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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전의기량 Jan 31. 2022

미련 곰탱이

고집불통 엄마의 어른 연습




남편 : 설날에 올라올 거지?

나 : 우리 집엔 언제 가고?


남편과 전화통화 중 남편이 묻는다.

남편은 일반 직장인과는 다르게 3교대 근무 스케줄이라 명절 연휴도 근무하는 날이 많다.  결혼 한 부부의 의례 명절이라 하면  시댁에 갔다 친정에 가서  덕담도 나누고 식사도 하고 오지만  나는 명절에 한 번도 친정에 제때 찾아간 적 없었던 지난 10년, 엄마가  뇌경색에 치매로 아프고 난 후부턴 더욱 명절 때만 되면 마음이 쓰리다.


전화통화를 끝나고 남편은 버스 예약 스케줄을 보낸다.

시댁: 1-29일 서울 출발~ 1-31일 서울 도착

2-1일은 엄마 만나러 가기.

나는 남편이 버스를 예매했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설날 전에 올라간다 하면 서운해하실 수 있으니  당연히 전후 사정을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29일 오후 5시 도착.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 모두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비닐하우스에 시금치 심으셔서 수확해 농협에 판매하시는 아버님을 도와 온 가족이 판매를 위해 자루에 시금치를 담았다. 한 봉지에 2,000원에 판매하시는데 드는 수수료 10%,  많은 양을 수확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해 인건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인건비 떼고 수수료 떼고 하면 남는 것이 없으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하나의 시금치를 사수해야만 했다.



시금치를 일부 담고 집으로 온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로 드리고   판매를 위해 시금치 다금기는 10시까지 계속되었다.  시금치를 다듬으며  중국에 계신  도련님 께도 어머니가 전화를 하신다. 코로나 때문에 명절에 귀국을 한들 2주 격리라 귀국했다 바로 중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도련님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이후부터 맘 편히 한국에 나오지 못하고 계신다.


도련님: 형 언제가?

남편: 모레.

도련님: 설이 언제지?

남편: 모레 아니야!


한참 도련님과 통화하시고 전화를 남편을 바꿔줬는데

정확하게 전부 기억이 남지 않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거랑 남편 이야기가 다르다.  남편이 이야기를 안 한 거 같기도 하고  만약 그랬다면 분명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시아버지 : 너 오늘 간다고? 명절에 차례도 안 지내고 올라간다고? 너 놀러 온 것도 아니고 너 시댁을 무시하는 거 아니니? 며느리가  시댁에 온다는 건 책임을 다하러 온다는 거 아니니?


시어머니: 작은 아들이 온 것도 아니고  큰 아들이  집에 왔다가  명절에 차례도 안 지내고 간다면 시아버지 입장에서는 서운하지 않겠니?

너만 가던지, 딸 데리고 가던지 하면 되지 꼭 다 같이 가야겠어?

나 :  엄마도 다 같이 오는 걸 좋아하지. 저만 가는 거 안 좋아해요. 어머니,  그리고 저 남편 스케줄 따라 명절에 여기 오느라고 친정에 제때 간 적 없어요.


시어머니 :  뭐, 제때 안가? 네 엄마 아프고 명절에 엄마 보러 갔잖아. 그때 내가 너 책임 안 한다고 뭐라 하기를 했니? 나는 시집와서 한번 시어른 얼굴도 모르는데 제사 한 번도 안 빼먹고  다 차렸어. 여자가 시집왔으면  책임을 다해야지. 가고 싶으면 가. 뭐라 안 해.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시아버지께서 버럭 화를 내셨다.  시아버지께서 화내시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봤을 때  내 짐작이 맞았던 것이다.


못되고 철없는 나도 자식인데.....


번번이 , 명절에는 남편 스케줄 맞춰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한 것이  결국 엄마가 아파서 쓰러지고 난 다음에야 명절에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엄마를 동생이 잘 보살펴 줘서 걷지도 못했던 엄마가 이제는  보행기 같은 것을 밀며 다니기 시작했다.    나 결혼하고 10년 명절에 괜찮다 말했지만 외롭게 보낸  엄마  아픈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도   나한테 말한다.내가 호떡장사하면  너한테 돈 보태주게.




동생도  명절 당일에만 쉰다고 하고 남편  근무 스케줄이 2-1일까지 휴무가 가능하다고 해서  31일에는 서울로 가기로 했던 것이라  시부모님이  서운해하실 수 있는 마음도 이해가 되기 때문에 시금치를 수확해 다금기부터 명절 음식 만들고 청소까지 몸이 부서져라 더욱이 더 열심히 일했다.  




미련 곰탱이랑은 못 살겠다.

이래저래 회사에서 신경 쓰는 것이 많은 남편은 집에 와서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10살 아이 앞에 두고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완벽할 수 없기에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썩 편치 않은 것 같다.  서로 각기 다른 인생을 살다  만나 결혼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며 아이를 낳았지만  점점 더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왜일까?


시어머니 :  결혼해서 안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니?

그런데 가만 보면 네가 속이 좁은 거 같아.

안 살 거면 모르겠는데  한  사람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살아야지.


집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짐 정리를 하면서 남편에게 갈아입을 옷이랑 속옷을 입으라고 주었다.  며칠째 입어서 먼지도 많이 묻었으니  갈아입으라고 준 것인데 집에 가서 입는다 하며 언성 높이는 것을 시어머니께서 들으셨다.   내가 생각했을 땐  남편은 오늘 아침  판매를 시금치 다금으며 시부모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방에서 잔다면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한숨만 푹푹 쉬면서 언성 높이는 아들을 보니 시어머니께서는 나 붙잡고 이야기하시는데 어쩌면 시어머니 입장에서 당연한 것을  말씀하셨는데  눈가에 눈물이 가득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또  마음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조금만  서로를 이해해 줬다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태어나서 언젠가 땅속에 묻히지만 건강할 때는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모른다. 아파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 또한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흘려보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모든 상황을 만족시킬 수 없다.


남편의 말처럼  내가 누구도 구제하지 못한 미련 곰탱이라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  과연 무엇이 최선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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