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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May 06. 2020

에디터의 일

잡지사 에디터와 출판사 에디터는 어떻게 다를까

1인 전자책 출판사가 해야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을 기획해야 하고, 편집해야 하고, 이펍 파일도 만들어야 하고,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표지 디자인도 해야 하고, 내가 직접 책을 팔 수 없으니 팔아줄 서점을 찾아 계약도 맺어야 하고, 계약이 완료되면 각 서점 별로 책을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한번씩 들어가 판매현황도 살펴야 한다. 소액이나마 수익이 발생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그 달 마지막 주쯤에 입금이 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짓눌린 스타트업 사업가 같은 느낌에 흐뭇하다. 참고로 첫 달 매출은 10500원이었다. 

이 글에서 매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다. 적어도 올 한 해 동안은 수입을 상관치 않고 내고 싶은 책을 맘껏 내기로 작정한데다, 책이 안 팔리는 건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돌파구나마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오늘은 편집자, 즉 에디터의 영역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을 적어보려고 한다. 




에디터의 일은 내게 매우 익숙한 것이다. 10년 넘게 잡지판에 종사해왔고, 100여종에 가까운 잡지와 사보, 소식지 등등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잡지사에서 기자들이 하는 일 중 절반 이상이 바로 에디터 업무다(취재하고 글쓰는 일은 전체 업무의 40%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 한권의 책을 어떻게 구성할지, 하나 하나의 꼭지를 어떻게 기획하고 분량을 잡을지, 도비라를 넣을지 뺄지, 사진을 작게 넣을 크게 넣을지, 직접 찍을지 구입할지, 아니면 그림을 넣을지, 누구를 섭외할지, 아니면 청탁을 넣을지 등등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물론 잡지사에는 동료 기자와 팀장, 편집장 등 여러 구성원이 있기에 함께 논의하여 결정해야 하고, 갑자기 번복되거나 원하는 방향대로 편집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쨌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매달 한 권씩의 완성된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현장 취재업무만큼이나 에디터의 일을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삼일 밤을 새느라 졸음에 미쳐가다가도 교정 실장님이 “홍유진 기자 대지 나왔어요!” 소리에 가슴 속 가득 들어차던 설렘과 후련함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잡지 에디터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한다. 위로는 편집장님부터, 디자이너, 교정자, 사진작가, 화보라도 찍을라치면 헤어메이크업, 코디네이터, 장소대여업체, 취재원, 취재원의 매니저, 협력업체, 마케팅업체 등등.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사람들과 메일과 메시지와 공문을 주고받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진득하니 심사숙고할 시간 따윈 없다. 여기저기서 받은 명함은 서랍 3개를 채우지만 누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하기 어렵고, 혹여 기억이 안나더라도 10년 절친인양 자연스럽게 호들갑 떨며 인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이번호에 공들인 기획기사가 나왔을 때, 취재원에게 감사인사를 받고, 스스로도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지만 마감 후 바로 다음호 기획을 하는 순간 그 뿌듯함은 완전히 연소되어 버린다. 아, 이제 알았다. 잡지 일을 오래 하면서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낀 것은 바로 그 휘발성에 있었다. 불꽃이 튀도록 달렸는데 다 연소되고 꼭 쥐었던 손을 펴보면 아무것도 없이 가녀린 연기만 피어오르는 거다.



작가와 편집자가 함께하는 일


같은 에디터지만 출판사 에디터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 한 번도 출판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잡지 에디터의 일이 잡지사 내 구성원 사이의 협업이라면 출판사 에디터는 작가와의 협업에 더 가깝다. 즉 한 사람과의 관계가 굉장히 밀착되어 있고, 오래 지속된다고 해야 하나.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받아서 읽고, 편집하고, 포장해서 서점에 올리고 장부를 받아볼 때까지 에디터와 작가는 계속해서 연결돼 있다. 게다가 나는 종이책을 만들지 않으니 디자이너나 인쇄업체와 의견을 조율할 일도 없다. 독자조차 없다. 오로지 작가뿐이다. 

잘 만든 책을 서점에 올리기 전 나는 반드시 서평을 직접 쓰는데, 그 순간에는 짝사랑에 가까운 감정마저 인다. 이렇게 좋은 글을, 멋진 얘기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줘야 하는데! 그런 마음도 있지만 사실은 작가를 만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서평을 쓰자마자 작가에게 맨 먼저 보내주는데 작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는걸 보면 분명 그렇다.


책을 서점에 올려도 일이 끝나는 느낌이 없다. 종이책처럼 품절이 될 일도 없으니 일부러 내리지 않는 한 계속해서 서점에서 판매될 테니. 이걸 어떻게 알리고 팔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것이다. 

아직은 초짜 에디터라 보이는 것도 아는 것도 많지 않다. 분명한 것은 작가와 알콩달콩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이 꽤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작가를 만나고 싶고, 많은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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