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속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피터팬


2017년 6월 20일, 19시 12분 / 서울 시내 – SNS 서버 하위 라우터


스크린이 점멸하듯 켜졌다.

잠시 후, RJ-88A 사고 당시의 영상이 SNS 서브도메인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몇 블로그 계정, 트위터 비공개 계정에만 노출되었지만

그 다음은 순식간이었다.


#RJ88A #화이트박스 #삭제된기록 #살아남은아이


수천 개의 해시태그가 동시에 생성되며,

사건은 단순한 유출이 아니라 제보자 내부고발로 전환되었다.


2017년 6월 20일, 19시 20분 / 뉴스 데스크 편집국


피곤한 얼굴의 기자 하나가 조용히 영상을 재생하다가, 손을 멈췄다.

그녀는 화면을 확대하고, 다시 정지시켰다.


한 아이.

그 앞에 멈춘, 총을 든 요원.


“이건... 명령을 거부한 장면이야.”

“명백하게, 사살 명령이 존재했고... 누군가는 그걸 멈춘 거야.”


그녀는 주저 없이 파일을 전송했다.

편집이 아닌, 전체 그대로.

‘검증되지 않은 목격자의 주장’이 아닌,

‘기록된 진실’로.


같은 시각 / SC-0 내부 – 전원 셧다운 직전


“확산을 막을 수 없습니다!”


보조요원들의 외침 속에서, C1은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오래된 철제 서랍을 열어 어떤 폴더를 꺼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정리된 사람들’의 명단과,

삭제되지 않은 몇 개의 이름이 있었다.


그중 하나.

핀.


그리고 또 하나.

루카.


C1은 조용히 말했다.


“처음부터, 내부에 있었군.”


뒤이어 들려온 명령은 짧았다.


“SC-0, 폐쇄. 전 인원 철수.”


하지만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벽면 스크린에 떠오른 한 줄 로그가 있었다.


"Whitebox Ex: 001-Frame Verified / Global Indexing Initiated"


2017년 6월 20일, 19시 34분 / 어느 다큐멘터리 방송사 – 부편집실


루카는 후드를 벗은 채 앉아 있었다.

책상 위, 아이가 그린 그림 한 장.

왼쪽에는 비행기, 오른쪽에는 사람들.


그 가운데, 작게 쓰인 문장 하나.


“나 진짜로 있었어요.”


루카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아무도 믿지 않았어.

하지만 이 아이는 기억했고, 보여줬지.”


뒤에서 편집자가 물었다.


“지금 이걸 내보내면... 당신도 끝납니다.”


루카는 잠시 웃었다.


“그래도, 이제는 시작이지.”


2017년 6월 20일, 20시 10분 / 강원도 양양 – 민간 레이더 부지 외곽


차량 하나가 천천히 멈췄다.

아이와 핀, 그리고 루카가 내렸다.

바람이 불고, 하늘에는 별 하나가 뜨기 시작했다.


핀은 손에 든 USB를 꺼내 루카에게 넘겼다.

“이건 너한테 맡길게.”


루카는 묻지 않았다.

대신,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넌 어떤 기억이 제일 또렷하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를 안고 도망치던, 그 손.”


“그게 누구였는진 몰라도

그 손이 따뜻했어요.”


2017년 6월 20일, 20시 42분 / SNS 실시간 트렌드


‘그날의 속도’, ‘화이트박스’, ‘아이의 증언’, ‘삭제된 진실’

그리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붙잡지 않으면, 사라지는 척할 뿐이야.”


— 루카의 송출 로그 마지막 문장


3명의 뒷모습.

제주의 높은 절벽 아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손을 맞잡은 아이, 침묵하는 핀, 하늘을 올려다보는 루카.

그날의 속도는, 지금도 기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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