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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5시간전

가지 많고 바람 많은 야곱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했던가?

10명이 넘는 야곱의 자녀들로 한순간도 집안은 평온을 유지시키지 못했다.


평온함은 고사하고 하나님은 과연 이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인지, 그러실 수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질 정도이다.


굵직한 사건만 다뤄보자.


첫 번째 다나의 겁탈 사건.

다나는 야곱이 첫 번째 부인 라헬을 통해 낳은 딸이다. 다나가 가나안으로 이주한 후 그곳의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성경은 ‘다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라고 기록한다.

그 외출에서 다나는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에게 강제로 강간을 당한다.


과거 소돔에서 롯을 찾아간 천사를 보고 성욕을 느껴 내놓으라 몰려든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야곱의 시대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은 있었던 것 같다. 

세겜이 아버지 하몰에게 다나를 연모하게 되어 결혼하고 싶다며 혼인을 성사시켜 달라 청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하몰은 잘못된 일에 보복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 혼인과 부족 간의 연대를 제안하더라는 것이다.

하몰의 제안을 야곱의 아들들은 조건을 제시해 받아들일 경우 수용하려는 듯했지만 실장은 조건으로 제시했던 할례(남자의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의식)를 치르게 한 후 그 통증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때 잠입해 히위족속의 모든 남자를 몰살시킬 계획이었다.

결국 조건을 수락한 히위족속의 모든 남자들은 몰살당한다. 더불어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내들과 소유까지 노략한다.


누이가 겁탈당했지만 겁탈한 측이 제안한 결혼을 받아들여 없던 일로 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했던 것인지, 보복을 했어야 했던 것인지 솔직히 판단이 서질 않는다.

내 생각에도 그냥 좋게 넘어갈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하지만 부족 전체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소유를 노략한 그들의 보복은 선을 넘었다.

과거 아브라함이, 이삭이 다툼에 대응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며 피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많이 아쉽다.


그러나 야곱은 아들들의 잘못된 행동 보다 이 일로 지역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견제 또는 위협을 받게 되어 어려움에 처해질 것을 걱정한다.


자식들의 잘못에 한탄하고 책망 또는 훈계하기보다는 위협적인 상황에 걱정하는 야곱을 보며 하나님은 이 사건과 사건으로 통한 상황과 야곱의 반응을 어찌 보셨고 판단하셨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건에 대해 별다를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걱정하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 명하셨을 뿐이다.

벧엘은 야곱이 에서를 피해 떠날 때 처음 야곱에게 나타나셨고 축복하셨던 장소이다. 물론 야곱은 이곳에서 하나님께 건방진 제안을 하기도 했다.

왜 이곳으로 가라 하셨을까?

심지어 벧엘로 가라 하시면서 그곳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세기 35장 1절)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그날의 두려움, 그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받고자 갈망했던 축복. 그 인간적인 생각으로 갈망했던 축복을 하나님 나라의 축복으로 바꾸시고, 그 인간적인 두려움에 함께 하시며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곳이다.

이때를 상기시키신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키시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리고 벧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인근 주민들로 두렵게 해 야곱의 아들들에게 해를 가하고자 추격하는 자를 없게 하시기도 하셨다. 즉, 지키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세기 35장 5절)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오히려 축복의 약속을 상기시키시고 그의 두려움에도 과거 하나님이 지키셨던 상황들을 생각게 해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다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어 의문이 커지는 순간이다. 귀한 자식이라 잘못한 일에도 야단치지 않고 오냐오냐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후 야곱의 처신을 보고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기도 했다.

야곱은 어느 정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은 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며 모든 식솔들에게 지시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세기 35장 2절)


가나안에 도착해서부터였는지, 아니면 그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녀들과 식솔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따르는 행위를 목격해 왔던 것 같다. 심지어는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 라헬은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의 신상을 훔쳐 오기도 했었다.

야곱이 그간 이런 잘못된 행태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러 번 이야기했을 테지만 우상이라는 것이 자신의 욕심을 투사한 것이라 쉽게 끊어내지지 못했을 것이며 더불어 오늘의 참상도 모두 우상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쫓은 결과라 판단했던 것 같다.

야곱은 그간 끊어내지 못했던 것을 이번 사건을 기회로 끊어내려 한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명령한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창세기 35장 4절)


이런 끊어냄의 의식을 치른 후 야곱은 식솔들과 벧엘로 갔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나타나셨으나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이 증거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 자녀들에게 다시금 이야기되고, 자신이 하나님께 철없이 내세웠던 조건들까지 다 들어주셨음도 이야기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의 우상이 아니라 참 신이신 하나님만을 따라야 함이 강조되어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야곱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했다.


아마도 이곳에는 자신의 식솔들만 데리고 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였던 드보라가 죽어 벧엘 아래 장사 지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모시고 왔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문제를 오히려 기회로 만든 야곱의 기민함을 볼 수 있었음과 동시에 야곱의 이런 기민함이 자녀들과 거느리던 식솔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함에 사용된 것도 목격하게 된다.


야곱의 아들들의 잘못에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짐짓 짐작이 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통해 그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증명되었듯이 이 사건을 처리하는 야곱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의 실제가 야곱에게 온전하게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셨다. 그리고 아들들의 잘못에 대해 아버지의 훈계로 가르치며 하나님의 나라가 전달되고 확장되어 가길 바라셨다.


과거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부터, 동생을 죽인 카인,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바벨탑을 쌓으려던 사람들, 그리고 상대가 잘못했다는 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히위족속의 모든 남자를 몰살시키고 재산과 여자들을 노략한 야곱의 아들들까지.

이 모든 문제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욕심을 구체화하고 형상화한 것이 우상임을, 그리고 그것을 버려야 다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서 이러한 생각을 확인하고 싶으셨고, 확인하셨으며 이렇게 자녀들과 가족 모두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공표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한번 축복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과거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과 싸워 얻었던 이름, 이스라엘로 불러주신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창세기 35장 9절 ~ 12절)


이렇게 야곱과 함께 그의 가족 모두는 이스라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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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족 내의 문제를 통해 가족 전체를 하나님 앞에 서게 했고 그분만을 따르자고 다짐했지만 이후는 문제가 없었을까?


아니다.


돌아가는 중 사랑했던 라헬은 베냐민을 출산하다 죽게 된다. 

레아를 통해 낳은 첫째 이들 르우벤은 레아의 몸종이지만 후에 야곱의 아들들을 낳은 빌하와 동침하는 패륜을 범한다.

아버지 이삭이 죽고 이를 형 에서와 함께 장사 지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특별한 총애를 받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다.

이뿐이 아니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해 며느리로부터 자녀를 낳기까지 한다.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도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야곱의 가족사에는 가득하다.

이스라엘로 칭함을 받았지만 아직은 이스라엘로 불리기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야곱의 자녀들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실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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