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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Jun 03. 2021

남의 글을 평가한다는 것

내 안의 불씨에 숨을 불어넣는 방법


최근 두어 달간은 내 글을 쓰는 일보다 남의 글을 평가할 일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사업에 심의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일이다. 2019년도에 내가 쓴 책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가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된 적이 있는데, 기존 선정 작가 중 제척 사항이 없는 이들 가운데 심의위원 제안을 하는 모양이었다. 한 달간 무려 95권의 책을 읽고, 14권의 책을 뽑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물론 단순히 선정작을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전검토서에 각 도서 별로 평가항목에 맞는 점수와 의견도 적어 넣어야 했다. 


위원직을 수락하자 곧 집으로 4박스나 되는 책들이 배송되어 왔고(이 책들은 심의가 끝나자마자 되돌아갔다) 한 달 동안 매우 행복하면서도 괴로운 책 무덤 속에 파묻혀 지냈다. 과거 내가 쓴 책 또한 심의대상이었던 적이 있었기에 되도록 완독하려고 애썼지만 쉽진 않았다. 어쨌든 되도록 편견 없이 판단하기 위해 작가나 출판사 이름보다는 글 자체로 평가하려 했고, 비대면 회의 등을 통해 선정작을 추리는데 성공했다. 나 말고도 경력과 연륜이 대단하신 심의위원분들과 함께 했는데 정말 좋은 책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별 이견 없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느낀 점은 남의 글을 평가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론가나 비평가 같은 직업이 왜 따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평가는 창작과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다. 같은 글을 독자로서 볼 때와 작가로서 볼 때, 그리고 비평가로서 볼 때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가하는 게 직업이 아닌,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무척 어색하고 괴로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글은 좋다고 말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별로인 글을 별로라고 말하는 건 조심스러웠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해도, 그 생각이 그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남들 앞에 내 글을 보여준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나는 합평 문화에 좀처럼 익숙해지질 못했다. 모든 창작 수업은 서로의 글을 돌려 읽고, 돌려 까고(?), 뒤에서 그걸 느긋하게 지켜보던 교수님의 묵직한 한방으로 창작자의 멘털을 산산조각 내며 마무리되곤 했다. 4년 내내 시, 소설, 아동문학 등등 모든 창작 수업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해맑은 문학소녀의 자격지심과 좌절감을 키우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한 마디로 대학 4년은 문학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게 피 나는 수련을 거쳐 훌륭한 문학인이 된 선후배, 동기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이 모든 것은 나의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글을 평가받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남들은 내 글을 평가해준 건데, 왜 상처는 내가 받는가 말이다. 글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글에는 자기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글에 대해 누가 모진 말을 쏟아내면 그건 꼭 내가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특히 어릴 때나 초보일 때는 내가 쓴 글과의 동일시를 끊어내기가 어렵다. 글이 곧 나고, 내가 곧 글이다. 상처 받지 않게 내 마음을 꽁꽁 숨기듯이 내가 쓴 글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비공개로 감춰두고는 곧 내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린다. 그건 마치 애써 불 붙인 촛불이 곱게 타오르다가 산소 부족으로 이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반복된 훈련이다. 계속 쓰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부끄러움을 견디고, 또 쓰고,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조금 뿌듯해하기도 했다가 다시 반성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점점 어렵지 않게 불을 지필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일종의 기술이라 능숙해지면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될 때도 있고, 가끔은 제법 화려한 불꽃이 되기도 한다. 매너리즘이 덮쳐오거나 ‘내 글 구려’ 병이 도질 땐 확 꺼트리고 싶기도 하겠지만, 주변의 글 동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쓰는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된다. 어느 순간 ‘나는 작가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나의 불씨를 알아봐 주는 독자가 있다면


이제는 남들의 평가가 하나도 두렵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여전히 두렵다. 어떻게 읽힐까 두렵고, 혹은 전혀 읽히지 않을까 두렵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피하기보다는 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두려운 감정이 글을 계속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서도 얘기했듯이 남의 글을 평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유명한 작가고, 많은 이들이 내 글을 찾아서 읽어준다면야 자연스레 비평가가 따라붙겠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다. 즉, 내 두려움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고, 내 글을 읽고 평가해줄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다. 


매달 한 가지 주제로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는 웹진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게으른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게끔 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당근이든 채찍이든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불꽃을 활활 태울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한 게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쉬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글을 써서 발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제성도 없고, 소정의 원고료조차 없는 독립 웹진에 자신의 글을 싣기 위해 마감일에 맞춰 투고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투고작을 모두 싣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몇몇 원고는 반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반려를 거절로 생각하기보다 매달 새로운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기는 계기로 삼으셨음 하는 바람이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자극이 되는 글들도 많았다. 자신의 글이 매거진에 실릴 때마다 기뻐하는 필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서로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남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평가가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작가로 처음 발을 디딜 때 누구나 겪게 되는 연약함의 단계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다만 그 두려움 뒤로 가슴속 불씨가 그대로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필진들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불씨가 있다. 누구나 환하게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불씨가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려면 장작이 필요하고 산소가 필요하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혼자 타오르는 영원한 불꽃은 없다. 이 비유가 거창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은 남들이 뭐라 하던 계속 쓰라는 얘기다. 매달 세상에 글 하나씩을 내놓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조금씩 작가가 되어간다.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꽁꽁 언 대지를 녹여주는 커다란 불꽃이 된다. 








P.S.

사족이지만, 평가하는 사람이 평가받는 사람 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혹 ‘내가 뭐라고 남의 글을 평가하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평가할 때 우월감을 가지고 내려다보는 것과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은 천지차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 작업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심하기 쉬운 세상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고 한 줄이나마 코멘트를 해준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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