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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May 11. 2019

엄마와 유럽 여행하기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엄마의 회갑 선물로 유럽여행을 약속했다. 변변한 해외여행 한번 못해본 엄마를 두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고삐가 풀린 듯 세계 곳곳을 누벼온 불효녀의 죄책감도 약간 작용했다. 평생 잊히지 않을,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여행을 선물해드리리라. 뻔한 패키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열어드리리라.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여행은 마음 같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여행은 없다

여행지는 이탈리아로 정했다. 사진만 봐도 알 만한 명소가 많은 나라여야 했다. 기간도 넉넉히 잡았다. 2주. 패키지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평생에 남을 모녀간의 특별한 여행을 패키지로 가다니 안될 말이었다. 

함께 여행지에 대해 알아보고 준비도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제천 시골집에서 농사하랴, 시어머니 봉양하랴 여전히 여러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엄마는 출국 전날에야 딸 집에 올라올 수 있었다. “난 다 좋아. 네가 알아서 해.” 사실 같이 준비할 게 뭐가 있겠나. 나만 믿고 따라오세요, 했다. 

로마에서 시작해 아시시를 거쳐 피렌체, 베네치아까지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거대한 로마 유적, 바티칸의 웅장함, 폼페이의 살아 숨 쉬는 화석들, 피사의 사탑, 피렌체의 두오모, 베네치아의 곤돌라... 이름만 들어도 절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곳들을 엄마와 손잡고 두루 둘러보고 마음껏 감탄하는 여행. 그러나 나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 크고 작은 트러블이 없을 수는 없다는 걸. 

첫 번째 문제는 내가 그리 믿을 만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물건을 질질 흘리고 다니기 일쑤고, 방향감각도 제로라 길에 잘못 들어서는 일도 잦다. 소매치기당할 뻔한 일도 가방을 뒤로 돌려 맨 나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다. 한 번은 열쇠를 현관문 밖에 그대로 꽂고 들어와 지나가던 사람이 문을 두드려 알려주기도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엄마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거였다. 여행하면서 무엇을 보고, 얼마큼 즐기고 좋아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거대한 콜로세움을 눈앞에 두고서도, 붓 터치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피카소, 몬드리안, 마그리트의 진품을 코앞에서 보면서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엄마는 알지 못했다.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냐.’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옆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지 엄마는 몰랐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사람 사는 것을 구경하고, 예쁜 것을 보면 감탄하고, 몰랐던 것에 호기심을 빛내고, 새로운 맛을 궁금해하고... 내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여행의 방식들이 왜 엄마에게도 통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 


딸이 엄마에 대해 아는 것

나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 생물학적으로는 거의 클론에 가까울 정도다. 나잇살이 붙은 걸 빼면 키와 몸집도 비슷하고, 당연히 얼굴도 닮았고, 잠귀가 어둡고,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며, 무던한 성격까지 꼭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엄마와 친하지 않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엄마는 알지 못한다. 내게 일어난 일상사를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게 영 어색하다. 경조사나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통화를 한다. 젖 뗄 무렵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기에 엄마와 같이 보낸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엄마는 인생의 대부분을 어른에게 순종하는 데 보냈다. 목소리 큰 남편, 서릿발 같은 시어머니와 지금도 같이 살고 있으니 말 다했지 뭐.

맏딸인 내게는 그런 엄마에 대한 연민이 있다. 60년간 책임과 의무에 얽매여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행복해져도 되지 않나 싶었다. 엄마의 인생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러나 엄마에게는 딸과의 유럽 여행조차도 의무의 일환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가자는 대로 최선을 다해 따라오지만, 거기까지였다. ‘됐지? 다 봤으면 가자’ 하고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한 끼에 5~6만 원짜리 이태리 음식이 차려져도 시골 밥상 앞에 앉은 것처럼 전투적으로 먹어치웠다. ‘맛대가리 없다’고 욕하면서도 꾸역꾸역 먹고 긴 트림을 10번 정도 해댔다. ‘아까우니까 먹어치우자. 맛대가리도 없네.’ 음식 앞에서 엄마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자주 엄마는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초식동물처럼 주위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엄마가 해야 할 일도 없고, 뭘 하든 누구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말만 하면 다 들어줄 경제력 갖춘 딸도 항상 붙어 있는데, 왜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좋은 풍경을 봐도 다리만 아프고, 시장이나 쇼핑몰을 가도 ‘안 살 거면 빨리 가자’고 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지루하기만 하고. 

나는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몰라 답답했다. 대체 엄마는 뭐가 좋아요? 엄마가 좋아하는 걸 알아야 내가 준비를 하지. 

엄마에게 말했다. 슬픈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겠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살면서 엄마가 뭔가를 욕망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60년의 삶. 그 대단한 관광지에 가서 기껏 한다는 말이, 이거 다 청소하려면 힘들겠다, 여기 나무는 왜 아직도 푸르냐. 엄마의 세계는 좁고 좁아서 나는 팔목 하나 들이밀 수가 없었다. 

     


그저 작은 쉼 뿐이라도

어쨌든 여행은 정해진 일정대로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나중에는 ‘괜히 2주씩이나 와가지고!’ 속으로 타박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엄마 표정이 너무 지쳐 보였다. 헤어질 때 엄마는 내게 고맙다, 수고했다고 얘기했다. 정작 난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했다. 즐거웠어, 행복했어.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한 장면이 떠오른다.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에 오를 때 엄마는 얼굴이 벌게져서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꼭대기에 도착해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는 순간, 엄마의 미소는 진짜였다. 어찌나 해맑게 웃던지. 엄마의 환한 미소를 본 것만으로도 됐다, 내가 받을 보상은 다 받았다 싶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건, 그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다시 의무만이 가득한 세계로 돌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마음 편해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딸과 단둘이 보냈던 유럽에서의 2주가 엄마의 고단한 삶 한가운데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작은 쉼표 정도는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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