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 May 06. 2020

난 겁이 났었습니다.

래퍼 송민호 씨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상투적인 인사말이지만, 이리 묻는 걸로 편지를 시작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은 여느 때와 다른 2020년 봄날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회사 이름과 동료가 포털사이트 사회면에 오르내리며 온갖 구설에 휩싸였고,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여러 활동들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착잡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제는 형제같이 붙어 지내던 같은 그룹의 형들이 입대하면서 조금씩 삶의 발걸음이 달라지는 변화의 시점에 서 있는 송민호 씨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제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바쁘지만 잠깐만 제 글을 읽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어려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어라 명명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를 찾아가기 위해 도전할 용기도 없었습니다만, 가난만은 지긋지긋해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번듯하고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고, 아이들과 같이 속셈 학원, 서예, 검도를 배우러 가고 싶었습니다. 빈부의 극단이 공존하는 교실에서 상처 받은 제가 도망간 곳은 책이었습니다. 책 속의 세계는 현실의 초라한 나를 버리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독서가 재미있을수록 작가가 되어볼까란 선망도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하루 동선이 얼마의 돈을 소비하는지 10초 만에 계산되는 아이에게는 시간을 기약할 수 없는 작가의 미로를 지독한 가난의 갑주를 걸치고 뛰어들기가 겁이 났습니다. 용감히 꿈 하나를 향해 달린 그대와 달리 깊숙한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생계를 위한 돈을 벌 때 누구나 선택하는 회사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손톱의 때가 남의 눈에 띌까 부끄러웠던 아이는 네일숍에서 관리받은 손으로 타이핑한 자신의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운 어른이 되었습니다. 욕조에 고급 입욕제를 넣고 반신욕을 할 수 있는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해외여행도 턱턱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보지 못 하게 검색 미허용으로 설정되어 발행한 글들이 블로그에 쌓여갔습니다. 당시 나는 마냥 내 글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회사 일을 하다 힘들고 괴롭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때려치우고 작가나 해볼까 읊조리기만 하며 이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의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필요할 때만 꿈을 소모하고 있었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녹록지 않는 사회에서의 생존은 저를 벼랑으로 몰고 갔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도 쓸모없구나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고 공허한 나날이 흘러가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회자되던 송민호 씨가 '겁'이라는 노래를 경연 무대에서 부르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들게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랩을 쏟아내는 장르가 힙합이라 생각했던 제가 처음 겁의 무대를 본 충격은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자막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가사 한 줄 한 줄이 박혀있던 래퍼의 꿈을 위해 달려왔지만 그에 따라오는 여러 가지 현실에서의 방황이 이상하리만치 저를 강타하였습니다. 영상을 반복하여 볼수록 명확해졌습니다.


작가가 되자.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사 읽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직업을 선택하던 제가 오로지 스스로 원하는 형용사를 곁들이는 직업을 가지겠노라 다짐하는 처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의식 강한 저에게 아주 늦게 찾아온 첫 다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글을 읽자는 소신을 가진 제가 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가로서의 삶'을 읽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동경'이라 생각했지만, 내면에서 끓어오르던 '목표'였습니다. 다만, '목표'를 정확히 수식할 형용사를 찾지 못해 방향성 없는 제 글이 마냥 부끄럽기만 했나 봅니다.


여전히 저는 아침저녁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규칙적으로 주간 보고서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작가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으며, 주말을 이용해서 글쓰기 클래스에도 다니고 자신 없어 재껴둔 소설 쓰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저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책을 발행한 브런치 저자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닙니다. 이러면서도 회사가 바쁘단 핑계로 쓰던 소설을 매듭지지 못하기도 하고, 퇴고를 못해 부족한 글로 마감을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구르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사 읽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다짐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꿈의 실현 여부는 모르겠지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처럼 내일 운석이 떨어진다 해도 저는 송민호 씨의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겁 많던 저에게 삶의 '목표'를 위한 첫 다짐을 하게 해 준 음악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2화 글쓰기가 재미있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