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한 박스에 담긴 시부모님의 사랑

by 행복수집가

나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쌀을 직접 사본 적이 없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님이 늘 쌀을 주시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친정 부모님도 내가 결혼한 뒤로는 쌀을 사신 적이 없다. 시댁에서 친정에도 쌀을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시댁의 며느리이니까,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시댁에 들러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는다. 그럴 때면 쌀 외에도 이것저것 먹을거리들을 자주 얻어 온다.


그런데 우리 친정 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왕래도 없다. 하지만 아버님은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쌀을 택배로 친정에 보내주신다. 그 덕분에 두 집은 자연스레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신다.

우리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 누구도 요청하거나 바란 적도 없다. 그런데도 아버님은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꾸준히 친정에 쌀을 보내주셨다.


친정 엄마 말로는, 쌀이 떨어질 때쯤 되면 꼭 맞춰서 쌀이 도착한다고 했다. 아마 달력에 날짜를 체크해 두고 보내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딱 맞춰 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쌀은 무게가 많이 나가 배송비도 적지 않다.

보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 너무 수고하시는 것 같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쩜 그렇게 매번 보내세요, 대단하세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말씀드리면, 아버님은 늘 투박하게 짧은 한마디로 답하셨다.


"아, 농사하니까 주지."


그렇게 가볍게 말씀하시지만, 그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쌀을 포대에 담고, 배송하고, 부치고, 날짜를 챙기는 일. 이 모든 과정에는 정성이 담겨있다. 아주 깊고 묵직한 정성이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사돈댁으로부터 쌀이나 다른 걸 받을 때마다 꼭 전화를 드려 감사 인사를 전하신다.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친정부모님은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명절 때마다 비싼 과일 한 박스를 보내고, 손재주 좋은 친정엄마가 손수 만든 가방이나 수세미, 직접 그린 그림 등을 선물로 드리곤 하셨다.


친정아빠는 건빵을 좋아하셔서, 늘 건빵을 박스째 사두고 드시는데, 아버님이 군것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건빵 한 박스를 보내드린 적도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친정과 시댁 사이에 어떤 것들이, 얼마나 오갔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여러 가지 마음이 오간 건 분명하다.


양가 어르신들은 그렇게, 서로가 줄 수 있는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신다. 그 덕분에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신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흐뭇해진다.




얼마 전에는 친정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시댁에서 고구마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는 안 보내 주시고, 엄마 집에 보내주셨네? 나도 고구마 좋아하는데~"


엄마는 내 말을 들은 다음 날, 시댁에서 받은 고구마를 박스에 담아 우리 집에 갖다주셨다. 엄마는 딸이 고구마를 좋아한다는 말에 냉큼 가져다주셨다. 그것도 아주 한가득.


나는 신나게 고구마를 받아 들고 그날 바로 군고구마를 만들어 먹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정말 맛있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사 먹은 고구마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달고 크기도 컸다. 먹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구마를 너무 맛있게 먹다 보니 어머님 생각이 났다.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를 친정에 보내주신 게 고맙기도 하고, 다음에 가면 고구마를 조금 얻어와야겠다는 소소한 마음도 들었다.


어머님께 전화로 친정에 보내주신 고구마를 저도 받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님은 내가 고구마를 잘 먹었다는 말에 "고구마를 좋아해? 잘 먹어?"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웃으며 "네! 우리 집 식구 다 고구마 좋아해요. 오늘 오빠도 고구마 4개나 먹었어요~! 수지도 잘 먹구요!" 하고 말했다.


어머님은 조금 놀라시며 "정ㅇ(남편이름) 이는 어릴 때 고구마를 안 먹었는데? 난 너희가 고구마 안 먹는 줄 알았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도 고구마를 보내주겠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어머님께 전화하면서 '우리도 고구마 먹고 싶어용' 하는 마음이 살짝 있었는데, 이렇게 바로 보내주신다고 하실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다.


난 어머님댁 고구마 정말 최고라며 애교 섞인 말투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주소를 메시지로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집 앞에 고구마 한 박스가 도착했다. 박스는 보기만 해도 묵직해 보였고, 직접 들어보니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박스를 열자, 고구마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우와! 진짜 많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곧이어 '이걸 언제 다 먹지?' 하는 생각도 스쳤다.


박스 가득 담긴 고구마에는 시부모님의 정성과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고구마를 바라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고구마를 받은 그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고구마 잘 받았어요! 너무 많던데요?"

"허허, 집에도 많이 있다. 많이 무라."

"네, 잘 먹을게요! 아버님 댁 고구마 정말 맛있어요!"

"허허. 그래. 많이 무라."

"네 감사합니다~!"

"허허, 그래~"


아버님의 ”많이 무라."는 그 한마디 속에서 다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아버님이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뚝뚝한 말투의 아버님이지만, 목소리에서 분명 다정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우리 집은 고구마 부자다. 친정에서 갖다 준 시댁표 고구마 한 박스, 그리고 시댁에서 우리 집으로 직접 보내준 고구마 한 박스.


이렇게 총 두 박스의 고구마가 우리 집 한 자리를 든든하게 채우고 있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는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이번 겨울은 고구마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것 같다.


뭐라도 더 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언제나 넘치고 넘친다. 더 못줘서 아쉽지, 더 줘서 아까운 건 없다.


나는 4명의 부모님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참 행복한 딸이고, 며느리다.


이제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양가 부모님들이 생각 날 것 같다. 조만간 시댁에 가서 함께 고구마를 나눠 먹어야겠다. 맛있다고, 정말 최고라고 조금 더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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