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바욘에서 생장까지
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바욘 공립 알베르게는 10유로에 하룻밤 침대는 물론 아침식사까지 마련해 주었다. 인자하고 밝은 프랑스 자원봉사자 할머니가 차려주신 빵과 잼, 우유, 커피로 배를 채우고 일찌감치 숙소를 나섰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바욘 기차역은 꽤 시설이 깔끔했다. 전날 미리 예매해 놓은 티켓을 보며 기차를 기다렸다.
생장 피에드 포흐 Saint Jean Pied de Port(이하 생장)
드디어 이곳에 간다. 원래 계획은 2주 전이었다. 그땐 함께 갈 친구도 있었고 미리 예매해 놓은 기차표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작별인사를 나누고 온 할머니가 급작스레 돌아가실 줄이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귀국해 장례식에 참석한 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순례길을 걷기 위해 돌아왔다. 지난 몇 주간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비행기를 3번이나 탔으니, 살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먼 거리를 이동해 본 경험은 처음일 듯하다. 할머니 장례식에 다녀오는 일까지 포함해서 순례길을 시작했다고 치면 나로선 너무나도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가는 느낌이다.
기차역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니 플랫폼 번호가 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이 열차가 맞냐고 확인한 후 탑승했다. 나 같은 덜렁이는 이렇게 몇 번이고 직접 사람에게 교차 확인을 해야 안심할 수 있다.
생장 가는 기차는 비교적 깨끗하고 예뻤다. 프랑스 기차에 대한 악명이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탄 열차나 기차는 항상 컨디션이 좋고, 시간도 잘 지키는 편이었다. 기분 좋게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랄까. 좋은 경험만 기억에 남겨두기.
생장에서부터 본격적인 순례길이 시작된다. 프랑스 파리에 입국하자마자 12시간 야간열차를 타고 바욘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전날 바욘 공립알베르게에서 잠을 잘 자서 그런지 시차 적응도 잘됐고,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드디어 순례길 여정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폭발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꿈만 꾸는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드디어 발을 디디는구나.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 열차가 생장 가는 열차가 맞냐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방금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연배로 보였던 그녀와는 이내 금세 맘 맞는 여행 메이트가 되었다. 벌써 5개월째 세계여행 중이라는 라나를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남미, 아프리카를 여행한 라나는 이집트 다합에서 유럽으로 넘어온 지 며칠 안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세계일주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자유롭게 편도로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가 즐거웠다. 게다가 라나는 프리다이버였다. 언젠가 이집트 다합에서 원 없이 다이빙을 하는 게 소원이었던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리만족이었다.
그렇게 만나자마자 폭풍 수다를 떨며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드디어 생장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순례길 걷기는 다음 날 새벽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일 생장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M과 함께 하나하나 차근차근해나가기로 했다.
1.생장 우체국 가서 친구가 택배로 보낸 내 배낭 수령하기
2.생장 순례자 사무실 방문: 안내 받기, 스탬프 받기, 조가비 받기, 가방 무게 재보기 등등
3.55번 알베르게 앞에 가방줄 세워놓기
4.노쇼한 라비타벨라 호스텔 가서 사죄의 편지 드리기
5.생장 마을성당에 가서 미사드리기
가장 염려가 됐던 1번 과제. 2주 전, 할머니 장례식에 가기 위해 긴급 귀국할 때 빈 몸으로 갔었다. 무거운 짐을 한국에 가져갔다 다시 가져오고 싶지 않아서 프랑스에 있는 친구에게 국내 택배로 생장에 보내달라 부탁한 것이다. 혹시라도 분실되거나 배송이 늦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제 날짜에 잘 도착했다. 택배비 23유로에 보관비 5.7유로를 지불했다.
다음 2번 과제. 생장 순례자 사무실 방문. 산티아고 순례길. 특히 생장에서 시작하는 프랑스길을 걷는 순례자들이라면 반드시 처음에 들러야 하는 곳이다.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순례 관련 자료도 받을 수 있다. 나는 바욘에서 이미 순례자여권을 만들기 했지만, 설명도 듣고 스탬프도 찍기 위해서 들렀다. (참고로 순례자 여권 발급 비용은 2유로이다.)
전 구간 알베르게 정보, 구간별 거리와 고도를 나타낸 표 자료 등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최근 자료를 받을 수 있다. 언어에 따라 줄을 서면 되는데 자원봉사자가 어떤 표식을 따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은지 사진을 보여줘 가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배낭 무게 재는 저울도 있어서 재봤더니 8.5kg. 앞가방까지 더하면 10kg 완성이다. 참, 조가비는 순례자의 표식 같은 것. 다들 가방에 하나씩 달고 걷는 게 참 귀엽다.
*조가비의 의미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인 야고보가 처음 걸었던 길이다.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을 조가비가 덮고 있었다고 해서 조가비가 야고보를 상징하는 증표가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이 되었다.
자, 이번엔 3번 과제를 달성하러 55번 알베르게 앞으로 찾아갔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조금 올라오면 되는 위치에 있었다.
아침 9시 기차를 타고 일찍 도착한 우리가 당당히 일등을 차지해 맨 앞에 가방을 세워두었다. 체크인은 2시 반부터 시작되기에 그전까지 동네 구경을 하고 식사를 하고 오기로 했다.(하지만 2시 15분쯤 돌아왔을 때 이미 체크인이 시작되어 우리 뒤에 가방줄을 세운 사람들이 이미 입장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와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4번 과제는 라비타벨라 호스텔에 사죄의 편지드리기.
원래 처음 생장에 가려한 날 예약했던 호스텔인데, 급히 한국에 귀국하느라 ‘노쇼’를 해버리고 말았다. 장례식 마치고 며칠간 밀린 잠을 자느라 비몽사몽 하고 있는데 새벽 2시에 국제전화 두 통이 와 있었다. 말없이 순례자가 안 오니 메시지도 보내고 국제전화까지 걸었던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예의 없이 노쇼를 해버리고 만 것이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게 아닐까 맘이 불편했다. 위치가 가까워 직접 찾아가 사죄의 편지와 한국 전통간식을 선물로 드리고 왔다. 호스텔 주인 분께서 너무 고마워하시며 “시에시에”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이제 남은 과제는 5번뿐. 생장 마을 성당의 미사는 저녁 7시에 있다 해서 그동안 M과 함께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며 점심도 먹고 여유롭게 시간 보내기로 했다. 바쁜 마음으로 할 일을 다 처리하니 그제야 여유가 찾아왔다.
마을 광장에 있는 식당 테라스에서 유유자적 점심식사도 즐기고(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바스크 플레이트라는 메뉴가 있어서 시켜봄. 베이컨, 소시지, 계란프라이, 졸인 파프리카? 너무 짜고 느끼했다. 실패) 냇가가 있어 바지를 걷어 부치고 들어가 발을 담가보기도 하고 성벽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전망대에도 올랐다.
아, 이곳에 오기는 왔구나. 얼마나 먼 길을 돌아 돌아왔는지.
당장 다음날부터 매일 20KM 이상을 걷게 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거야. 조용히 되뇌었다.
이날 걸으며 라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사 후 여행을 떠나왔다는 삼십 대 라나는 연애 문제와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머리가 꽉 차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혹사하며 걷기만 하고 싶어 순례길을 찾아왔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를 비우고 싶어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딱히 비우고 싶은 것은 없는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 길을 다 걷고 난 후, 나는 비우게 될까, 채우게 될까.
라나와 함께 샹그리아를 마시며 축배를 나누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여정의 마지막도 라나와 함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