많은 인터넷 창으로 인해 컴퓨터가 버벅거릴 때까지 찾아 대략적으로 내용을 정리해 놓고, 글의 구성을 잡아본다. 주로 짧은 글을 쓰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머릿속에서 기승전결을 세워 써 나가는 방식이 가능하지만, 점점 쓰고픈 글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글의 구성 또한 복잡해 지기에 슬슬 머릿속 구성만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가 곧 다가올 듯하다.


직장 생활에 회의가 들 때마다 글을 쓰겠다는 꿈으로 도망쳤던 다짐을 도피 수단만이 아닌 또 다른 실현으로 만들고 싶었다. 무엇을 해야 할 줄 몰랐던 그때의 나는 브런치를 알게 되어 작가 신청을 하였고, 빠르진 않지만 하나씩 차곡차곡 글을 쌓아갔다. 시작할 때는 한껏 부풀어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은 참 쉽지 않다. 글을 쓰다 내팽개쳐놓고 다시 돌아와 몇 문장 쓰다 또 도망가는 행위를 샐 수없이 반복하며 놀러 가기 딱 좋은 오늘도 어느 공간에 콕 박혀 또 글을 쓰고 있다.


어느덧 글쓰기는 숙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방학 숙제에 꼭 있는 일기처럼 매일매일 꾸준히 써야 하는 최고 난이도의 숙제가 되어버린 글쓰기이다. 매일 일기 쓰기 귀찮았던 어린 내가 달력 아래에 자그맣게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적어놓고 개학 1주일 전에 몰아 써버린 것처럼 글로 쓰고자 하는 주제를 핸드폰 메모장에 주절주절 저장해 놓고 키보드를 치다 지우다를 반복하는 행태는 정리되지 않은 내면의 느낌과 생각들이 정순하게 꺼내어지지 않음에 괴로워하는 발버둥이다.   


이리 괴롭기 그지없는 것을 두고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다 당당히 말하는 것일까.



파도가 슬며시 들어오다 빠져나가는 어둑한 밤의 해변에서 부르는 노래를 도시의 사무실에 듣다 눈물이 고여버렸다. 서로를 막아주는 파티션이 없었다면, 원치 않게 나의 눈물을 다른 이에게 보여 줄 뻔했다. '도망가자'고 시작하는 속삭임에 빡빡한 사무실 건물 중 한 곳에 자리 잡아 일에 치이는 무표정한 회사원의 페르소나를 나도 모르게 벗어버리고 말았다. 답답한 가면을 벗어던진 채 한동안 노래를 반복해 듣다 오전 근무시간이 다 가버렸다.


살아남음은 언제나 힘겨웠고, 힘들다.

사회에서 나의 자리를 만들고 지켜 나는 것이 녹록지 않아감을 점점 알아가는 것처럼 이제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노(老) 작가의 도전적인 글귀를 호전적으로 받아들이던 지난날의 나는 점점 움츠려간다. 나 따위가 글을 쓴다 말하는 게 예술가병 걸린 게 아닐지,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나를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면피하고자 글쓰기를 들먹이는 게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나의 글이 시간의 흐름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너무 가벼워 읽는 순간 날아가버릴 끄적임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는 문장일까 걱정되어 꾹꾹 눌러쓰다 지우개로 박박 지우길 반복했다.


도망가자는 한 마디는 보이지 않는 부담에서 도망하게 해 주었고,

돌아오자 씩씩하게 라는 가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새벽에 혼자 되뇌던 말들을 잊어버릴까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옮기게 만들었다.

아, 그냥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쓰는 거야.

돌아와서 씩씩하게 다시 글을 쓰자.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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