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시작
나는 오늘도 구직 중이다.
40대의 구직은
소리 없는 메아리 같다.
분명 크게 외쳤는데,
돌아오는 건 고요함뿐이다.
기다림은 길어지고,
마음엔 조용한 포기가 내려앉는다.
구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알바보다 정규직을 바라는 건
당장의 수입이 아니라
조금 더 오래 설 수 있는 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구직을 시작하게 된 건 아내의 서울행 이후였다.
아내는 서울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나는 제주에 남았다.
아내는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오빠가 알아서 해야 해.”
그리고 통장에 딱 200만 원만 남기고
진짜로 떠났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통장은 진심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이건 단순히 돈을 벌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나 혼자 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넌 아직 괜찮은 사람일까?”
“할 수 있다는 걸, 너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사실, 한 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 번쯤은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쥐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다.
10년 동안 다녔던 안정적인 직장을.
마치 군대 전역처럼,
홀가분하게 나왔다.
두 번째 인생은 꽃길일 줄 알았다.
그땐 내가 사회를 ‘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믿던 쪽에 없었다.
계획 없이 시작한 사업은
처음엔 그럴싸했지만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수습은커녕 더 망가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이불 속에서 하루 종일
나오고 싶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땐 몰랐다.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꿈 같은 나날이었다는 걸.
작지만 안정된 수입,
마감이 있는 하루,
따뜻한 점심시간.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것을 사치처럼 느낀다.
예전엔 어깨에 힘 좀 줬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나를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라떼는 말이야’조차
꺼내기 조심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지금 내가 구직 중이라는 건,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회복하고 싶어서다.
한때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끝내 덮어버리는 게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이력서를 쓴다.
면접 메일을 기다린다.
혹시나 모를 연락 한 통에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어본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나이에 왜 이걸 하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아무것도 못 할 거란 걸.
내 구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살아 있기 위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