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까지 21km
Today’s route ★★☆☆☆
부르고스Burgos → 오르니요스 Hornillos 21km
순례길은 마치 인생길 같다. 힘들고 지칠 땐 오아시스처럼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고, 행복에 도취되어 마음이 들뜬다 싶으면 어김없이 고통이 다가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그렇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닿아있겠지.
전날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잘 자기’가 거의 유일한 재능인 내게 좀처럼 없는 일이다. 그렇다. 내게도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친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건 전날 카트린, 유정언니와 함께 하던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목 부위가 좀 가려워서 만져보니 한두 개 볼록한 것이 나와 있었다. 처음엔 모기에 물렸겠거니 하며 무심코 긁적거렸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모기에 물린 게 아니라 시뻘건 두드러기가 목부터 쇄골 부위까지 번져있었던 것이다. 내가 뭘 먹었더라? 저녁식사가 문제였나? 아님 점심? 이틀간 하도 뭘 많이 먹어서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숙소 내엔 딱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어 유정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약사인 언니는 약국에 가서 어떤 약을 달라고 하면 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고, 혹시 이튿날 떠나기 전에 아파트에 들를 수 있으면 본인이 가진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맹신하는 편이다. 웬만큼 피곤하거나 통증이 있어도 한숨 잘 자고 나면 다음 날 싹 나아있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가려움증이었다. 살포시 잠이 들었다가도 목을 벅벅 긁으며 잠이 깨곤 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긴긴밤을 보냈다. 부르고스에서 친구들과 먹고 놀고 마시며 한껏 업되었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기 시작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닥친 것일까.
결국 5시쯤 되어 더 누워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다시 확인해 보니 두드러기는 얼굴에까지 번져있었다. 오른쪽 얼굴, 턱, 목, 가슴 팔까지……. 평소 염증이나 알러지성 질환을 앓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거울 속의 내가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출발하기 전에 약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검색해 봤지만, 오전 10시나 되어야 연다고 되어있었다. 10시 이후에 출발하면 오늘은 거의 못 걷는다고 봐야 했다. 결국 유정언니에게서 약을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새벽 6시 반에 자는 언니를 깨워서 약을 받으러 시내에 있는 아파트까지 다녀왔다. 항히스타민제는 하루 두 알씩, 스테로이드는 한 알씩 먹으면 된다고 일러주며 내 상태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하루 더 쉬었다가 내일 우리랑 같이 가지.”
하지만 하루를 쉰다고 가려울 게 안 가려운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몸을 움직여야 이 가려움증으로 인한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틀 잘 먹고 잘 쉰 덕분에 다른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나는 조금 늦은 걸음을 재촉했다.
시작은 비록 우울했으나 더없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부르고스까지의 추웠던 나날들이 하나도 생각 안 날 만큼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에 울적했던 기분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래, 삶의 고비에서도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 초록 밀밭 사이로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걷기 좋게 뻗어있는 순례길. 그 위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고통은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이날은 걷는 동안 곳곳에서 한국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에서 여행 초부터 마주치며 늘 친절한 이웃처럼 어린 친구들을 챙겨주시던 은퇴한 부부가 있다. 두 분 다 은퇴하셨는데, 독특하게도 아내 분이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는 걸, 남편 분이 따라오신 케이스라고 했다. 초기에 내가 물집 때문에 고생하는 걸 봐왔던지라 나만 보면 늘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은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주시던 분들이다.
“물집은 이제 그냥 달고 걸을 만한데, 어제부터 두드러기 때문에 고생이에요.”
내가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하자, 역시나 자기 일처럼 걱정을 해주시더니 캐나다에서 오신 약사 부부와 연결을 시켜주셨다. 아니 순례길에서 왜 이리 약사 분들을 자주 만나는지. 남을 케어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이지 천사의 능력인 것 같다. 약사 아저씨가 내 상태를 보시더니 약국에서 이 연고를 사라고 정확한 상품명까지 검색해서 알려주시고, 본인이 가진 연고라도 지금 바르라며 건네주셨다. 연고를 바르니 확실히 가려움증이 덜해졌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게 될까. 이 감사함을 다 갚진 못하더라도 기억이라도 해야 할 텐데.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에 도착하기 전, 깔자다스(Calzadas) 마을을 지날 때의 일이다. 아인슈타인, 넬슨만델라 등 유명인들을 그린 커다란 벽화를 배경으로 성경 구절이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거기 작은 예배당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순례자들이 계속 오가는 게 아닌가. 마을마다 교회나 예배당이 있고, 순례자들이라면 누구나 거기에 들러 짧게 기도를 드리거나, 비치된 스탬프를 크루덴시알에 찍을 수 있다. 가끔은 문이 닫힌 곳도 있고, 들어가도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예배당은 좀 다른 분위기였다. 그 기운에 끌려 나도 모르게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밝은 표정으로 순례자들을 맞는 수녀님 두 분을 뵐 수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뭐라 뭐라 말씀하시면서 축복 기도도 해주시고, 목걸이도 걸어주시고, 포옹도 해주셨다. 목걸이는 작은 성모 펜던트에 실을 연결해 놓은 단순한 형태였지만 언뜻만 봐도 수녀님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순례자의 안녕을 비는 의미의 도장 문양도 특별했다. 알고 방문했든 아니든 간에 수녀님께 생각지도 못한 축복을 받은 순례자들의 표정은 모두 알 수 없는 감동과 뭉클함에 젖어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르니요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가면서 만난 한국인 분들은 모두 숙소 예약을 했다는 얘길 듣고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처음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 물었더니 이미 풀이라고 했다. 바로 옆에 있는 두 번째 숙소에 갔더니 다행히 딱 한 자리 남아있었다. 하루 숙박료는 14유로.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 변변한 식당도 없는 작은 마을이라 내친김에 저녁식사도 신청했다.
마지막에 도착한 탓에 2층 당첨이었으나 침대가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재미있는 건 선희, 영순, 선규, 마태오 님, 한국인 부부 분들을 한 방에서 다 만났다는 것이었다. 남미에서 온 커플과 서양할아버지 한 분을 제외하면 완전히 한국방이었다. 욕실은 공용인 데다 그 수가 적어서 좀 불편했지만 햇살 가득한 안뜰도 예쁘고 전반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사립 알베르게였다(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있었다). 마태오 님은 신앙심이 매우 깊어 매일 성당을 찾아 예배를 드리는 분으로 잘 알고 있었다. 침대도 바꿔주려고 하고, 자꾸 뭘 사주려고 하셔서 특이했다(마태오님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 속도가 비슷해 앞으로도 자주 만날 것 같아서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오늘의 알베르게
Hornillos Meeting Point ★★★☆☆
1박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