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책을 본다.
스틸 북스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도서 기획은 '조지자 오키프'기획이다. 사실 조지아 오키프의 책 기획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조지아 오키프 책과 비치된 꽃병과 유리잔 때문이다. 조지아 오키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다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다. 조지아 오키프 책과 비치된 꽃병은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이다. 조지아 오키프 작품이 가진 평면, 추상, 색상, 여성성 중에서 오로지 색상만을 기획을 위해 가져온 모습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획에 팬톤 혹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에 대한 부분을 넣어서 맥락을 강조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혹은 여성성이 강조된 색이라 책을 비치하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지금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술을 뽑자면 단연코 '에어컨'이다. '에어컨'을 통해서 사람은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날씨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에어컨을 통해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인간 삶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최적 온도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장은 계절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여름철 무더위도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보다 더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바닷가와 거리가 먼 육지에서도 생물 그 상태로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소금에 절여 먹던 시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음식 보관이 늘자 당연하게도 식량생산기술도 늘었다. 지난여름에도 내가 방 안에서 무사히 잠을 잘 수 있었던 이유도 에어컨 때문이다. 에어컨은 산업과 생활환경을 아예 바꿨다. 아직 에어컨에 견줄만한 기술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혁신기술은 무엇인가?"가 아니다. 기술이 사람이 사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다.
사운즈 한남에 위치한 스틸 북스는 사운즈 한남을 만들고 매거진 B를 발행하는 JOH에서 만든 서점이다. 스틸 북스의 모토는 '관점이 있는 중견 서점'이다. 나는 책이 '지식'과 '취향'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스틸 북스는 '사람'에 맞춘 서점이다. 책이 가진 '개인화'와 '지식'사이의 중간지대를 표방하는 서점은 오히려 아크 앤 북이다. 교보문고는 '책'이라는 공공가치와 유통에 중심을 둔다. 이와 다르게 독립서점은 서점 주인의 취향을 그대로 닮는다. 이는 서점마다 책을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틸 북스가 관점 있는 '중형'서점을 표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틸 북스는 츠타야 서점과 많이 비교되기도 했다. 매거진 B에서 츠타야를 다룬 점도 있었고, 매거진 B를 발행하는 JOH가 만든 서점이 스틸 북스이라서 비교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츠타야가 소개된 이후, 츠타야 방식의 라이프스타일 기획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스틸 북스가 츠타야를 따라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츠타야와 스틸 북스 모두 책이 가진 '개인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두 서점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사실 무척 다르다. 츠타야는 책 자체를 '제안'으로 생각하고 이를 '생활 제안'이라는 더 큰 장르로 확장하는 게 목표다. 반면에 스틸 북스는 '일상 속 작은 발견'에 초점을 맞춘다. 스틸 북스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여전히 좋은'이라는 문구가 그 증거다.
책을 큰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이다. 또한 책을 ‘개인’ 관점에서 본다면 두 가지로 다시 나뉜다. 첫 번째는 '지식'이다. 수학 문제집, 영어회화책, 파이썬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프랑스디저트책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두 번째는 '취향'이다. 개개인이 선호하는 내용을 담은 수필, 소설집이 대표적인 사례다. 누군가에게는 난해하지만 지적 유희가 넘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 '취향저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 움베르코 에코의 소설은 짜증 나는 책일 수 있다.
'여전히 보고 싶은'속에 담긴 스틸 북스만의 정체성.
'여전히'라는 단어의 뜻은 국립국어원에서 소개하는 예시 문장인 '그는 여전히 성실하다.'로 충분하다. '여전히'라는 말은 한결같다는 뜻이자, 동시에 변함없다는 말이다. 즉 '여전히 보고 싶은 책'이라는 말은 '한결같이 보고 싶은'말과 동일하다. 동시에 '유행'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한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좋아하는'에서 '여전히'가 가진 뜻을 이해하면 스틸 북스가 추구하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여전히 보고 싶은 책'을 소개한다는 말은 '전한다'라는 더 큰 의미로 확장된다. 그 안에는 스틸 북스 만이 추구하는 '균형점'이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의 의미는 스틸 북스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일지 모른다. 자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할 단어를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 스틸 북스는 자신만의 관점과 제한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 원칙을 세움으로써 원칙에 기반해 개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또한 'still like'가 아닌 'still farvorite'라는 슬로건. 'like'가 아닌 개인의 좋고 나쁨을 사용하는 단어인 'farvorite'를 선택한 부분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렇기에 매층마다 큐레이션 한 주제와 책 앞에 '여전히'라는 말을 붙여도 의미가 있다.
스틸 북스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Still favorite'를 보는 순간 어떤 책을 소개할지 궁금해진다. 이 자체가 스틸 북스 가진 '디테일'이다. '여전히'를 강조하기에 공간에 지나치게 힘을 넣을 필요가 없다. 다양한 음식을 먹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갓 지은 쌀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밥에 담긴 정성, 추억, 기쁨을 때문이다. 하물며 영혼의 밥인 책에도 이 같은 관점은 당연히 유효하지 않을까?
앞서 진열하지 않는다. 책을 보고 나서도 책장 어딘가에 끼어 놓는다. 서점과 도서관처럼 인문학, 사회과학 등 카테고리 중심으로 분류하고 진열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 '여전히' 보고 싶은 책만이 나와 더 가까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책을 아무 곳에나 놓는다'. 내가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북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내린 결론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눈 앞에 있던 책을 다른 곳에 놓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람들이 비록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해도, 다들 책을 읽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책 질감과 종이를 다들 좋아한다. 내가 운영했던 북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던 자리는 책으로 둘러싸인 좌석이었다. 배수시설 때문에 화장실 옆에 만든 아담한 공간이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그 자리를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했다. 한 번은 궁금해서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책이 주는 이 따뜻한 공간감, 책이 둘러쌓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였다.
스틸 북스는 총 4층이다. 1층은 매거진 B, 라이프스타일 잡지, 스틸 북스 오리지널 상품이 주류를 이룬다. 스틸 북스는 1층을 '매거진 B아카이브'라고 하는데 설명 그대로다. 2층부터 4층까지는 모두 ‘주제’ 별 책을 분류했다. [일, 생활], [예술, 디자인], [사유, 사람] 각 층마다 도서 분류를 관통하는 주제는 '개인의 취향'이다.
한번 층별 소개를 문장으로 풀어보자.
2층은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이를 통해 어떤 생활을 하는가?’
3층은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은 어떤 예술인가?’
4층은 ‘나는 (. )한 사유를 하는 사람이다’다.
스틸 북스는 매 층마다 '도서 큐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으로 공간을 나눴다. 그 기준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아이맥 위치다. 아이맥을 중심으로 좌측은 '도서 큐레이션'이다. 우측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다. 구역을 나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구역을 나눔으로써 공간배치가 가능해지며, 사람들의 동선을 만들 수 있다. 반면에 구획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도서 큐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하면 공간이 어중간해진다.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구역을 명료하게 나누면 '공간의 통일성'이 깨지는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츠타야 가전과 긴자 식스 츠타야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곳을 비교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모두 매거진 B를 취급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츠타야는 매거진 B를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위한 '키 비주얼'로 사용한다. 반면에 스틸 북스는 매거진 B를 '라이프스타일 제안'의 중심점으로 사용한다.
츠타야 가전은 주방 및 가전 잡화를 매장 가운데에 비치한다. 반면에 주방 및 가전 잡화와 관련한 책을 건물 벽면에 배치한다. 책이 가진 점적인 기능과 제품이 가진 면적인 관계를 고려해 공간이 깨지는 걸 방지한 것이다. 또한 상품 매대 일부에 장바구니를 배치에 공간에 맥락을 더해서 공간 콘셉트가 무너지는 걸 막았다.
'라이프스타일 제안'이 너무 많다 보면 공간 내 기획들이 눌리거나 매끄럽지 않게 된다. 특히 서점 같은 경우에 책 그 자체가 공간 안에 '차분함'을 끌어오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자칫 하면 공간이 지저분해질 수 있다. 긴자 식스 츠타야 같은 경우는 중정을 설치해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모두 모서리로 보낸다. 이를 통해 서점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츠타야 가전은 책을 넘어서 모든 제품을 기반으로 생활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어색한 기획도 많다.
일본 기획은 대체로 분재나 정원을 만들듯이 인공적으로 '맥락'을 맞춘 경우가 많다. 동시에 일본은 무언가를 '빽빽'하게 채운 걸 좋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일본은 한국보다 기획을 다소 빽빽하게 채우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 특유의 인위적인 요소와 공간감은 한국인들에게 맞지 않기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 기획은 다소 조잡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만일 일본 기획을 보면서 '한국 정서상'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면?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사람들을 이걸 매우 직관적으로 잡아낸다. 이건 한국사람들이 까칠한 게 아니다. 한국사람들이 가진 미의식 때문에 그렇다. 한국은 빠르고 트렌디함을 찾으면서도 철저하게 자연스러운 걸 선호한다. 만약 이걸 느끼고 싶다면 블루보틀 성수점에 가보기를 권한다. 나는 더 나은 기획을 만드는 디테일은 기획을 하는 장소에 담긴 미의식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른 구현도 마찬가지다.
‘여백’과 ‘비움’, 채움, 재충전.
'여전히 좋은' 공간은 화려하기보다는 평안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연출하기 위해 스틸 북스 공간에는 비워놓은 게 많다. 스틸 북스가 의도적으로 비워놓은 곳에서는 책 넘기는 소리와 책 냄새가 느껴질 뿐이다. 스틸 북스 공간미학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면? '비움에서 발견하는 차분함'이다. 특히 2층에서 4층으로 갈수록 비운 공간이 더 커진다. 특히 4층 [생각, 사유] 코너에는 공간 3분 1은 비어있다. 물론 이 곳이 강의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도 한 몫한다. 의도적으로 비운 공간이 늘어나는 사이에는 '서점'과 '갤러리'가 겹치는 회색지대가 생긴다.
파도 같은 문양을 가진 내부 벽은 공간에 디테일을 넣는다. [내부 벽 시공에는 드라이비트를 사용했으리라 생각했다.] 창가 쪽은 계단 공간과 대치를 이룬다. 스틸 북스 각 층 입구에서 내부를 보면 갤러리 같다. 사람이 지나가는 순간에 스틸 북스 내부는 서점이다. 반면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는 순간. 공간이 휴식을 취할 때는 갤러리가 된다.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 공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사운즈 한남이 추구하는 '일상 속 재발견'은 스틸 북스에서도 유효하다.
오브제로서의 책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사람들에게 '취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책을 활용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해야 할까?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또한 소비를 위해 나온 하나의 방법 중 하나다. 책을 벌거벗긴 후에 책만이 가진 차분한 물성과 이미지만 차용해 기획에 활용하는 방식. 이 방식의 중심은 책의 상업화다. 어떤 면에서 책을 천박하게 사용하는 이 방식은 언제나 논란거리다.
하지만 책과 잡지가 가지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막강하다. 킨포크 매거진만 생각하더라도 그 안의 글과 이미지는 킨포크 스타일을 걸 매우 명확하게 보여준다. 당연히 킨포크는 라이프스타일 기획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중 하나다. 킨포크 매거진과 본 아페뜨 매거진을 같이 놓으면 '주말에는 브런치를 즐겨요'같은 기획을 수월하게 전개할 수 있다. 깔끔한 이미지와 맛있는 음식 사진이 담긴 잡지. 그 자체로 '브런치'이미지를 전한다. 여기에 적절한 스토리텔링만 들어가면 라이프스타일 제안은 생각보다 수월해진다.
지금 시대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어느 정도 습득한 후에 오프라인으로 나온다. 식료품같이 이미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물건은 온라인이 편하다. 반면에 전자제품 혹은 가구같이 가격대가 높고 직접 경험을 해봐야 구매를 결정하는 상품은 여전히 매장에서 확인 후 구매한다. 요즘에는 매장에서 물건을 확인한 후에 온라인 구매가 필수다. 이케아조차도 팝업 매장에서 물건 구매를 온라인으로 하라고 QR코드를 붙인다. 가구 브랜드 끝판왕인 이케아가 이럴정도인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책을 '오브제'로 바라볼지 '지식'으로서 접근할지는 사람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책'을 통해 더욱 정제된 지식을 원한다. 또한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 사회로 넘어간 시대에 텍스트가 중심인 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책이 가진 '텍스트'만이 책의 속성이라고 말하는 건 오히려 책이 가진 가능성을 저평가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람들이 책을 보는 프레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은 생각보다 쉬워질 수 있다.
사실 나도 책에서 이미지만 끌어오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만든 이를 무시하고 편집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종종 스틸 북스가 취한 '맥락 중심 기획'의 단점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물어보고 싶다. '누군가는 책을 난도질하거나 '맥락'중심 기획이 가진 단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누군가는 비난을 각오해야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칭찬해줘야 하지 많을까요? 스스로 매를 맞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책이 가진 의미를 더 생각하고, 더 나은 기획이나 구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스틸 북스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도서 기획은 '조지자 오키프'기획이다. 사실 조지아 오키프의 책 기획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조지아 오키프 책과 비치된 꽃병과 유리잔 때문이다. 조지아 오키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다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다. 조지아 오키프 책과 비치된 꽃병은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이다. 조지아 오키프 작품이 가진 평면, 추상, 색상, 여성성 중에서 오로지 색상만을 기획을 위해 가져온 모습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기획에 팬톤 혹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에 대한 부분을 넣어서 맥락을 강조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혹은 여성성이 강조된 색이라 책을 비치하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이 기획에서 '조지아 오키프'는 기획의도에 맞게 잘라낸 퍼즐 조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기획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지아 오키프 옆에 꽃병이 오는 순간 기획은 이미 무너졌다. 이러한 부분이 맥락으로 짠 기획이 가진 한계다. '맥락'만 취하기 때문이다. 맥락을 이어주는 끈이 하나라도 느슨하면? 기획도 느슨하다. 이 순간 조지아 오키프 책도 물건도 힘을 잃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같은 기획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 물론 만약 조지아 오키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또 다를 수 있다.
반면에 이와 대비되는 기획은 다른 곳에 있다. 건축, 디자인에 같이 비치된 '미니어처 책상'은 주제와 매우 잘 맞는다. 오히려 기획이 더 활발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디터 람스 책, 영화자료, 시계는 맥락을 중심으로 한 기획에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 디터 람스의 디자인 알아?" 하는 것보다 '이 시계와 계산기 디자인이 디터 람스가 만든 거야 어때? 이게 애플 디자인에 엄청 영감을 주었다고 해. 아이폰을 디자인한 조너선 아이브에게 영감을 준 디자인이 이거라고! 니 아이폰 봐봐'는 전혀 다르다. 또 비트라 의자를 소개하기 위해서 큰 의자를 가지고 올 수 없다. 만일 의자를 가져왔다고 생각해보자? 책을 놓을 공간이 애매해진다. 그러나 비트라 의자 미니어처를 놓음으로써, 책과 디자인은 강한 힘을 얻는다. 당연히 기획도 탄력을 받는다.
디자인은 욕망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욕망은 시대를 따라간다. 설령 책이 오브제로 변해서 자신이 추구한 책의 의미가 변질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책은 항상 '이래야 한다'다는 자신만의 우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개방적으로 접근하자. 사람들의 욕망이 책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책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매체다. 이는 지금도 변함없다. 책은 변한 게 없다. 우리가 변했다. 우리가 변했는데 책이 변했다도 말하는 건 폐쇄적인 생각이다. 지금은 '텍스트'보다 '이미지'가 중심이다. 사람들이 욕망을 받아들이는 매체가 글보다는 이미지가 우선임을 말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책은 변하지 않았고 책 속성이 사람들 욕망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카메라는 20세기 초반 해도 기록 수단이었다. 그러나 Z세대에게 카메라는 장난감이다. 수많은 사진 어플, 스냅챗, 인스타그램 스토리, 이모티콘 합성, 필터들은 그들에게 일상을 재밌게 만드는 수단이자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나는 지금도 DSLR 카메라를 을 사용하지만 그 용도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지로 더 잘 표현하기 위함이다.
앞으로의 제안은 ‘전하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어떤 관점으로 전할지는 개인과 기업의 몫이다. 나 자신부터 브런치 프로필에 ‘경험’에서 우러난 글이라고 적었기에 나에게도 관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경험'이 수많은 이들을 위해 난도질당하며 사람들에게 무수한 아이디어를 던지는 촉매제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책을 여전히 좋아하고 오늘도 읽는다. 내일도 읽을 거다. 책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좋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책마저도 '여전히 왜 좋은지'를 몸소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책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마다 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책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맥락으로 접근하던 취향으로 접근하던 지식으로 접근하던 책은 변한 것 없이 여전히 좋다.
지금 당신의 책상에 올려진 책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 책이 당신이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에게 몸소 증명하는 모습이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당신은 책을 존중하고 있다.
스틸 북스는 이에 대한 그들만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