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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Sep 06. 2021

에세이는 일기가 아니에요

독자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 당신의 글도 바뀔 수 있다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점은 뭘까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사실,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 지도 생각해봐야 하고,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편의 글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그러나 보통은 대화중에 가볍게 나오는 질문이므로 최대한 간략하게 답변하려고 노력한다. 내 대답은 이렇다. 

“독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 아닐까요?”





그게 뭐 어쨌다고? 



이 글은 이렇게 생각할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이다. 

독자가 있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모르는 당신을 위해서 말이다. 

한 마디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가상의 독자와 일정한 호흡을 주고받으며 글을 써 내려가는 것과 혼자만의 호흡으로 무작정 달려 나가는 것에도. 


일기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쓰는 글이다. 혼자만의 기록이므로 어떤 단어를 쓰든, 어떤 얘기를 쓰든, 잘 쓰든 못쓰든 상관이 없다. 즉, 이런 글에는 독자의 영역이 없다. 그래서 일기는 ‘엿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독서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일기는 문학이 되기도 한다(알겠지만, 유명한 사람 한정이다). 기록의 의미에서도 그렇고 오히려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글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에세이는 독자가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자가 있어야 화자가 존재하고, 독자가 있어야 작가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게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다. 따라서 에세이 글에는 독자의 영역이 존재해야 하고, 독자 또한 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독자의 생각이나 감상이 파고들 수 있는 틈, 작가가 펼쳐 보여주는 세상에 동화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만약 작가가 자기 혼자 자기 얘기에 도취되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줄줄줄 나열하기만 한다면, 그 생각과 경험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그 글을 좋은 글이라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평가는 둘째 치고, 독자는 ‘노잼’이라 느끼고 읽기 싫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글을 읽었을 때

반대로 독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살아온 업적을 줄줄 나열하는 글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지루하고 장황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니까 넌 내 얘길 들어야 돼”라고 하는 듯한 강압적인 느낌도 들고 말이다.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힘들게 살았는지 하소연하는 글을 읽는다면? 힘듦이 나에게 전달되면서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에 독자의 영역이 확보되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내 얘기를 듣고 당신은 어땠나요?’ 자연스럽게 작가의 얘기와 공명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글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감동’이라 부른다. 


매력적인 독자에게 바치는 매력적인 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훅 빨려 들어갈 만한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독자를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 내가 ‘자기만의 생각도 없고 영혼도 없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데 누가 읽고 싶겠는가. 독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 없이 쓰인 글은 오만하거나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독자로서는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독자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러면 답은 좀 더 명확해진다. 나를 웃게 해주는 글, 내 생각을 들여다본 듯이 알아봐 주는 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글. 


독자는 어떤 사람인가

가능하면 독자가 몇 살이고, 어떤 고민이 있고, 뭘 좋아하는지를 충분히 고려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어떤 이들이 내 글을 읽을 것인가가 선명해지면, 쓰는 단어가 달라진다. 문체도 달라진다. 군더더기를 줄이게 된다. 글의 구성이 한결 간결해지고 집중력이 생긴다. 

독자가 모호하면 글도 모호해진다. 존칭을 쓰다가 말다가, 이 얘기인 줄 알고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얘기로 넘어가버리고, 자기만 아는 얘기를 나도 아는 것처럼 하고 있고, 혼잣말하는 건가 싶고. 한 마디로 글이 산만해지고 가독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문장력 수준에 대한 얘기기도 하지만, 결국은 독자를 그만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글쓰기는 결국 작가와 독자의 소통 과정일지도 모른다. 일대일로 만나 대화로 소통할 수도 있지만, 그게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맘 맞는 사람들과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하고, 브이로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 음악이나 공예 작품 등을 만들면서 예술 활동에 심취하기도 하고……. 그중에서 우리는 글쓰기를 소통의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다.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써야 하는 이유다.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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