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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Oct 26. 2022

당신이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면_주시월

2W매거진 28호 <운동하는 여자들> 이달의 에세이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28호 <운동하는 여자들>  편에 주시월 작가의 '당신이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면'이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타인이 찍은 낙인에서
나를 꺼내주기를,
그리하여 한껏 즐거워지기를




S는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웠다. 성적이 매겨지는 교과과정이었다. 사방이 거대한 거울들로 둘러싸인 무용실이 수업 장소였다. 교사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다. 교장, 교감과 비슷한 나이 같았다. 하지만 겉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딱 붙는 검은색 옷에 감싸인 몸이 탄탄했다. 자세는 늘 꼿꼿했다. 학생들 앞에서 춤을 선보일 때면, 여기가 학교고 자신이 교사라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무대에 선 댄서처럼 정열적이었다. 무심한 태도를 높게 치던 학생들에게 교사의 정열은 자주 웃음거리가 됐다. 그러나 S는 교사를 동경했다. 자신이 교사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꼿꼿한 몸과 정열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댄스를 익힌다면 그렇게 될 것 같았다. 

문제는 S가 도무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거였다. 왼발이 먼저인지, 오른발이 먼저인지 헷갈렸다. 박자를 맞추는 건 더 어려웠다. 교과서가 따로 있지 않아서 수업 시간에 춤 동작을 익히지 못하면 친구에게 물어야 했다. 계속 춤 동작을 틀리는 S에게 교사는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교사의 정열은 자신의 춤에 있었고, 학생에게 있지 않았다. 열등생은 수업 진행을 막는 방해물이었다. S는 움츠러들었다. 무용실에 가는 걸 겁내게 됐다. 마음이 굳자 몸도 굳었다. S의 동작은 춤이라기보다는, 혼자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더 큰 난관이 있었다. 2인 1조로 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점수는 각각 매겨지지만, 팀 점수가 있었다. S가 시험을 망치면 파트너에게 피해가 갔다. 안무라도 숙지해 파트너의 방해물이 되지 않아야 했다. 방법은 필사적인 연습뿐. 

쉬는 시간에 교실 뒤쪽에서 시험을 대비한 춤판이 벌어졌다. S도 거기 끼어서 연습에 매진했다. 파트너는 춤을 잘 추는 친구라서 연습할 필요가 없었지만 도와줬다. 그 친절이 무색하게도 S의 실력은 늘지 않았다. 시험이 다가오자, S는 다른 수업 시간에도 머릿속으로 연신 안무를 연습했다. 하나둘, 차차차. 하나둘, 차차차. 

시험 당일 S는 약국에서 청심환을 사 먹었다. 누가 봤다면 스포츠댄스 경연 대회라도 나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시험에서 S는 동작을 틀리지 않고 해냈다. 그렇지만 개인 점수는 나빴다. S의 동작에는 리듬감이라거나 유연성 같은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S는 시험이 끝났다는데 안도했다. 더는 무용실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스포츠댄스 수업에서 S가 배운 건, 자신이 춤에는 재능이 없고 즐길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L은 대학생 때 요가를 배웠다. 요가원은 성황이었다. 수업 시간이면 30평은 됨직한 널찍한 방이 요가 매트로 가득 찼다. 수강생들은 몸을 뻗다가 서로에게 닿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윤기 나는 머리칼을 꽉 동여맨 가느다란 강사는 수강생들 사이를 요령 좋게 걸어 다니며 자세를 봐줬다. 

하루는 강사가 상체를 하체 위로 접으려고 끙끙대는 L에게 다가왔다. 강사가 살짝 밀자, 거짓말처럼 L의 상체가 쭈욱 내려갔다. 강사가 물었다. “요가 배워본 적 있으세요?” L이 아니라고 답했다. “와, 정말 유연하시네요.” 강사의 감탄은 L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했다. 그때부터 L은 요가 수업에서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잘하게 될 테니까. 

강사는 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강조했다. 지금 안 되는 동작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라고. 무리하면 다칠 수 있다고. L은 강사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L은 요가를 배운 지 한 달이 지나서도 동작 순서를 전혀 외우지 못했다. 아예 신경 쓰지를 않았다. 움직임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할 뿐이었다. L이 특히 좋아했던 건 마무리 동작이었다. 몸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긴장시켰다가 일시에 힘을 푸는 동작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랜 기간 풀어지지 않았던 긴장이 잠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미풍이 머리칼을 간지럽히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정적. 완전한 평온. 

경제적, 시간적 이유로 요가원을 다니지 못하게 됐을 때 L은 유튜브 요가 강의를 따라 하면서 지친 마음과 몸을 풀었다. 요가원이 L에게 남겨준 건 유연성이 아니었다. 요가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거였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자신 없던 L은 이 경험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달리기에 도전했다. L에게 달리기는 학교 운동회에서 뒤처진 채 눈물을 참고 뛰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지금은 경쟁할 필요가 없다. 숨이 턱에 차오르게 1분을 뛰고, 1분을 걷기를 반복하며 자신에게 맞게 뛴다. 요즘은 달리면서 이상하게도 웃음이 난다. 양발이 땅을 박차고, 그에 맞춰 머리칼이 흔들리고, 드넓은 하늘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활기찬 기분이다.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을 것 같다. S와 L은 같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인 걸까, 싫어하는 사람인 걸까? 

그는 요가를 할 때는 운동을 좋아했고, 스포츠댄스를 할 때는 싫어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선택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아이에게 낙인찍는다. 달리기가 느린 아이에게 ‘넌 달리기를 못하는구나.’ 하고 말한다. 공을 놓친 아이에게 ‘넌 운동 신경이 없구나.’ 하고 단정 짓는다. 집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넌 운동을 못해.’라고 규정된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뭔가를 못 한다는 낙인은 힘이 세다.  

평가로 시작된 운동에 대한 경험은 스스로 호불호를 알아갈 선택권을 빼앗는다. 그가 스포츠댄스를 배울 때 음악을 느끼고 움직임을 즐기는 법을 먼저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더라도 스포츠댄스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깨달았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싫음과 좋음 사이 어딘가에 스포츠댄스를 놓고, 언제든 즐길 가능성을 열어두었을 것이다. 

유연하다는 요가 강사의 말이 그를 북돋웠던 건, 단순히 칭찬이라서가 아니다.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틀에서 그를 꺼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싫어한다고 믿는다면, 해보지 않은 운동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새로운 운동 경험이 당신의 믿음을 부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싫어한다고 믿었던 운동을 재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이 찍은 낙인에서 나를 꺼내주기를, 그리하여 한껏 즐거워지기를 응원한다. 



글_ 주시월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

브런치 http://brunch.co.kr/@jusiwol 





[Mini Interview] 주시월


"기억에 남는 친구의, 다정하고 단단한 말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월에 태어난 시월입니다. 오랜 작가 지망생 생활을 하다 보니 생일을 기쁘게 맞아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해요. 올해는 제 글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해 주셔서 뿌듯하게 생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필진 여러분, 멋진 선물 감사합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신여성 작업실에서 매거진 원고 모집공고를 봤어요. 글을 꾸준히 써왔지만, 에세이는 처음 써봐서 망설임이 있었어요. 제 글이 발표되어서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투고할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에세이를 쓰기 전에 어떤 관점으로 얘기할지 먼저 생각해요. 그런데 가끔 글을 쓰다가 그 주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어요. 전혀 다른 관점일 때도 있고, 같은 관점이지만 좀 더 명료해질 때도 있어요. 발견의 기쁨이네요. 괴로울 때는… 저는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는 버릇이 있어요. 에세이를 쓰면서 보기 싫었던 감정을 마주하는 게 괴로워요. 하지만 그렇게 꺼내놓고 나면 마음에 공간이 생겨서 좋아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제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나를 포장하지도, 그렇다고 깎아내리지도 않았으면 해요. 거기에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기억에 남는 친구의 말 같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생각나면 웃음 짓게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는… 다정하고 단단한 말들이요.





필진들의 추천사


운동이 하기 싫은데 새로운 운동을 해보라니!! 이건 정말 생각해 보지도 못한 처방이다!! 나는 운동을 못해서 운동을 싫어했던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그런가. 아무래도 둘 다인 거 같다. 새로운 운동이라... 인라인스케이트라도 배워볼까 싶다.


다른 사람이 쉽게 하는 말들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평가에는 완전히 담담해지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그런 평가 때문에 나에게 한계를 두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주시월 작가님의 이야기처럼,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해보고 정말 맞지 않는다면 선택지에서 지울 수 있겠지만, 해보았을 때 한껏 즐거워질 가능성에 늘 설레고 싶다.


오! 그럼 나도? 나도 운동에서 칭찬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인데. 작가님 말대로 나는 어떤 운동에 도전해볼 수 있을까? 나도 즐거워지는 운동을 찾고 싶다. 


저도 운동을 못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누가 찍은 낙인일까 궁금해졌습니다. 하나하나 영역을 넓혀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이 글은 2W매거진  28호 <운동하는 여자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거진 정가는 3000원이며 수익금은 여성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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