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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May 08. 2018

오이지 도시락

어버이날 기념 황정은 작가의 소설「계속해보겠습니다」 감상문

2016. 굔료루


도시락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계속해보겠습니다」초반에 나오는 도시락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고, 때마침 요즘 도시락을 자주 접한다. 그래서 도시락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을 때 페이지 넘기는 순간보다 페이지를 접는 순간, 또는 두 손바닥으로 페이지를 지그시 누르는 일이 더 많았다. 특히 주인공들의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 이야기가 압권이었다.

도시락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주인공 3인의 소개가 불가피하다. 편이하게 주인공1(이하 주1)주인공2(이하 주2)주인공3(주3)으로 지칭하겠다.

‘주1’과 ‘주2’는 한 살 터울 친자매이고 ‘주3’은 ‘주1’,‘주2’가 각각 10살 12살 때 이사 온 집 옆방에 살고 있던 ‘주1’과 동갑인 남자이다.

그렇다면 이제 도시락 이야기를 설명할 차례.

‘주1,2’ 자매가 ‘주3’네 옆방으로 이사 오기 일 년 전, ‘주1,2’아버지는 근무지에서 끔찍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게 됐다. 이에 ‘주1,2’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잘 설명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기력을 잃고 인형 같은 표정으로 몇 시간이고 드러누워 지낼 때가 많다. 가끔이기는 했지만 혼자 외출을 해서 며칠이고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38쪽)”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엄마가 방안에 8,000원 두고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 일이 있었다. 두 자매는 그 돈으로 귤 20개를 담은 봉지 4개를 샀다. 이틀 만에 사온 귤을 다 먹었다. 그러한 상태로 이틀이 더 지난 후 ‘주1’은 방안 어딘가에서 묵어서 딱딱하게 굳은 인절미를 찾아냈다.

‘주1’은 떡을 전기밥솥에 넣어 쪘다. 그리고 나서 솥 바닥에 퍼진 떡을 숟가락으로 떠내어 설탕에 찍어먹었다. 그러자 옆방에 있던 ‘주3’의 엄마가 떡에서 나는 시큰한 냄새를 맡고는 두 자매에게 다가왔다.

‘주3’엄마는 둘에게 뭐 먹고 있는지 묻고, 자신도 한 입 먹어 보자며 떡을 입에 넣었다. 떡을 삼킨 후 그는 두 자매에게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40쪽)”며 말한 다음, 둘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밥을 먹였다.

이 날 이후 ‘주3’ 엄마는 매일 아침 이들의 도시락을 챙겨주었다. 20년 정도 지난 후 ‘주1’은 도시락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자신과 동생의 뼈를 키워준,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44쪽)”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의 분량은 6쪽이다. 이를 읽는 데 10분도 안 걸린다. 허나 이 부분을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까지 5배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이제 내가 기억하는 도시락을 소개해본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서야 급식을 경험했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점심을 도시락으로 먹었다. 말하고자 하는 도시락의 기억은 중학교 3학년 점심시간에 비롯한다.

당시 친구 서 너 명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었다. 집안에 일이 생겨서 며칠 동안 반찬을 오이지로만 싸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가운데 칸막이가 있어 두 종류의 반찬을 넣을 수 있던 반찬통 두 칸에 모두 오이지가 들어있던 것이다.

그렇게 사나흘 지났을까. 점심시간에 내가 반찬 뚜껑을 여니까 “아이씨, 나 이제 애랑 밥 안 먹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업시간에 누군가 뀐 방구냄새에 반응하는 것 마냥 그랬다. 솔직히 오이지에서 쉰내가 났긴 했다. 후각과 시각 미각이 총 동원되어 튀어 나온 반응이었다. 이런 기민한 반응을 보이며 오찬 퇴출을 선언한 인간은 개중에서 가장 큰 도시락을 가진 놈이었다.

전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일제 도시락. 보통 도시락 둘레가 아오리사과 정도였다면 걔 도시락은 배, ‘최상품 나주배’ 정도로 컸다. 점심시간 권력은 도시락 크기에 비례했던가. 덕분에 도시락 대한 기억은 오이지와 도시락왕의 발언이 가장 앞선다.

나는 급식 예찬론자다. 고등학교 입학해서 가장 좋았던 건 급식소가 있다는 것. 이는 점심시간에 매점에서 도너츠나 라면을 사먹지 않아도 되며, 교문 밖에 나가 하릴없이 떠돌지 않아도 되는 것과 다름없다.

소설 때문만이 아니라 근래 겪은 일에서도 도시락과 급식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2016년 4월20일, 뚜렷한 희비가 교차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쁜 일은 누나의 둘째 순산, 슬픈 일은 아버지 입원.

이에 다음날 초등학교 3학년인 큰 조카 등교 임무를 위임받았다. 임무 실행일 새벽 5시30분 경 엄마는 나를 깨워 안방에 들어가 조카 옆에서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출근길을 나섰다. 두 시간 후 조카와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했다. 옷가지와 학용품을 챙겨주면서 문득 도시락이 떠올랐다.

만약 급식이 없고, 조카의 도시락 싸줬어야 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루가 아닌 일주일 또는 한 달이었다면 과연 어떤 반찬을 싸줬을까.

중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일주일 내내 도시락 반찬으로 오이지만 싸주게 된 이유는 아버지 병간호와 병원비 때문이었다. 이런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유치원 다니고 누나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6개월 넘게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시기 엄마는 삼 일 동안 누나와 내게 삼시세끼를 라면만 먹였단다. 엄마는 이 기억을 말 할 때 항상 울었다.

현재 우리집은 먹는 거 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엄마가 건설현장 사무실 식당에서 직원들 식사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기에 남는 음식을 집에 가져와 매일 국과 반찬이 다른, 남부럽지 않은 밥을 먹으면서 지낸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 요리에 자긍심이 생겼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친인척 생일이나 병문안 갈 때 직접 만든 음식으로 선물을 하는 경우가 잦다.

지난 일요일에도 조리원에 들어가는 누나를 위해 도시락을 가장한 음식세트를 싸주었다. 누나 도시락을 챙겨준 다음날 아버지는 수술을 했다. 아버지 몸이 회복되면 엄마는 병문안 올 때마다 마른 반찬을 챙겨올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나흘째 아버지 수술 후 야간 병간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첫째 둘째 날은 엄마와 막차시간까지 입원실에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 1시 정도 됐다. 허기지지만 입맛도 별로고 차려먹기가 귀찮은 관계로 간편한 음식으로 속을 채웠다.

첫날은 기름에 튀긴 두부, 둘째 날은 컵라면과 인스턴트 스파게티. 엄마가 컵라면 국묵을 다 비워 갈 때쯤 내가 ‘오이지 반찬 사건’과 ‘3일3끼라면’일을 발설했다.

그에 엄마는 ‘오이지 반찬 사건’은 기억에 없다고 하면서 ‘이거 모함 아니냐는 투로 대답했다. ‘3일3끼라면’에 대해서는 나름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때 하도 먹어서 질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렇게 피곤할 때 라면을 먹으면 속이 풀린단다.

병간호 셋째 날. 내게 부과된 병간호 시간은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 이에 친구들이 밤 12시 넘어 병원을 방문했다. 출출하여 다 같이 근처 버거킹을 향했다. 주문하면서 친구들은 자신들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누구는 원래 가장 기본 메뉴가 젤 맛있는 법이라 하면서 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클래식 버거를 먹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파했다.

누구는 가장 최근 버거가 남다르고 행사 상품이 있다면서 굳이 행사 상품 광고판 옆에 서있었다. 또 할인쿠폰이 있다면서 그걸 자랑했다. 허나 지 혼자밖에 못 쓰는 거였다.

그리고 자칭 이태리 입맛을 자랑하는 인간은 가장 먼저 독단적으로 저만의 베스트 버거를 주문했는데 잘못시켜서 하나 또 사먹었다. 그러면서 자기 아는 사람은 와퍼버거를 5개까지 먹는다면서 별안간 인맥 자랑을 했다.

병간호 넷째 날. 아침에 병간호 교대자인 큰아버지가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왔다. 휴게실아래 식당보다 이게 자신 식성에 잘 맞다한다. 가격대비 양과 질이 안성맞춤이란다. 반면 아래 식당의 음식은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다하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늦은 저녁 큰아버지와 교대. 병실에서 잠을 이루는 게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어제부터 이렇게 도시락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내고 있다.

도시락에 대해 쓰다 보니 냉큼 지나가길 바랬던 병실의 시간이 쓰여 지는 시간으로 변하였다. 목이 하도 결려서 병실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그러니까 솔솔 잠이 쏟아졌다.

해가 밝았다. 병원 지하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 하나를 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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