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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r 01. 2023

무지개가 눈 앞에 있었어


비가 그친 저녁의 그 서늘한 바람은 내 삶의 설렘이다. 그 다음 날의 맑은 풍경은 내 삶의 기쁨이다. 먼지가 사라진 도심의 하늘, 본연의 녹음으로 성큼 내려온 산들. 하늘색이 어울리는 하늘. 등등. 그런 날은 너털거리며 마냥 걷곤 한다. 그 자체로서도 벅찬 기분이 들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엊그제 비가 내리고, 어제 날씨가 개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방 계약을 후 어머니를 전철역까지 바라다 드리고 삼십 여분 걸었다. 바람은 불어 거리의 먼지는 사라졌고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 기운이 강하지 않았다. 가로수들의 흔들거림을 보며 토요일 오후의 완보를 만끽했다. 그리고 고시원에 들어와 빨래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았다.


일어나 빨래를 널러 옥상으로 올라가던 도중. 반대편 장군봉 넘어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쪽팔리게 와 무지개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빨래를 널며 그 무지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무지개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 거리의 사람들은 그저 바쁜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쌍무지개를 보았다고. 95년인가 일기장에 적은 적이 있었다. 그 다음 본 무지개가 2003년이고. 근 2년 만에 서울의 하늘에서 다시 무지개를 보았다. 그 풍경이 신비로웠다. 문득.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그리움들도 눈앞의 무지개처럼 한 순간 찬연하다 사라질 것이다. 허나 비록 사라질 그 그리움일지라도 한 순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다는 것. 내 그리움이 그 사람과 내 삶에 무지개처럼 찬연하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날 뒤돌아 볼 때 순간 무채색의 일상을 화사하게 채워줄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2005년. 5월 즈음의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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