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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Sep 25. 2021

에세이스트가 되는 몇 가지 단계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한 명쾌한(?) 가이드

주의. 이 글은 작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얘기가 아님. 글을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임.





1단계- 알아챔


자기 안의 쓰고 싶은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삶의 어느 정도 선에서 인간은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싶고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글쓰기는 그중 일부다. 그림이나 사진, 뭔가를 만들거나 공부 등의 성취로 이를 표현할 수도 있다. 여기선 어쨌든 ‘쓰는 행위’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인정하는 게 첫 번째다.

tip. 

-왜 쓰고 싶은지 생각을 정리해보자

-독서를 많이 해보자. 남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되는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2단계 - 바라봄


쓰고 싶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쓰는 연습이 체화되지 않은 사람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되어 글로 뽑아낼 수가 없거나 더 심한 경우는 자신이 뭘 쓰고 싶은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자기 자신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생각을, 자신의 이야기 자체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시선은 냉정할 수도 있고, 따뜻할 수도, 연민에 가득 찰 수도 있다. 이는 그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혹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개의치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선 일정 정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나로부터 빠져나와서 낯선 눈빛으로 상황과 줄거리와 사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글이 써진다.




3단계 - 인정하기


사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많은 예비 작가들이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다음 단계 진입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엉킨 실타래에서 실을 뽑아내는 일 자체도 쉽지 않은데 이를 엮어내기까지 해야 하니 뒤죽박죽일 수밖에. 나름 애써서 만든 결과물은 그야말로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지금 초보라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지 않던가. 천재가 아닌 이상 연습해야 실력이 늘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못 쓴 글에 연민을 갖지도, 좌절하지도 말 것. 담백하게 인정하고 계속 쓰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







4단계 - 자의식 덜어내기


이제 고비가 다가온다. 발단 전개 등등의 단계를 지나 ‘위기’에 해당하는 단계다. 다만 이것은 에세이 등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다. 글의 소재를 찾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 에피소드, 감춰두고 싶은 비밀이나 상처를 꺼내게 되는데 이때 수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이런 얘길 공개하면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누가 궁금해한다고 이런 얘길 굳이 남들 앞에 해야 하나. 남들의 무심한 멘트 하나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반응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당황하게 된다. 한 마디로 ‘자의식 과잉’ 상태가 되어서 남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의식하는 글쓰기는 좋은 결과를 내지도 못할뿐더러 오래 지속하기도 힘들다. 글쓰기는 오롯이 자신이 중심을 잡고 끌고 나가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맘먹었다면 이제 정신무장이 필요한 시기다.

tip. 

내가 찾은 방법은 ‘쓰고 감당하기’다. 일단 쓰고 싶은 소재가 있으면 뒷생각 안 하고 쓴다. 차마 공개를 못하겠으면 비공개 폴더에 넣어두고 묵힌다. 공개해야 할 때가 와서 다시 읽어보면 시선이 좀 더 객관화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면 믿을 수 있는 지인에게만 개인적인 피드백을 부탁한다. 글의 소재로 쓰인 사람에게는 미리 보여주고 양해를 구한다. 닥치기 전에는 ‘감당하기’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당하는 과정 속에서 비대해진 자의식이 조금이나마 쪼그라드는(?) 효과도 있었다. 이 경험은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5단계 - 보편성 획득하기


우리 모두는 개인이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들이다.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냥 그것으로 끝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끄집어내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과물로 빚어내는 것이다. 5단계에서는 그러한 연습을 해야 한다. 자기만족 수준의 일기에서 벗어나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면 말이다.

tip.

-독자를 염두에 둔 글쓰기:구체적인 사람을 상정해두면 좋다.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펼쳐나가는 자세로 한번 써보자.

-은유하기: 직접적인 은유는 다소 유치할 수 있으나 처음은 다 그렇다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 사물, 현상 등에 빗대어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자.

-묘사하기: 에세이에서 경험을 풀어놓을 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서사의 방법이 흔히 쓰인다. 이를 되도록 ‘묘사하는’ 방식으로 표현해보자. ‘엄마가 00라고 말했다’ -> ‘00라고 말하는 엄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소한 방식의 변화가 글에 색다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6단계 - 정체성 찾기


정체성을 이제 와서 찾으라니. 먼저 찾고 나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궁극적 목적이 ‘정체성 찾기’에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는 데 하등 쓸데없는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 삶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끊임없이 숙고하고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것들 생각 안 하고 매일매일 눈앞에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면서 먹고사는 것 외에 생각을 적게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법이다. 

그러나 당신이 글을 쓰기로 맘먹었다면 애초에 그런 부류의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자족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없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신의 능력에 좌절하는 단계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행히 글쓰기는 그런 불행한 인간들의 지팡이가 되어준다. 딛고 설 수 있는, 믿을 구석이 되어준다. 여러 번의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점점 선명해질 것이다. 당신의 글은 이 같은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그것을 책이든 다른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 독자들을 만날 것인지는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



사족.

지팡이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글쓰기는 당신의 삶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다.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괜찮은 삶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글쓰기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는 오로지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 당신이 써야 하는 이유다.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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