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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Apr 13. 2019

그곳에 사람이 산다

내가 가본 독특한 마을들

특별한 목적 없이, 보통의 관광을 하는 이에게 여행지를 정하는 기준은 아마 볼거리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궁전, 모나리자가 전시된 대형 박물관, 무슨 영화에 나왔다는 유명한 서점, 한쪽으로 기울어져 불가사의하다는 높은 탑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아~ 거기’ 하고 알 정도고, 교과서나 미디어에서 여러 번쯤은 접해보았을 그런 곳들 말이다. 자, 이제 비싼 입장료는 감수해야 하고, 인증샷도 필수다. 패키지 여행에서는 아예 그런 곳들만 콕콕 집어보는 일정으로만 꽉 차 있다. 

그러나 가끔은 특정한 하나의 스폿이 아니라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먹고 자는 것으로 여행이 꽉 차는 경험을 받을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마을들이 나름대로의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겠으나 유독 기억에 남는 몇 곳이 있다. 독특한 지형 안에서 정착해 집을 짓고 살고, 자연스레 시장을 형성하고, 때마다 축제를 열어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단 며칠만 보내도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참 다채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벽 위 마을 - 론다 Ronda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유명한 여행지가 된 스페인의 론다는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오래된 도시다.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이국적인 매력은 물론, 유서 깊은 투우장과 절벽과 절벽 사이를 연결하는 웅장한 누에보 다리 등 볼거리도 많다. 패키지에서는 오후에 몇 시간 정도 들러 누에보 다리와 투우장만 둘러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론다의 진짜 매력은 누에보 다리 건너 구시가 산책에 있다. 

중세 도시를 그대로 보존해놓은 듯, 오래된 건축물들이 경사지고 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사이로 거대한 협곡과 절벽이 이루는 장관은 그야말로 기이하다. 100m는 족히 넘을 듯한 높은 협곡 아래로 세찬 강이 흐르고, 그 위로는 하얀 집들이 지어져 아슬아슬하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야생에 가까운 자연을 길들이고 아름다운 문화와 삶의 온기를 불어넣은 사람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느긋하게 산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며 즐기는 론다의 야경은 ‘로맨틱’ 그 자체다. 그래서 론다에서는 최소한 1박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나보다. 특히 누에보 다리는 아무리 여러 번 바라보아도 감탄이 멈추질 않는다. 완공까지 무려 42년이나 걸렸고, 건설 과정에서 50여 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는 론다의 상징이다. 협곡 아래에서부터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들었다는데 새삼 시간의 위대함과 인간의 힘을 절감하게 된다. 




거대한 바위들의 마을 - 몬산투 Monsanto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포르투갈의 몬산투라는 마을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지대에서 가까워 리스본에서 차로 달리면 3시간 만에 닿을 수 있다. 멀리서도 산꼭대기 위에 형성된 이 마을의 비범함이 전해왔다. 마을 어귀에 주차하고 시선을 돌리자 놀라운 풍경이 연속되었다. 온통 바위뿐인 마을. 거리도, 벽도, 울타리도, 집도, 문도 모두 바위로 되어 있는데 더러는 깎고, 더러는 그대로 두었다.

마을의 많은 집이 거대한 화강암 바위를 품에 안은 채 지어졌다. 지붕도, 난롯가와 화장실조차도 온통 돌과 바위였다. 침실 한쪽에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을 정도였다. 생경한 느낌에 손을 대니, 거칠면서도 온순한 질감에 그대로 두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불쑥불쑥 밀고 들어오는 바위의 존재감은 어느새 일상의 순간에 어우러져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바위가 거기 있었고, 인간이 비집고 들어온 것일 테지. 그러니 바위가 사람을 받아들여준 것이다. 고맙다고, 다시 화강암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몬산투에 머무는 내내 어마어마한 안개에 휩싸여 한 치 앞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안개가 기이한 마을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리긴 했으나 풍경을 더 자세히 보고 싶던 마음에는 아쉬움이 좀 남았다. 골목에 있는 작은 바에 들어가면 1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와인 한 잔을 마실 수 있던 곳. 그림 같은 풍경에 취해 보낸 2박 3일이 아스라하다. 





물 위에서도 산다 - 인레 Inle

또 하나 특별했던 마을을 꼽으라면 바로 미얀마의 인레 호수이다. 미얀마 북동쪽에 위치한 제법 큰 호수인데, 고지대라 시원하고 물도 꽤 맑은 편이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지역으로도 이름이 높다. 내가 갔을 땐 관광개발 붐이 일면서 여기저기 리조트를 짓느라 시끌벅적했으니 지금은 꽤 세련되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인레 호수의 매력은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소박하고 편안한 모습이다. 찾아보니 ‘인타족’이라고 하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수상족이라고 한다. 이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하는데 티크나 대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이 기둥을 중심으로 수상가옥을 만들어 마을을 형성하고,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정갈하게 살아간다. 호수 위의 절, 호수 위의 시장, 얼기설기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 위에선 아이들이 뛰어노는, 정다운 골목길 풍경이 펼쳐진 곳. 

우리는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수상 리조트에 묵었는데 방갈로 형식으로 지어진 객실 바닥 아래로 호숫물이 찰랑거렸다. 침대에 누우면 물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데 그 분위기와 소리, 냄새가 참으로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산다. 거친 바닷가에도, 깎아지른 듯 아찔한 절벽 위에도, 정도 안 들어갈 것 같은 거대한 바위 사이에도, 어두침침한 동굴 속에도, 정 땅이 없으면 호수나 바다 위에 부표를 띄우거나 진흙을 매워서라도 자리를 잡고 산다. 집을 짓고, 가족을 만들고, 낚시를 하거나 사냥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한다. 시장을 만들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신을 받들며 평안을 기도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난 왜 살까,라는 헛된 고민은 저 멀리 사라지고,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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