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24km
Today’s route ★★★☆☆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24km
예쁜 길을 나 홀로 걷는 시간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발 문제만 없다면 더 행복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걷는 동안에는 이조차도 아주 사소한 문제로 여겨진다.
오전에 비가 왔지만 우비를 쓰지 않았다. 강한 비는 아니었지만 보슬비라도 계속 맞으니 재킷이 흠뻑 젖었다. 팜플로나를 나와 다음 마을에 도착할 무렵에는 빗줄기도 꽤 굵어져 있었다. 잠시 옷도 말리고 따뜻한 커피로 몸도 데울 겸 얼른 눈에 보이는 바에 들어갔다.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바에는 외국인 몇 명과 한국인 여성 4명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자연스럽게 한국인들끼리는 눈인사를 주고받게 된다. 며칠 걷는 동안 한 번 이상 마주친 적이 있었다면 더더욱.
여기서 놀라운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수비리 가는 길에 모자를 잃어버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새로 구입한 초경량 등산 모자였다. 남편이 잘 다녀오라며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상품권으로 결제했는데, 당연히 몇 번 사용하지 않은 새 모자여서, 잃어버린 걸 알았을 때 조금 속상했다. 한국인 순례자들 단톡방에도 올리고, 마주치는 한국인들에게도 혹시 하얀 모자 봤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라나가 그런 말을 했다. “언니, 순례길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돌아온대. 좀 기다려 봐.” 그 말이 맞았다.
한국인 여성 4분 중 한 분이 그 모자를 주워 내내 가지고 다니셨던 것이다. 놀라웠다. 정말 내게로 오다니.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50~60대 여성분들이셨는데, 친구, 은퇴한 직장동료 사이인데 팀을 만들어 자유여행으로 유럽에 왔다고 했다.
이 분들이 나가시고 얼마 안 있어 어제 타파스바에서 같이 수다를 나누었던 일행 하나가 또 들어와 테이블에 합류했다. 길에서 이렇게 익숙한 얼굴을 자꾸 마주치니까 혼자 걸어도 혼자인 느낌이 안 든다. 쉴 만큼 쉰 나는 일행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길을 나선다.
오늘은 대부분 평지였지만 나지막한 언덕의 능선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이었다. 오전엔 비가 계속 왔지만 오후가 되자 구름을 뚫고 해가 비치더니 이윽고 무지개까지.
걷는 내내 행복에 겨워했던 시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바람결에 따라 무늬를 달리하며 춤을 추는 초록 풀들의 물결. 그 위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보았다. 어찌나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던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내게 전이되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순간 이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의 행복 순위를 매기면 쟤가 일등 아닐까.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은 이번 코스의 클레이막스였다.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면 꼭대기에 그 유명한 철제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바람을 맞으며 줄을 지어가는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언덕 꼭대기 멋진 작품과 풍광을 감상하며 잠시 땀을 식히고 휴식을 취하는 순례객들. 난 거기서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왔다.
이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 하나의 종교를 꼽으라면 역시 가톨릭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 시절 내게 가톨릭을 전해주었던 최초의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영세도 받았다. 솔직히 신앙심이 생겼다기보다 할머니가 가자고 하니 그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다닌 게 맞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나는 할머니 손을 뿌리쳤다. 일요일 아침 혼자 성당에 가며 방에서 좀처럼 얼굴도 내밀지 않는 손녀에게 어떤 마음을 느끼셨을지….
성당에 갈 때조차도 나는 할머니와 걸음을 맞추기 힘들어서 늘 멀찌감치 떨어져서 훌쩍 가있곤 했다. 이제 막 팔다리가 쭉쭉 자라나는 소녀에게 할머니는 너무 느리고 지루한 존재였다. 함께 걷는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난 사실 그때 이미 알았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지금 이렇게 혼자 머나먼 길을 걷고 있다. 할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고…. 용서의 언덕에 오르니 참 별 생각이 다 난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쓱 닦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중간중간 바르에 2번이나 가고 앉아서 쉰 것도 여러 번인데… 그렇다 해도 8시간이나 걸리다니.
그래도 다행히 9유로짜리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1층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숙소에 도착해 양말을 벗었을 때, 탄식이 나왔다. 이런… 발톱에 보라색 멍이 들었다. 사실 매일 늘어나는 발가락 물집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이날은 물집 생길 것 같은 발가락에 일회용 밴드도 단단히 붙이고 바셀린도 듬뿍 바르고 발가락 양말도 신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중간중간 충분히 쉬어주고 양말도 벗어 바람도 쐬어주고. 그런데 점점 발 상태가 나빠지기만 한다. 왜 매일매일 발가락에 이렇게 탈이 나는 걸까. 물집이 잡히고 쓰라리고 멍이 들고 이러다 발톱도 빠지겠지. 앞으로 수십일을 이렇게 걸어야 하는데, 이 발로 그게 가능할까. 게다가 전날 뭔가 팽창된 느낌이 들었던 오른쪽 종아리 근육통이 심해졌다. 쥐가 나는 듯한 고통이라 나도 모르게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며 푸에테라레이나 구경을 하겠다고 마을을 좀 돌아다녔다. 이곳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을이라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비가 왔던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오후의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아. 행복하면서 슬픈 묘한 기분이었다. 마음은 날다람쥐처럼 여기저기 쏘다니고 싶은데, 이렇게 어기적어기적 걷는 몸이라니.
앞으로 30일은 더 걸어야 하는데, 막막하기만 했다. 여왕의 다리 앞 벤치에 누워 한참 하늘을 바라봤다. 모이고 흩어지고 흘러가는 구름. 머물러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일 이 시간에 내가 여기 있지 않듯이.
나는 무슨 생각으로 내가 당연히 완주할 거라 생각했을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쓸데없이 오만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 나이가 되도록 자주 잊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얻어야 할 교훈은 겸손일지도.
오늘의 알베르게
Albergue Padres Reparadores ★★★☆☆
1박 9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