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당당하게 나의 글을 선보일 수 있는 마음
기대만큼의 글을 쓰지 못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지난 몇 달간 받았던 스트레스가 집약되어 폐부를 찌르며 나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말이었다.
나는 항상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질문을 하려고 해도 그게 폐가 될까 봐 무서웠다.
내가 표현하는 것들이 다수에게 해가 될까 전전긍긍했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고, 이는 나의 글에도 반영되었다.
무섭다. 걱정된다. 그리고 두렵다.
창조적으로 써도 된다는 말이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족쇄에 묶인 느낌으로 미쳐버릴 정신을 붙잡고 하루 종일 앉아있었는데, 편하게 천천히 하란다.
나는 스스로 검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쓰고 표현하는 것들이 문제가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범위 안에서만 조금씩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날 거 같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족쇄에 매여 자라난 코끼리 같이
이제는 조금만 힘을 주고 움직이면 기둥을 뽑아버릴 수도 있지만
지나간 경험과 기억들이 만들어 버린 포기와 무기력으로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써야 할까? 왜 못 쓸까?
오랜 시간 글을 쓰는 업을 가지고 싶었으나, 차마 이 직업을 택하지 못한 것은 수입에 대한 불완전성이라 여겼었다. 가난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삶은 살고 싶었기에 평범하게 회사원이 되어서 월급이라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수입을 가지고 세상 어디에도 티 나지 않고 살아가길 바랐기에 택하지 않다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의 글에 용기 내지 못 했던 그 부끄러움과 수줍음도 문제였다.
나는 나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입 발린 소리라고 여겼다. 그나마 직설적으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하는 약간의 칭찬이나 행동이 수반되는 칭찬만을 걸러내어 믿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하는 칭찬은 다 거짓이다. 인간관계를 대하는 내 안의 기본 전제였다. 이러한 나에게 글은 솔직하게 내면을 담아 내려 노력하는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처음은 내면의 감정 배설로 시작되었으나 점점 쉽게 휘발되지 않고 한 자 한 자가 마음에 와닿을 수 있도록 진실되게 쓰고 싶어 졌다.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나의 진심을 알게 된다는 비웃거나 가찮게 여기며 쫙쫙 씹다 버리는 가십으로 여기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이제는 내던져야 하나보다. 용기 내어 한 발자국 내밀려고 한다. 한없이 부끄러워 비공개 처리했던 나의 내면을 글자로 옮겨 적은 기록들을 당당하게 드러내려 한다. 누구에게는 자부심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는 진실한 나를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나 보다. 처음 눈 내리는 하얀 길을 마주한 코끼리처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가 무섭지만, 조심스레 내 마음이 그어버린 선을 넘어보려 한다. 어쩌면 그 무서움과 두려움은 내 안에서 만든 형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순간 닿았던 하얀 눈가루는 발바닥의 온기로 사르르 순식간에 녹아져 겁먹었던 코끼리가 별 거 아니라 여기며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됨을 알고 싶다.
언제 잠이 들어도 어스름 밝아지는 새벽에 깨어나 뜨고 싶어 하지 않는 눈을 감으며 동그랗게 등을 말고 숨고 싶은 굼벵이는 이제 혼자 숨죽여 내던 그 울음을 멈출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