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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Aug 31. 2024

11. 아브라함 2,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지난 글에서 믿음의 조상,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봤다.

기대와는 다르게 왜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일까를 궁금해졌을 정도로 아브라함은 별 볼 일 없었다. 오히려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그 궁금함은 하나님으로 옮겨졌다.

도대체 이런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 일지를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 집중해 보려 한다.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부분에서 기존과는 달라지셨음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 달라지신 하나님을 분석해 보자.


하나님의 달라지심 중 가장 먼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장 1절 ~ 3절)


무엇이 달라졌나?

지금까지는 온 인류를 향한 축복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다음과 같이 축복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28절)


홍수심판 후 노아의 가족에게도 같은 축복을 하셨다.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창세기 8장 17절)


온인류를 대신해 아담과 하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하신 그 축복을 단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만 허락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온 인류에게 내리신 축복을 아브라함에게만 집중해 그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 하신다.


어떤 이유일까?


하나님의 달라지심 중 다른 한 가지는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의 변화이다.


창조 이후부터 아브라함 전까지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는 기대하심으로 지켜보시는 것이었다.

창조 이후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 명령하셨을 뿐 별다른 개입함이 없다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조치를 취하셨을 뿐이다.

선악과 사건 이후도 경작하고 출산하는 일이 고통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명령은 유효했고 하나님은 그 명령이 실행되길 기대하시며 별다른 개입함 없이 지켜보기만 하셨다. 그러다 악함이 수위를 넘자 홍수로 심판하셨을 뿐이다.

홍수심판 이후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다시 하시고는 지켜보실 뿐 별다른 개입함이 없으셨다.

그러다 바벨탑사건에 다급히 개입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바벨탑 다음이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하나님은 이전과는 다르게 아브라함 한 사람의 인생에 시시각각 개입하시더라는 것이다.

나타나 부르시고 축복하셨으며, 어디를 떠나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지시하신다.

아브라함의 찌질한 판단으로 아내 사라를 권력자에게 보내는 상황에도 하나님은 나타나 개입하시고 사라를 지켜 다시 돌려보내신다.

수시로 나타나 복을 상기시키실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까지 복된 이름으로 바꾸어주신다.

아들을 준다 약속하셨고,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믿을 것을 당부하시기도 하신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내야 하는지를 갈등하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는 떠나보내라 하셨으며, 이스마엘도 사랑했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를 통해서도 큰 민족을 이룰 계획을 알려주시며 안심시키신다.

이뿐인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친히 살피시고 심판하실 뿐 아니라 그 가운데 롯을 구해내기도 하신다.


갑자기 바빠지셨다.

어떤 이유일까?


아무런 자격이 없는, 오히려 찌질하기까지 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

온인류에게 내리신 축복을 아브라함에게만 집중하신 것.

지켜보시며 심각한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만 개입하시던 것을 수시로 빈번하게 개입하시는 것.


뭔가 감이 잡힌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해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살아갈 줄 알았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겠다 했다.

노아라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자를 선택해 다시 시작하면 그 노아를 본받아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이룰 수 있겠다 판단했으나 그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이 발생했다.

아마도 인간을 믿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라 판단된다.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 끝에 하나님은 방법을 변경하신 것이다.

때문에 가르치자,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만나고 가르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경험케 하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만한 대상으로 믿게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복임을 알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그에게 복을 약속하시며 하나님을 믿고 따를 것을 요구하셨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고 스스로 살고자 아내를 희생시키지만 그 순간 사라를 구해내시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케 하신다.


아브라함이 한 번에 바뀌었을까? 아니다.

아들을 주겠다 하셨지만 자신의 판단대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 다시 구체적으로 약속하신다. 더불어 그 아들을 통해 이룰 나라를 약속하시며 땅도 주겠다 약속하신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를 어떻게 믿냐고 증거를 요구한다.

이 정도면 내칠 만도 한데 하나님은 제물을 준비하라 하시고 스스로 그 제물을 태우시며 언약의 의식을 치러 증거를 삼으신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렇게 까지 분명하게 약속하시는데도 믿지 못했다.

사라를 또 누이라 하며 그랄왕이 데려가는 것을 내버려 둔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브라함에게 노하지 않으시고 다시 사라를 구해내시며 다시금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케 하신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도, 아내 사라도 이제는 나이 들어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아들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경험케 하시고 부정할 수 없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아브라함을 시간을 들이고, 순간순간 개입해 경험케 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당신을 향한 온전한 믿음의 자리에 섰음을 확인하신다.


이것이 바뀐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신뢰하심으로 기다리셨던 것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기로 하신 것이다.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대하듯이 그의 아들 이삭을, 이삭의 아들 야곱을, 야곱의 열두 아들과 그들을 통해 만들어진 이스라엘을 대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시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 포기하지 않으심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 하는 것이리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신실하심으로 방법을 바꿔가시며 이리저리 직접 일하시며 원하는 것을 만들어 가신다. 이 일 하심을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라 하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이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이 반듯이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며, 이 세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드실 것을 믿는다.


솔직히 아브라함 보다 내가 좀 더 낫지 싶다.



P.S

포기하지 않으시고 방법을 바꾸어가시며 시행착오도 겪으시는 하나님.

그렇게 결국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 하심을 생각하니

상황을 따지고, 계산하며 이루어질까? 안되면 어떡하지? 주저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도 실수와 실패와 시행착오를 감수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정답 같은 것만 찾고 있는지 싶었습니다.

뭐든 뜻하는 바를 해보자, 포기하지 않고 실수를 만회하고, 실패를 거울삼고, 시행 착오를 겪어 내다보면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고 걸음을 내디뎌보자 다짐하게 됐습니다.

이런 것도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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