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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다정함 Mar 09. 2023

숨을 쉰다는 것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동네 요가스튜디오에 새로운 수업이 생겨서 다녀왔다. 수업 이름은 Breathwork, 한국어로는 숨쉬기 운동 정도가 아닐까 한다. 숨쉬기가 운동의 종류라는 농담이 있었는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 운동이었던 것이다. 요가를 하면서 숨을 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알고 있었고 다양한 종류와 방법이 있는 것도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숨만 쉬는' 수업을 가는 것은 처음이다. 이럴 시간에 요가 한 타임 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고 시작하고 나서도 누워있다 보니 조금 졸리기도 해서 계속해 하품이 나왔다. 숨을 쉬는 방법은 입으로 숨을 마셔 배를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한숨을 쉬듯 '하아'하고 숨을 뱉어내는 식이였다. 숨을 쉬는 사이에 휴식 없이 계속해서 숨을 쉬어야 하고, 하다 보면 몸에서 평소와는 다른 자극이나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다 보니 시간 감각이 둔해지고 졸려서 하품이 계속 나올 즈음에 선생님이 다 같이 온몸을 떨듯이 흔들며 입술을 다문 채 '음' 소리를 내라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를 때 온몸을 쓰며 떼를 쓰는 것 같았다. '음' 소리는 벌이 윙윙거리며 나는 소리같기도 했고 소리를 내는 진동과 함께 머릿속에서 잉잉하고 소리가 울렸다. 약 2분 정도 몸을 떨며 '음' 소리를 낸 뒤에 다시 숨쉬기 운동으로 돌아갔다. 


한바탕 온몸을 흔들어서 그런지 잠이 깨고 머리도 맑아진 듯했다. 숨을 쉬다가 다시 한번 '음' 소리를 내며 몸을 떠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입을 벌려 소리가 새어 나가게 했다. 온몸을 떨며 진동이 강한 소리를 내니 방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몸을 떨고 있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눈물이 고였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니, 마치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위해 칭얼대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면 상쾌하기 때문에, 안에 담겨서 썩어가던 무언가를 털어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여기서는 이 클래스의 선생님이, 나에게 칭얼댈 자격을 준 것처럼 느껴졌다. 숨을 쉬면서 '순간의 현재'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어린아이의 응어리를 내가 대신 풀어준 느낌이랄까? 


숨쉬기 운동이 끝나고 선생님이 이 순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예시로 'I love you', 'I support you'라고 말해주기에 나도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머릿속으로 전했다. 그 뒤에 선생님은 사랑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 자신은 그 말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했다. 이 점이 흥미로웠는데, '나'는 말을 하는 동시에 그 말의 수용자인 것이다. 빛이 양 방향에서 오면 그림자가 두 개가 생기듯이 나라는 개념이 슬며시 두 개로 나누어진 듯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마음과 몸은 몹시 일체화되어 완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쉬고 있는 나의 목, 가슴, 배 그리고 심장이 느껴졌다. 아, 나는 이곳에 있구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정말로 어려운 질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높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철학적인 질문의 끝없는 고찰보다는 숨을 쉬는 것에서 더 많은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있으니 숨을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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