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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Sep 18. 2021

글 쓰는 사람들의 심장

글을 쓰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에 대하여






늦은 밤 블로그를 보고 메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주부예요.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다면 글을 꼭 쓰고 싶어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독서 모임도 몇 년 진행을 했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연이은 바이러스로 몇 년째 쉬고 있어요. 모임으로 습작을 해도 좋구요, 책을 낼 수 있다면 정말 설렐 것 같아요. 정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걸까요?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새벽 1시. 메일 알림이 울렸다 

모르는 이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글을 쓰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절박함만은 오롯이 느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 그것은 살고 싶다는 SOS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누군가는 절대 이해 못할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고작 글 쓰는 게 뭐라고. 그렇게 쓰고 싶으면 일기장에 쓰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순간을, 끓어오르는 열망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몰라 한숨만 깊어지는 밤들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그 깜박임과 리듬이 둥둥 큰 북소리 같기도 하고, 두근두근 내 심장 뛰는 소리 같기도 하다는 것을.



거기 심장이 존재한다는 믿음

펄떡펄떡 힘차게 뛰는, 뜨거운 심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어진 삶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심장은 복잡하게 얽혀버린 실타래 같다. 나이의 굴레에, 성별의 감옥에,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에 수많은 씨실과 날실들을 열심히 엮어가고, 어느새 살아서 펄떡펄떡 뛰던 심장은 실타래 속에 갇히고 만다. 애초에 거기 심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실타래 위로 느껴지는 은은한 온기만으로 가끔 상기할 뿐. 그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실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가짜 심장을 뽐내는데 여념이 없거나, 남들보다 더 많이 실을 써서 비대해진 실타래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할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은 복잡한 실타래 안에 진짜 심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펄떡펄떡 뛰는 뜨거운 심장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일은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고, 집중해야 하고,  최소한의 기술도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거기 심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책임과 의무의 실오라기가 들러붙고, ‘그렇게 하여 심장을 마주 본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회의감이 훼방을 놓는다. 심장이 있든 없든 다들 잘만 사는데, 왜 너만 유난이냐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근. 두근.

저 멀리서 심장 뛰는 소리가 큰 북소리처럼 들려온다.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막을 수 없다. 이 소리가 나에게만 들린다는 사실만큼 외롭고 고독한 일이 없다. 소리는 들리는데, 얽히고설킨 실타래 한가운데, 분명 저기에 심장이 있는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 줄을 모르겠다. 심장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가슴이 조여오듯 답답해진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주어진 역할만으로 생을 채우는 일이 불가한 사람들. 내게 도움을 요청한 이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로 일축했지만, 그 짧은 한 문장 안에 숨겨진 그간의 사정이 읽히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답장을 보냈지만, 이후 회신이 다시 없는 걸 보면 그 진심이 어찌 닿았을지는 알 도리가 없다. 자신의 심장을 구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기 자신 뿐이므로.


아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2W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실은 나도 가끔 두렵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 혼자만의 망상일까 봐. 나만 함께하고 싶어 할 뿐, 누구도 원하지 않을까 봐.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까. 뭔가를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용기를 쥐어짜는 건, 아직 내 심장도 뛰고 있기 때문이겠지.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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