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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Feb 22. 2022

홍대

2010년 12월

‘문화 고시텔’


처음 저 글씨를 읽던 날 원룸 보증금이 없던 나도, 바퀴가 닳아서 쉬고 싶었던 캐리어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고시텔을 나설 때마다 나와 닮은 젊은이가 거리를 서성이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염려를 하는 것이다. 현관문에 적힌 ‘고시텔’ 글씨가, 그런 젊은이가 있으면 자기가 꼭 아는 체하겠다고 나를 달래어준다.


나는 평소처럼 이어폰을 귀에 꼽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따로 노래를 켤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바깥은 온통 흰 눈이 따뜻하게 내리는 소리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창문이 없는 내 방엔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하얀 카펫을 깔아놓고 하늘이 잔치를 벌인지는 한참이 지나 보였다. 나는 지금에라도 밖으로 나온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눈 위를 밟았다. 고시텔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보다 발아래가 훨씬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본인도 설레었는지 가로등이 오늘따라 일찍 불을 밝혔다. 어스름마저 걷힌 가로등 아래엔 눈이 더 많이 내리는 것 같아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홍대의 밤은 눈 내리는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러낼 준비를 한다. 굳어지지 않은 물감들이 만나서 또 어떤 색깔로 흘러내릴지 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바깥을 못 본다는 게 아쉽겠지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레스토랑에서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보니 눈 위를 걸어온 내 발자국마다 벌써 다른 이의 발자국들이 겹쳐져 있다. 어떤 이의 발자국일까. 나는 소리가 안 나는 이어폰을 주머니에다 집어넣고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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