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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May 07. 2024

친정아빠랑 아이 어린이날 선물 사러 간 날

다정하고 사랑많은 할아버지가 된 아빠

이번 어린이날에 친정 아빠가 수지 선물을 사준다고 하셔서 쇼핑몰에 다녀왔다. 우리는 수지 옷을 사기로 하고 옷 매장으로 들어갔다. 벌써 취향이 뚜렷한 수지는 뭔가를 사러 가면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잘 골라낸다. 이번에도 슥 한번 둘러보니, 마음에 드는 멜빵청치마를 골랐다. 한참 멋 부리는 5살 꼬마 아가씨는 요즘 청치마에 푹 빠져있다.


귀여운 청치마를 하나 사서 이제 수지 선물은 이걸로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신발도 사러 가자고 하셨다. 애들 신발이 생각보다 꽤 비싸서, 나는 아빠가 옷도 사주셨는데 신발은 내가 사주겠다고 하니 아니라며 신발 사 줄 거라고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얼떨결에 신발 매장으로 갔다.


첫 번째로 간 신발 매장엔 운동화만 있는 곳이었는데, 수지는 한번 둘러보더니 자기는 구두가 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구두를 파는 매장으로 갔더니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구두가 가득했다. 수지는 눈을 반짝이며 구두를 꼼꼼히 하나하나 다 살펴봤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서 마음에 드는 구두를 하나 골랐다. 알록달록 불빛 나는 빨간 백설공주 구두였다. 그 구두는 내가 봐도 ‘수지한테 참 잘 어울리겠구나’ 싶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찾아내는 아이가 신기하고 귀엽다.


수지 발 사이즈에 맞는 구두를 받아서 신어보니 잘 맞았다. 새 구두가 마음에 든 수지는 구두를 신고 매장을 나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수지는 귀여운 꼬마 공주님이었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불빛이 나는 신발이어서 일부러 불빛을 보려고 콩콩 뛰며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신나서 춤추듯이 걷는 아이를 보며 아빠도 흐뭇해하셨다.




이제 아이 선물 쇼핑은 다 했고 커피 마시며 잠시 쉬려고 카페에 갔다.  커피는 내가 사려고 했는데 카운터에 내가 주문을 하는 사이 아빠가 직원 앞에 손을 쭉 뻗어 카드를 건네며 “이걸로 계산하소.”라고 했다. 그 순간 내가 “아빠 이건 내가 살 건데~!”라고 했지만 이미 카드는 직원 손에 들려 있었고, 아빠는 이걸로 계산하라고 했다. 직원은 씨익 웃더니 아빠가 준 카드로 계산을 했다.

 

아빠는 오늘 아낌없이 돈을 쓰셨다. 아까워하는 기색 없이, 더 살 수 있으면 더 사줄 것처럼 하셨다. 옷과 신발도 샀는데 지나다가 이쁜 아이 원피스를 보고 “이것도 참 이쁘네. 이거도 살까?”라고 해서 내가 아니라며 말리고, 여성복 매장에 진열된 옷을 보고 내가 “와, 이쁘네”라고 한마디 하니 아빠가 내 옷도 사라고 해서 아니라고 얼른 지나갔다.


손녀에게 선물을 사주며 기뻐하고, 더 사주고 싶어 하는 아빠를 보며 진짜 그저 사랑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와 수지와 나, 이렇게 셋이 쇼핑을 간 건 처음이었는데 수지 손을 잡고 같이 걷고 있는 우리 셋이 왠지 뭉클했다.


‘내가 수지만큼 작았을 적에도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다녔겠구나. 지금은 그 작았던 아이가 이만큼 커서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의 엄마가 되었구나. 그 사이 내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다정하고 사랑 많은 할아버지가 된 아빠가 참 좋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수지도 젤리 하나를 사서 먹었다.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서 각자 시킨 걸 먹으며 잠시 휴식했다. 수지는 젤리 한입 먹고 자기 이만큼 먹었다며 자랑하고, 또 한입 먹고 자랑하길 반복했다. 아빠는 그런 수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녀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은 참 다정했다. 난 그런 아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빠 얼굴을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니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주름도 보이고, 세월을 먹은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한 아빠는 나이 65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일을 쉬지 않고 하고 계신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삼 남매의 아빠로 열심히 산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 흔적을 보며 마음 한편이 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 마음이 들었다.


손녀와 같이 있는 아빠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평생을 일만 하며 고생한 아빠에게 내가 다른 특별한 것을 해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 잘 한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이쁜 손녀를 낳은 것이다. 이 손녀가 할아버지를 항상 웃게 한다. 손녀와 있는 아빠의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이 웃음이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까.


어쨌든 지금 이 순간
아빠가 행복하다는 것, 웃고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의 이 웃음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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