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전의기량 Feb 06. 2022

눈치 없는 먹구탱이

고집불통 엄마의 어른 연습





시어머니 :  엄마 만나러  애 아빠랑 같이 갔니?

나:  아니요. 어머니가 아침에 보내 주신 사진 보더니~  한숨 푹푹 쉬다가 맘 상했는지 안 간다 그러더라고요.

시어머니:  사진? 아. 내가 차례 지내는 사진 보냈는데

그게 아니라? 너네 어제 또 싸운 거 아니야?


나:  아니에요. 피곤해서 말할 틈도 없이 잤어요.

어제 그러고 올라온 아들한테 그 사진을 보내신 이유가 저는 어머니가 우리 살라고 하시는 것인지 그만 살라고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엄마가 결혼할 때 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먹 구탱이라 얘기하셨잖아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어머니 성에는 차지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마흔 넘어 이제 철든다고  진즉 잘하고 살았어야 했는데요.  10년을 귀 안 좋고 유방암 수술한 사람이라 이 집에 시집와서 죄인처럼 살았었습니다. 


시어머니 :  울지 마. 아이 앞에서 엄마가 울면 되겠니. 나는 너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모르고  아버지가  차례 사진 자식들에게 보내 주는 거 어떻냐고 해서 보내 줬어. 그것 때문에 그랬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어느 부모가 자식 낳고 사는 며느리랑 아들이 이혼하기를 바라겠니,  다만 부모로서  싸우지 말고 서로 잘 맞추고 살기 바라는 거지.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달라서 돈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밥만 먹고사는 사람이 있겠지.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너네는 밥은 먹고살잖아.  친정엄마가 얘기했듯이 나는 네가 명절에 와서 내가 하는 거 보고 눈으로 배우기를 바랐던 거야. 내 나이가 73살인데 얼마나 할 수 있겠니? 내가 없으면 네가 해야 하는데 내가 널 미워서 그랬겠니.


설 명절 끝나면 우리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살자. 서로 먹고살기 바쁘다고 소원하게 살았어서  모르고 살았던 거 아니었나 싶다.  네가 그렇게 서럽게 울면 내 마음도 안 좋다. 엄마한테 가서는 울었던 거 티 내지 말고 웃으면서 잘 갔다 와.  설 명절 끝나고 보자.

나:  네.


엄마 만나러  아이와 함께 동생집 가는 길목에 서서 하는 시어머니와 전화통화 속상한 마음에 목 놓아 운다.






남편 :  아빠는 못 가겠다. 엄마랑 갔다 와.

나:  못 가는데, 당신도 남편이기 전에 사위노릇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 :  사위 안 하련다.


시댁에서 올라온 다음 날,  잠만보 부녀에게 아침을 먹일까도 생각했지만 약속 시간에 맞추어 엄마를 만나러 간다면 이른 점심을 먹을 수 있기에 잠을 더 자게끔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을 많이 재웠는데도 아이의 잠투정이 나를 고되게 한다. 시간이 다 되어 갈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남편이 목젖 깊은 한숨 소리가 집안을 진동하게 한다.  


작지 않은 말투로 서로의 감정이 격해져 조용히 기다리려는데 남편에게 온 카톡

: 아침 차례상 사진

어제  장남이  차례를 못 지내고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상하신 부모님께서 보내신 차례상 사진이라 남편 입장에서는 더욱 마음이 안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또 한 번 남편 마음을 칼로 찌르듯 쑤셔대고 말았다.






귀가 안 좋은 아이,
28살 첫 번째 유방암 수술


늘 미안해했던 엄마

남편을 만난 지 6개월쯤 됐던 어느 날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얘기했다.  당장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만나게 했던 엄마는  만나보니 예의 바르고 나를 배려해 주는 마음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남편이었기에 결혼시키려고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셨었다.

만나는 날을 정하고  우리가 갑자기 일이 생겨 같이 못 내려감에도 혼자 시댁에 내려가셔서 결혼을 매듭지고 올라오신 엄마였기에 우리의 결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었다.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고 했지만 순탄치만은 못했던 결혼생활은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순항 중이다.

치매로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 엄마는 아직도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건강했다면  무언가 상황이 달라졌을까? 엄마는 외고집에 아프기까지 한 내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너라면 함께 살아도 될 것 같았어.


아픈 아이와의 결혼.

12년 전, 나와 왜 결혼하려 했는지 물었더니 무성한 듯 말해 줬던 남편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었다. 그 말 한다디는 결혼 생활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같이 사는 남편이 알고 있었고 남편이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색을 하지 않고 숨기려 하면 할수록 감취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의 골만 크게 벌어지게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 번은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였으니 주변 관광을 하는데  비가 오는 것이었다.  빗줄기는 점점 세지고  비와 습기에 약한 기계를 귀에 착용하고 있는 나는 관광이 불편해서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내가 안중에 없었다. 나는  귀에 착용하고 있는 기계를 한번 새로 바꿔 주게 되면 300~500은 필요하니 웬만하면  비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남편이  내 상태를 알아서 우산을 구해주기 바랐지만 상황이 허락되지 않아 우산을 못 구했고 불가피하게 비에 노출된 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 얼굴을 유심히 보고 계셨던 시어머니께서 어디 불편하냐고 물어보셨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서로의 안 좋은 감정만 쌓이게 했던 것이었다.




임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댁에서는 아이를 기다리셨었다.   기다린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방암 수술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호르몬 약을 먹게 되면   아이를 가지는 것도 쉽지 않다.  시댁 어른들이 볼 때마다 아이에 대한 말씀 하셨었는데  네.라는 말만 할 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심해지고 조바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남편과 싸우는 날도 많았었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리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면  긴 기다림이  조금이나마 짧아지지

않았을까?





아팠던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마음을 감추려 할수록  
네 마음만 아프게 할 뿐이야.


아빠에게 맞아 귀가 안 좋아진 것도 28살 첫 번째 유방암 수술을 했던 것도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일어났던 것뿐이지  자책할 일도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픔을  감추려 고군분투하면 할수록 다치는 건 결국 자신뿐이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100세 인생 남은 60년 길다면 길 수도 있겠지만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자신 먼저 스스로가 챙겼을 때 같은 상황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달라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련 곰탱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