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목격자

화이트박스 안에 남겨진 문장

by 피터팬


2017년 6월 20일, 18시 08분 / J-S4 지하 중계소 내부


모니터는 꺼졌고,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화면이 있었던 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핀은 무전기를 들어 루카를 불렀다.

응답은 없었다.


다시 한 번. 정적.


“...안 받아.”


아이의 말이었다.

핀은 눈을 감고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생겼어.”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저장 디스크 하나를 주웠다.

방금 재생되던 영상의 원본이었다.

그 옆에는 손글씨로 된 메모 한 장이 함께 있었다.


“4번 창고 2층 백업실.

이 영상의 풀버전이 거기에 있다.

마지막 선택은, 진짜를 본 너희에게 맡긴다.”


핀은 아이를 바라봤다.


“갈 수 있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래. 나... 이제, 도망 안 가.”


2017년 6월 20일, 18시 15분 / SC-0, 상층 상황실


루카의 신호가 끊긴 이후, SC-0 내부는 뒤집혀 있었다.

보안 담당자들은 4번 창고의 라우트 변경 시도를 추적하고 있었고,

분석팀은 화이트박스 사용 로그를 되짚고 있었다.


C1은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문서들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각 문서엔 ‘화이트박스 동기화 기록’, ‘L-17 감지 시간대’, ‘송출 추정 경로’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B3가 말했다.


“이제 움직일 차례입니다.

우린 그 아이를 지켜봐야 합니다.”


C1은 고개를 들었다.


“지켜본다고?”


“...그날 이후, 우리는 단 한 명의 생존자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송출을 목격했고, 루카와 핀까지 만났습니다.

지금은 지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C1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뭘 하자는 거지?”


B3는 말을 이었다.


“이제, ‘지운다’가 아니라,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2017년 6월 20일, 18시 21분 / 서울 외곽, 4번 창고 후문 진입로


핀과 아이는 작은 승합차의 뒷좌석에 숨어 있었다.

차량은 루카가 미리 남겨둔 대기 이동 수단이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목적지 좌표는 자동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차량이 출발하자, 뒷좌석의 스크린에 루카의 영상 메시지가 떴다.


“이걸 보는 순간, 나는 이미 그곳에 없어.

그리고 너희가 향하는 곳에는,

화이트팀의 흔적과 또 다른 목격자가 기다리고 있어.”


영상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핀, 넌 이제 증인을 넘기는 자가 아니라,

진실을 시작하는 사람이야.”


아이는 그 메시지를 들으며 물었다.


“...우리가, 끝내는 거예요?”


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우린... 시작하려는 거야.”


2017년 6월 20일, 18시 30분 / 서울 외곽, 4번 창고 2층


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꺼져 있는 백업 서버 하나와 작은 노트북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핀은 디스크를 장착했다.

파일 목록이 뜨고, 영상 재생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되지 않은 전체 기록이었다.


RJ-88A 탑승 직전

아이의 보호자였던 여성, 그의 이모가 서명하던 장면

탑승 직후, 화이트박스 내부에서 시뮬레이션 대상 명단을 확인하는 요원들

추락 3분 전, 조종석에 전달되는 사살 코드와 그걸 반려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충격 후.

아이를 구조하려다 정리조에게 막히는 장면.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울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클로즈업된다.


영상이 끝났을 때

핀과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처음으로 스스로 말했다.


“이제, 보여줄 수 있어요.”


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세상이, 이걸 외면하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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