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는 글쓰기에 대한 친절한 안내문
나는 ‘아미가’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가끔씩 작가님들로부터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는데, 영 멋쩍다. 역시 나의 정체성은 사업하는 사람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책을 제작하고 팔아서 수익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출판을 매개로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는 데 더 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리라.
야심찬 프로젝트의 시작
최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출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W매거진에 10회 이상 기고한 필진들에게 개인의 이름을 건 전자책 단행본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다. 그 이름은 '에세이스트 프로젝트'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거진을 통해 원고를 쌓아가는 경험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글을 다듬고 구성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보면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험을 함께하게 된다. 필진들은 처음으로 작가가 되어 오롯이 자신의 글로만으로 채워진 책을 출간하는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신인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니 일석이조다.
어느덧 10회 기고를 달성해 프로젝트 대상자가 된 성실한 필진이 무려 10명이 되었다. 현재 10명의 대상자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맞게 마감 일정을 짜고 편집자인 나와 메일로 과제를 주고받으며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한 가시밭길 행군을 진행하고 있다.
“책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혀요.
전부 각각의 주제로 썼던 거라…….”
한 필진이 우는 소리를 했다. 혹자는 ‘그동안 썼던 글들을 책 분량만큼 모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만, 글과 책은 동의어가 아니다. 글이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비유하자면 재료를 씻고 다듬고 요리해서 어울리는 그릇에 제대로 플레이팅까지 마친 뒤 손님 앞에 짠, 하고 내놓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주야장천 글만 써온 당신은 그야말로 열심히 씨 뿌리고 밭 갈아서 농사짓는 일만 해온 셈이나 다름없다(그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시도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다시 말해 에세이스트 프로젝트는 농사꾼을 셰프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알고 보면 꽤나 야심찬 프로젝트인 셈이다.
쓰라는 대로 썼는데 책 원고가 모였다?
일반적으로 책을 만드는 순서는 기획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맞다. 어떤 주제의 어떤 책을 쓰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어도 가끔 주제에서 벗어난 글이 나올 때가 있는데, 1년 동안 매달 다른 주제(그것도 일방적으로 제시되는 주제)로 써온 글을 가지고 하나의 책을 만든다는 게 막막하게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다. 아무도 그 주제로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끌리지 않는 주제이고, 도저히 쓸 거리가 없다면 안 써도 된다. 주제가 제시되었을 때, 그에 맞는 이야기를 꺼내 자발적으로 글을 투고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즉, 여러 종류의 씨앗 중에서 자신이 심고 싶은 씨앗을 심어 재료로 길러낸 것은 농사꾼 자신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렇게 농사지어 생산해낸 식재료들은 다 누구 것인가. 씨앗을 판 사람의 것인가, 그 씨앗을 골라 자기 땅에 심어 물 주고 길러낸 농사꾼인가.
뭐라 비유하면 좋을까. 그러니까 매거진은 여러 농사꾼들이 정성으로 길러낸 식재료들을 장터로 가지고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매대 같은 것이다. “이 달에는 냉이가 제철이랍니다. 다음 달엔 달래가 나올 예정이니까 기대해주세요.” 뭐 그런 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 냉이와 달래는 길러낸 주인들이 다 따로 있다. 어쩌면 그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일지 모른다. 나는 2W매거진에 기고한 필진들이 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기 바랐다. 매대에 진열만 해놓고, “휴, 이달에도 겨우 납품했네. 저기에 내 거 있다. 뿌듯해”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힘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노하우도 주고받고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요리를 하라니,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평생 농사만 지을 거라면 당연히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셰프가 되어 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라는 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용기가 없고 기회가 없어 차마 앞에 나서지 못했던 이라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시도만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안겨주리라.
농사꾼을 셰프로 만들어주는 기적
참가자들에게 맨 처음 주어지는 과제는 ‘재료 다듬기’다. 어울리는 종류에 따라 재료를 구분하고 묶어놓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동안 기고했던 글을 시간 순서대로 모은 ‘초고’를 받게 되는데, 이를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파트를 나눠야 한다. 지저분한 부분이나 먹기 어려운 부분은 떼어내고, 매운맛은 매운맛끼리, 달콤한 것들은 또 그것들끼리 모아주는 일이다.
그렇게 과제가 돌아오면 편집자의 피드백이 더해지고, 두 번째 과제가 나가게 된다. ‘이름 정하기’다. 정리된 원고를 보면 이게 어떤 맛의 요리가 될지 윤곽이 잡힌다. 그 요리는 ‘에너지 넘치는 워킹맘의 고군분투기’ 일 수도 있고, ‘잔잔하고 담담한 성장 에세이’ 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요리에 영 안 어울린다 싶은 재료는 빼고, 모자란 맛을 채울 다른 재료로 대체하게 된다(작가가 못 찾으면 편집자가 요구할 수도 있다).
그다음 과제는 어느 정도 완성된 요리를 보기 좋게 플레이팅 할 차례다. 처음 맛보는 요리가 낯설 수도 있으니 전채 요리로 친절하게 안내할 수도 있을 것이고(“작가님, 전체 원고를 아우르는 프롤로그 좀 써주세요”),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요리 이름도 그럴듯하게 지어내야 할 것이다(이 과정에서 수많은 제목 후보들이 오간다). 어떻게 요리를 만들었는지 궁금해할 손님(독자)을 위한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말미에는 작가 인터뷰가 들어간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멋진 접시(표지, 편집디자인) 하나에 담겨 손님에게 도착한다.
값을 치른 손님이 만족스럽게 식사(독서)를 마친다면, 셰프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어디에나 까다로운 손님은 있는 법). 왜냐면 우리에게는 다음 요리를 할 기회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하나의 경험치가 쌓였고, 다음에 만들 요리는 분명 그 이전보다 나은 것일 테니까.
자, 쉴 때가 아니다. 설거지를 해야 한다. 내 요리에 대한 손님들의 피드백을 되새기고, 더 나은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최고의 식재료를 길러내야 한다. 당신에겐 할 일이 많다. 이제 막 셰프로서의 첫걸음을 뗐으니까.
글_홍아미
2W매거진 발행인,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 남미》,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조금씩 천천히 페미니스트 되기》등의 책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