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가 Apr 20. 2019

맛이 우리를 움직인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음식들

 

입맛 까다로운 친구 커플과 우리 부부, 넷이서 대만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초행길이었던 우리와 달리 수년 전 대만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던 친구 부부는 특유의 향이 나는 대만 음식에 거부감이 심한 편이었다. 특히 모든 음식에 배어 있는 고수 향에 너무 괴로웠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질 못했어. 하도 배가 고파서 삶은 달걀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주문했더니, 세상에 달걀도 고수 넣은 물에 삶은 거 있지!”

친구 부부는 고작 4박 5일 일정의 여행을 위해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준비했다. 대만은 처음이었지만 동남아 음식을 여러 번 접해본 우리는 ‘뭐 그 정도까지일까’ 싶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우리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우육면, 망고 빙수, 딤섬, 오리고기 등등 대만 음식을 섭렵해 나갈수록 우리는 맛에 홀딱 빠져들었다. 돌아보니 친구 커플도 마찬가지였다. 냄새가 고약하다더니, 그 말은 쑥 들어가고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었다. 지우펀에 가서는 취두부와 고수를 잔뜩 넣은 땅콩 아이스크림에도 도전해 성공했다. 내 돈 주고 음식을 사먹은 것뿐인데 그 지역을 정복한 기분이 든 건 왜였을까. 다행히 친구 커플 또한 이전 여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때때로 맞지 않는 음식들

인도 여행에서 만난 한 언니는 인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에 욕지기가 올라온다며 늘 바나나와 우유로 끼니를 해결했다. 과장이 아니고 인도 카레는 정말 장난 아니게 맛있다. 우리나라 카레와는 전혀 다른 경로의 맛이었는데, 그 맛에 눈뜨고 난 후 인도가 더 좋아질 정도였다.

동남아 음식은 말해 무엇하랴. 동남아시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의 팔 할은 음식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맛있는 세 끼(가끔은 네 끼)만 챙겨 먹어도 동남아 여행의 이유는 충분하다. 내가 고수를 좋아하게 된 건 베트남 쌀국수 덕분이다. 쌀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절대 질리는 법이 없다. 동네마다 재료가 다르고, 사람마다 조리법이 달라서 먹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진한 육수에 신선한 고수 향이 배어들 때 그 감칠맛과 향기로운 국물 맛은 궁극의 미각을 일깨운다. 국물을 들이켜면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같은 감탄사를 내뱉게 된달까. 

똠양꿍은 쌀국수보다 좀 더 다채로운 결의 맛을 내는 음식이다. 일단 재료와 향신료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똠양꿍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레몬그라스와 라임잎이 내는 독특한 신맛이다. 우리나라 음식의 신맛은 식초맛이거나 발효된 신맛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동남아 음식에는 신맛을 내는 천연 재료가 다채롭게 들어간다. 딱 보기에는 해산물과 시뻘건 칠리소스로 낸 얼큰한 매운맛을 연상하기 쉽지만, 국물을 떠먹어보면 완전히 다른 맛이 난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유독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인 것 같다. 그러나 동남아의 신맛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바탕에 깔려 있는 해산물의 깊은 맛과 코코넛밀크의 고소한 맛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말 나온 김에 코코넛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열대과일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밍밍한 코코넛 음료 외에는 접할 일이 별로 없지만, 동남아에 가면 흔하디흔한 식재료 중 하나이다. 이 사람들 코코넛 없었으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급 요리부터 길거리 음식, 디저트, 음료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카레에 코코넛 과육과 즙을 넣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내는지 모른다.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코코넛 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디저트! 코코넛 커피와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먹어들 보셨는지? 코코넛 오일은 또 피부에 그렇게 좋단다. 다이어트 효과도 좋아 부담 없이 맛볼 수 있으니 말해 뭐할까.

이토록 맛있는 것들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나의 입 속엔 침이 가득 고여 있다. 태국이든 베트남이든 한달음에 달려가고픈 마음에 손가락이 드릉드릉한다. 이 흥분을 좀 진정시키기 위해 반대로 음식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을 더듬어보려 한다. 

아무래도 내 입맛은 상대적으로 아시아친화적인 모양이다. 음식 때문에 곤욕이었던 경험은 주로 유럽 국가들을 여행할 때 겪었던 걸 보면 말이다. 첫 유럽 여행이었던 프랑스에서 느꼈던 첫 문화 충격은 바로 ‘치즈’였다. 태어나서 접해본 치즈라곤 슬라이스 체다 치즈와 피자 위에 토핑된 모차렐라 치즈가 전부였던 난 어마어마한 치즈의 종류와 양, 생전 처음 느끼는 생경한 맛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시 내가 캠프 생활을 하던 프랑스 남부의 농장에서는 오후 티타임 때마다 6~7종류의 치즈를 전용 플레이트에 올려놓곤 했다. 다양한 치즈의 맛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때 나는 치즈의 깊은 맛을 알아보기에 너무 어렸다.

살짝 달착지근하고 고소하고 느끼한, 내가 아는 치즈의 맛과 유럽 본토에서 직접 만난 치즈는 너무 달랐다. 아니, 내가 알던 슬라이스 치즈는 여기선 아예 취급하지도 않았다.(그게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낸 가공식품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색깔도, 모양도, 식감도 생경한 유럽 치즈의 맛은 진하다 못해 쓰기까지 했다. 게다가 구린내는 또 뭐람. 다른 유럽 친구들은 너무 맛있다며 작은 치즈 조각을 바게트와 함께 우아하게 즐기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버터와 잼, 꿀 등 빵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건 치즈 외에도 많았으니까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세상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은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네.”



시간이 걸리는 맛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아보게 되는 맛 또한 있지 않든가. 치즈도 그랬던 것 같다. 쿰쿰한 맛이 일품인 고르곤졸라 치즈는 피자나 빵에 잘 어울린다. 쫀득하면서도 진한 카망베르 치즈는 와인 안주로 제격, 딱딱하고 고소한 에멘탈 치즈는 쿠키 위에 과일과 같이 올려먹으면 진짜 맛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그래, 역시 나이 탓이라기보다는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다양한 식사를 즐기다보니 맛을 깨치게 되었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얼마나 많은 요리사의 요리를 먹게 될까.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맛을 배우게 된다. 맛의 기억은 인생이 얼마나 다양한 맛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여행 가고 싶게 만들고, 어머니 집에 가고 싶게 만들고, 요리하고 싶게 만들고, 먼 곳에 있는 식당에 굳이 찾아가고 싶게 만든다. 우리가 새로운 맛을 받아들일 때 그 맛은 우릴 움직이게 한다. 생의 영역을 넓혀준다. 

망고를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을 느끼기 위해 태국에 가고 싶고, 갓 잡아 올린 송어 튀김과 따끈한 밥의 콤비네이션인 뚜루차를 먹기 위해 티티카카 호수에 가고 싶은 마음. 땀 흘리며 국물까지 싹 비우는 베트남 쌀국수, 번잡스러운 카오산의 밤거리 식당, 노천 식당에서 즐기는 팟타이, 길가에 선 채로 후루룩 마시다시피 흡입하는 타이페이의 곱창국수,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근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고등어 케밥의 감칠맛, 라오스에서 야간버스 타기 전 꼭 챙기던 반미 샌드위치도 가끔 눈물겹게 그립다. 아, 포르투갈의 문어밥과 스페인의 파에야도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유명 단골 메뉴이지 않은가. 음식만 나열해도 나는 밤을 지새우며 글을 쓸 수 있다. 

아 세상에는 맛있는 게 왜 이다지도 많은지! 미처 맛보지 못한 세계의 맛있는 것들을 상상하면 더 열심히 여행하고,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삶의 의욕이 샘솟는다. 다시, 침이 고인다. 


이전 09화 그곳에 사람이 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