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가 Apr 06. 2019

기도의 방향

여행 속에서 간절함을 발견하는 순간



애초에 뭔가를 의심 없이 믿는 성격이 못되는지라 종교와는 인연이 없다 생각했다. 내가 매력을 느끼고 빠져드는 대상은 늘 사람이었다. 울고, 웃고, 만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눈앞의 사람. 보이지도 않고, 존재조차 희미한 대상을 어찌 그리 믿고 따를 수 있을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다니던 성당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딱히 종교와 뭔가 연을 맺을 일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까. 일상 속에서 내가 종교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라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 오신 날뿐.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어떻게 종교가 없을 수 있어?”

그러니 이런 질문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국적이나 나이를 묻듯이 종교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없다’고 대답하면 세상 불쌍한 사람을 바라보듯 ‘어쩌다 그런...’이라는 반응을 보이니 당황할 수밖에. 

다소 강제적인 전도 활동에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선택의 영역이다. 그러나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수많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법으로 종교를 아예 정해놓은 나라도 많았고, 그에 따라먹는 것도, 직업이나 결혼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니, 강요의 여부를 떠나 마치 숨을 쉬듯, 밥을 먹듯, 사랑을 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그들에게 종교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한 부분이었다. 






힌두교다음 생이 있으니 괜찮아

인도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또한 힌두교라는 낯선 종교 문화였다. 소를 숭상하는 문화 덕분에 대로변에 커다란 소들이 똥을 누며 유유히 걸어 다니고, 소 떼가 다 지나갈 때까지 차들이 빵빵거리지도 않고 대기하는 모습이 처음엔 충격적일 만큼 기이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꽤 많았다. 그중 최고는 바라나시의 가트였다. 가트에서 화장을 하고 갠지스 강에  재가 뿌려지면 다음 생에 더 나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인도인들. 위에 흰 천을 덮었을 뿐, 관도 없이 불타는 시체의 모습은 지나가는 이방인들에겐 그로테스크한 관광 요소였다. 그러나 화장을 위해 평생 장작 값을 모아야 하는 인도 빈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숙연해질 수밖에. 

화장재는 갠지스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갈 것이었다. 거기서 사람들은 수영과 목욕을 하고, 관광객들은 초를 띄우고 소원을 빈다. 모든 것은 돌고 도는 것이고, 이번 생이 글렀다면 다음 생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조급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이슬람교 – 이상해 보여도 편안한

터키에서는 도심이든, 해변이든, 산골이든 정해진 시간에 종소리와 경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가든 가까이에 모스크가 있다는 얘기다. 이슬람교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신자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는 종교다. 신이 존재함을, 너희를 굽어보고 있음을, 보이지 않는 보살핌을 매시간 일깨우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과 돼지고기를 멀리하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마호메트가 특히 사랑한 동물이란다), 라마단 기간에 맞추어 단식을 하고, 하루에 네 번씩 코란을 암송하고 모스크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린다. 

우리는 여행자이기에 그들의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들의 영토에 들어와 있음을 자꾸만 되새기게 되었다. 공공장소에는 화장실 수만큼의 기도실이 있고, 그들은 그 안에서 편안해 보였다. 여성 억압 문제, 과격 이슬람 단체의 테러 등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에 편견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블루 모스크의 천장을 바라보며, 고요한 경 읽는 소리에 지그시 눈 감으며, 맛있는 이슬람 음식을 만나는 동안만큼은 분명 이슬람 사회 안에서 지극히 편안했다. 이 멋진 나라를 만든 게 알라신이라면, 그는 꽤 괜찮은 신임에 분명하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불교 – 수천 가지 기도와 소원의 아름다움

종교에 대한 호감도만을 고려하자면 나는 불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그 넓은 품을 사람들에게 열어두고 있는 사찰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다. 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위치한 향일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이다. 거기서 바라보는 남해는 해가 뜰 때건 질 때건 늘 감동적이다. 법정스님이 지으셨다는 서울 길상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며 묵언수행을 한 적도 있다. 신기한 일이었다.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이런 고요함이 숨어 있었다니. 가톨릭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이니 만큼 각 나라마다 다른 분위기의 절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이나 일본의 불교는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주고받았던지라 크게 낯설지 않았는데 동남아시아 쪽은 늘 흥미로웠다. 그중 최고는 지금은 명해진 라오스와 미얀마의 탁발 행렬이다. 매일 새벽마다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이 불경을 읊으며 마을과 시장을 돌면 그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쌀이며 음식을 준비해 승려들의 그릇에 나눠준다.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건 졸린 눈을 비비며 보시하러 나온 어린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아이들이 더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부모들이 배려한 것이리라. 그렇게 내세에 훌륭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어쩌면 당장 아이를 배불리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는 것보다 더 깊은 사랑이 아닐는지. 

미얀마 바간도 빼놓을 수 없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엄청난 규모의 사원들을 둘러보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멋지지만 진짜 장관은 사원 위를 기어 올라가야 볼 수 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원 꼭대기에 오르면 바간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세상에, 온통 불탑이다. 집이나 건물보다 훨씬 많은 수의 크고 작은 불탑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데 그게 참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최빈국 중 하나인 미얀마 사람들이 평생을 모은 돈을 보시해서 짓는 불탑이다. 크고 화려하게 올릴수록 보다 나은 윤회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내세를 위해 현생을 바치는 건 바보 같은 일일까 고귀한 일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가톨릭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봉사를 핑계로 가평의 꽃동네로 도망쳤을 때는 봉사로 사명을 다하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잠시 그들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견진까지 받고도 수년간 냉담해왔던 나도 그 안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수천 명의 장애우, 노인 아이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없던 신앙심마저 싹트는 걸 느꼈다. 종교의 힘은 때로 이렇게 거대하고 무섭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면, 내게 가톨릭은 위대한 건축물이 주는 감동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유럽 곳곳에 위치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다. 이 정도로 아름답고, 이 정도로 공들여 건축물을 짓게 만드는 신이라면 그 위대함을 의심조차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중 최고는 단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었다.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의 유작으로, 미완성인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아우라를 발산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거대하고 세밀한 외관을 맞닥뜨리자마자 약간 기가 눌리는 느낌이고,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천상계의 숲 속에 들어온 송구한 느낌에 절로 신을 우러르게 된다. 그 공간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숨을 몰아쉬며 환희에 차 오르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 또한 신을 향한 기도라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가장 간절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 07화 여행의 아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