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적자인 에세이 웹진을 만드는 마음
처음 2W매거진을 기획했던 당시의 마음은 단순했습니다. 일 특성상 제 주변에는 여성 작가들이 많았고, 그들의 글이 참 좋았습니다. 글 자체보다도 거기에 담긴 그들의 생각과 삶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그 이야기들이 우리끼리만 공유하고 위로받고 그걸로 휘발되고 마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온갖 혐오와 부조리, 자본주의 논리로 점철된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여기 이렇게 멋있고, 눈물겹게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리고도 싶었고요.
물론 온갖 자극적인 뉴스거리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각종 콘텐츠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의 진짜 삶’ 이야기는 재미없죠. 그러니까 밥 같은 겁니다. 1000원짜리 공깃밥. 싱겁고 딱히 맛도 없지만 우리를 배불리고.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주는 하얀 쌀밥이요.
매운 떡볶이나 토마호크 스테이크 같이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면 모를까, 맛도 멋도 없는 쌀밥이 뭐 돈이 되겠습니까. 공깃밥이 여태껏 1000원인 이유죠. 보통 사람들이 쓰는 보통 글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능력 있고, 운이 맞아서 출판이나 기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그런 글들은 대개 컴퓨터 하드 어딘가에 저장된 채 잊히기 일쑤죠. 사람이 떡볶이만 먹고는 살 수 없듯이, 평범한 이들의 진솔한 삶을 담은 수필도 분명 가치가 있을 텐데 스스로 매력 없는 글이라 단정하고 체념하는 여성 작가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세상에 꺼내놓을 준비가 된 여성 작가들을 위한 품이 넓은 그릇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게 다였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2W매거진이 벌써 9권의 전자책을 출간했고, 10번째 책 발행을 앞두고 있네요. 2W매거진은 갓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잡지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학생이나 직장인으로, 주부나 워킹맘으로, 프리랜서로, 그냥 사람으로 치열하게 현생을 살아내고 있는 보통의 여성들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뜨겁게 품고 매달 밥을 짓듯 글을 짓습니다.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그릇에 꾹꾹 눌러 담아 이 달의 라벨을 붙여 여러분께 내놓는 일을 저는 매달 하고 있지요.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매거진의 값은 고작 1000원. 이 프로젝트가 상업적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글쓰기를 열망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어떤 장애물도 없이 가 닿기를 마음으로 책정한 금액이지만 매거진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데는 턱없는 수익이지요. 사실 수익보다는 이런저런 일을 진행하며 지출하는 액수가 훨씬 더 많으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현실일 겁니다. 애초에 상업성을 생각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수익보다는 2W라는 창작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더 많은 여성들이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거든요.
2W는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허무는 여성 창작 커뮤니티입니다.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사회적 지위도 모르는 느슨한 커뮤니티이지요(운영자인 저조차도 이메일 주소 외에는 필진의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합니다). 오로지 창작자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지와 응원을 주고받을 뿐입니다. 특히 여러 모임이나 행사가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건 참 중요한 일 같아요. 글을 쓰는 건 결국 혼자 하는 행위지만 연대의 힘은 분명 강력한 부스터가 되거든요.
글 쓰는 여성들 사이에 더 많은 교류가 오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작한 ‘두여자엽서’입니다. 정새움 작가님의 멋진 일러스트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함께 글을 쓰는 여자들의 연대감을 표현했습니다. 노트북 옆에 붙여두고 글을 쓰다 안 풀리면 멍하니 그림을 보곤 해요. 은은하게 가슴 가득 차오르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다시 키보드를 치게 만들어준답니다.
2W매거진은 오직 전자책으로만 발간되기 때문에 실제 손에 잡히는 책의 물성을 그리워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지요. 실체가 없는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작가와 독자 분들에게 직접 만질 수 있는 선물을 드렸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 제작하게 되었어요. 매거진을 읽고 작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그에 대한 답장으로 작가가 직접 ‘두여자엽서’에 답장을 적어서 보내드리는 거죠. 작가가 독자가 연결되는 에너지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될 거라 믿어요. 2W필진들의 창작 생활에 작은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한 기분 좋은 이벤트인 셈이죠.
글쓰기를, 우리가 인생을 걸어야 할 거창한 목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그게 더 행복한 삶일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어딘가 결핍과 상처를 지닌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분들이겠죠. 그런 분들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지팡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딛고 설 수 있는 믿을 구석 같은 거죠.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하지만 글쓰기 과정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니까요. 다소간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데만 해도 안간힘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가 버겁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겠죠. 그럴 때 기억하자고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내 글을 읽은 독자, 다른 공간에서 함께 쓰는 동료들, 수다가 아닌 글로 교감하고 공명하는 작가들.
필진들과 함께 쓰는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기댈 구석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