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로 바라보는 tvN 블랙독(2019)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된 TvN의 드라마 제작방식은 많은 배우들이 가진 역량을 재발견하게 도왔습니다. 서현진 배우도 그중 한 명입니다. '삼총사', '식샤를 합시다 2', '또! 오해영'이 서현진의 연기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블랙독은 서현진이 어떤 배우로서 더욱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블랙독에서 서현진은 작품 맥락과 연기를 포함해 작품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맞추어 호흡하며 작품에 스며들죠. 블랙독에서 서현진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고하늘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블랙독은 CJ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이 지속적으로 구축한 크리에이터 시스템의 결과물입니다. (작가 공모 프로그램인 오펜에서 길러낸 박주연 작가와 황준혁 연출가) 또한 블랙독은 서현진은 단순히 과거처럼 작품 연출로 재발견하는 게 아닌, 그녀 스스로 작품과 호흡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블랙독은 서현진이 얼마나 더 좋고 멋진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는지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뷰티 인사이드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에서 '다름 보다 나은'연기를 보여주었다면, 블랙독은 변곡점에 가까운 작품이자 그동안 보았던 서현진의 연기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블랙독은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서술합니다. 첫 번째는 '배치의 관점'에서 봅니다. 다른 한편은 서현진의 배치. 편집력 관점입니다.
# P.s '배우: 세상 감정을 편집하는 사람들 이슈 1'은 '아웃트로'까지 4개 혹은 3개 글 정도 남았습니다. 이후 브런치 북으로 재편집해 발행 예정이라서 글 개수를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포스팅 글 중 내용이 긴 글이 몇 개 있는데요. 브런치 북은 묶을 수 있는 글이 30개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는 대본이라는 글자를 이미지로 바꾸는 일이다. 글자에서 이미지로 표현방법이 바뀐 거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배치다. 표현방법은 바뀌었지만 ‘배치’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대본에서도 스토리 전개를 배치하는 게 중요하지만 영상으로 바뀌면 그 비중은 더 중요해진다. 대본은 읽는 이들이 읽으면서 상상하면 된다. 텍스트 해석을 개인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으로 바뀌는 순간 '개인의 해석'은 '정보전달' 관점으로 바뀐다. 즉, 디자인 방향이 구체적으로 변한다. 이 순간부터 정보의 설계와 전달이 최우선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 연출, 촬영감독, 배우들 간 영상을 해석하고 배치하는 관점이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드라마의 브랜딩은 드라마 그 자체다.
블랙독은 고하늘이라는 인물을 통해 기간제 교사들이 마주한 현실을 묘사한다. 동시에 고하늘을 관찰하며 '노동자로서의 교사'라는 더 큰 관점도 동시에 묘사한다. 그러나 블랙독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에 관찰시점만 가지고 있지 않다.
이야기 묘사가 필요한 시점에는 클로즈업, 틸트, 오프 더 숄더, 중간 샷 등을 활용해 드라마 내용을 전개한다. 로맨택 코미디나 멜로와는 다르게 상당히 유기적인 촬영이 필요한 셈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이 블랙독이 전하는 메시지에 들어간 공간도 더 커진다.
종종 블랙독 드라마가 건조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 사이 간격을 크게 두었기 때문이다. 그 건조한 느낌이 들 때 시청자는 각자 '대입 입시'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드라마에서 공감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블랙독은 드라마 대본에 담긴 '감정의 진폭'은 작아도 '공감의 진폭'이 큰 편이다.
블랙독은 두 가지 관점이 유기적으로 순환한다. 첫 번째는 기간제 교사인 고하늘이 마주하는 현 학교와 교육 현실이다. 두 번째는 고하늘 관점이 아닌 '노동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교 모습이다. 블랙독에서 고하늘은 미생에서 장그래와 시점이 동일한 면이 강하다. 하지만 미생과 블랙독은 대상이 다르기에 영상 배치에 차이는 분명하다. 미생 같은 경우는 매출과 상황판단을 위해 빠른 전개도 있지만, 블랙독은 '학교'이기 때문에 빠른 화면 전환보다 부드럽게 전하는 면이 강하다.
블랙독은 현실에 기반한 드라마다. 드라마 블랙독 안에서 학교 명칭만 다를 뿐이지만 지금 시대 교육현장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다.(블랙독을 집필한 박주연 작가님이 실제로 기간제 교사로 경력이 있기 때문.) 그렇기에 블랙독은 차분하면서도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모두가 한 번쯤은 느낀 입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블랙독은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두어 영상 안에 하이라이트, 그림자, 대비, 그림자톤을 높여 조직사회의 보수적인 영상을 만든다. 이러한 색감 등은 자칫 미화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한다. 동시에 옐로톤을 다채롭게 활용해 학교만이 가진 정서적인 따뜻함을 넣었다.
건조한 면이 적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블랙독을 '학교판 미생'이라고 하는 이유는 교사를 ‘노동자’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생과는 다르게 교육은 '따뜻함, 공평'등 따듯한 단어를 은유하는 요소가 있기에 따뜻한 영상을 지향하는 건 어떤 면에서도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들을 다루기 때문에 드라마 안세 공간 반복이 많다. 자연스럽게 영상패턴도 같은 방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는 연출, 대본, 배우 간의 문제가 아니다. 교도소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 공간 때문이다.
드라마를 이해할 때 드라마를 구성하는 제1 요소는 영상이다. 영상 톤 자체를 온도를 차갑게 할수록 날카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드라마가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낀다.(JTBC '송곳'이 대표적인 예) 블랙독 스토리텔링 중 현실을 찌르는 내용이 나오는 과정에서 밝은 톤 화면을 배치한다던가, 차분한 톤, 잔잔한 영상을 배치도 이 때문이다.
옐로톤이 가진 효과를 보여주는 장면중 하나는 입학사정관과의 대화 장면과 기간제 교사들 계약서 작성 장면이다. 입학사정관과의 대화 자체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지만 현실을 반영하기에 시종일관 불편하다. 자극적인 불편함이 아닌, 누구나 공감하는 불편함이다. 이를 차분하게 묘사하기 해 옐로톤은 더욱 사용한다.
옐로톤이 가진 강력함은 '나의 아저씨'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나의 아저씨 같은 경우는 드라마 전체가 대체로 차분함과 차가움의 경계선상에 있다. 하지만 극 마지막에 이지안(아이유)의 모습에 옐로톤을 넣어 시종일관 차가웠던 드라마 분위기를 따뜻하게 끌어올리며 마무리한다. 이처럼 톤 하나가 가진 디자인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드론을 사용한 지하철 컷은 1화에서 고하늘이 출근하는 장면으로 블랙독에서 단 한번 나온다. 하지만 이 장면은 블랙독이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이 장면을 통해 교사도 노동자이고 특별한 게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철은 하루의 시작과 끝, 삶의 고난함 등을 미학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매우 좋은 소재다.
예를 들어 나의 아저씨 '에서 대비가 강하고 채도가 높은 한강철교 씬은 드라마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나의 아저씨'에서 지하철 내부 영상은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아이유) 간 관계 매 순간 환기시키는 도구도 겸하기 때문에 대비를 낮추고 채도를 낮췄다.
블랙독에서 지하철씬은 대비는 낮추고 채도를 강조하며 주황톤을 살짝 가미했다. 이를 통해 블랙독에서 출근하는 고하늘을 지하철역에서 지하철까지 담은 씬은 고하늘의 심리와 그녀가 마주한 현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있음.]
블랙독 1화와 16화 마지막화는 같은 교실을 다른 상황, 옷으로 촬영한다. 1화에서는 대비, 채도가 모두 낮다. 반면에 16화에서는 대비는 낮지만 채도는 높고 분위기도 밝다. 1화에서 교실에 불안감과 눈물에 손을 꽉 쥐지만 고하늘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16화에서는 맑은 눈빛, 밝은 목소리를 넣어 블랙독 자체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 처음과 다르게 고하늘이 '기간제 교사'에서 '정교사'로 바뀐 뒤 어떻게 더욱 성장했는가를 선명하게 전한다.
블랙독은 기간제 교사로의 고하늘, 인간 고하늘, 기간제 교사 그 자체, 입시구조 등 다양향 상황을 골고루 묘사한다. 이를 위해서 블랙독 카메라 워크에서는 롱샷. 특히 교무실 전경을 담는 촬영과 개개인의 샷을 자주 사용하면서 교사들이 마주하는 관점을 현실적으로 잡고자 한다.
특히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각종 업무들을 클로즈 업 샷으로 세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묘사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학교에서 마주한 교사들의 모든 감정을 담아낸다. 블랙독에서 서현진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이 각자 위치에서 마주하는 생활인으로서의 교사를 현실감 있게 담아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랙독에서는 많은 이야기 전개 시에 롱샷이 먼저 나오는데 이는 '학교'라는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롱 샷을 통해 학교라는 '공간'을 포착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이야기 정보와 분위기를 미리 알려준다. 예를 들어 다급한 상황에 대한 묘사나 감정 폭이 커질 사건이 발생할 시에 인물 발을 강조한다.
클로즈업샷은 감정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블랙독에서는 클로즈 업샷은 문제와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많이 사용한다. 교사들을 노동자로 다루기 때문에 카메라 움직임은 교사들 간 눈치, 대화, 상황 묘사를 중점으로 움직인다. 극 초반 고하늘은 같은 이 같은 상황을 관찰하는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사들의 상황을 클로즈업으로 잡은 후 고하늘을 찍어 고 하늘을 을 관찰자로 묘사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고하늘이 관찰하는 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클로즈업샷을 찍으면서도 흔들림, 서서히 줌인하는 형태로 극 안에서 차분한 분위기를 배치한다. 특히 서서히 줌인을 하면서도 구도를 바꾸면서 인물들을 촬영하며 상황에서 인물 비중을 효과적으로 배치한다. 이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영상 내 대비도 올렸다. 특히 진학부 회의 장면에서 많이 활용한다.
음악은 드라마 전체가 흐르는 공간감을 넘어 분위기 그 자체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음악만 들어도 드라마가 지향하는 방향을 유추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랙독은 선율이 강한 음악을 사용해 극 전체의 '처연함'과 차분함을 다진다. 여기에 '기간제'라는 엄연한 구분이 존재하는 학교 안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음악'과 ‘카메라 클로즈업’은 감성적인 디테일을 더한다. 또 오해영에서 ‘헐~’ 같은 재미나는 유쾌한 음악은 없다. 김사부같이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빠른 비트 음악도 없다.
4화에서는 기간제 교사들 계약 상황 묘사의 묘사가 유독 좋다. 양상 그 자체는 기간제 교사들이 계약하는 모습에 치중한다. 동시에 여기에 삽입된 서현진배우의 목소리는 객관적인 관찰에서 고하늘의 시각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한다.
이 장면에 깔린 슬픈 톤의 차가운 피아노 음악은 유려하지만 기간제 교사가 마주한 현실을 더욱 부각한다. 이 같은 선율적 음악 강조는 마스터 샷과 이를 보충하는 클로즈업 숏, 인서트 샷이 가진 맥락에 힘을 더하며 블랙독 전반적인 분위기를 끌어간다.
드라마가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수많은 영상의 배치. 이미지 배치다. 이 과정에 ‘무엇을 배치하는가? 어떻게 배치할까? 왜 배치해야 하나? 어떻게 엮을까? 무엇을 빼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이다. 이번 글에서 살펴본 블랙독의 배치는 블랙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든 드라마에 해당된다.
배우를 접근하는 다양한 이미지는 많다. 하지만 배우가 추구해야 할 질문은 언제나 단순하다. '배우에게 필요한 편집력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다. 배우는 영상을 만드는 핵심 요소이기에 ‘배치’를 다루는 관점이 확고해야 한다. 그렇기에 배우를 정의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분해해서 본다면 결국 '배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배치는 묶고 엮는 일로 과정으로 이어지며 이는 자연스럽게 편집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