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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Jun 05. 2024

리조트에 아이의 애착이불을 놓고 왔다

뭐든 버릴 경험은 없다

짧았지만 충분히 힐링했던 1박 2일 여행을 마무리하며 체크아웃을 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다음번에 거제를 오면 2박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좋았지만 더 길게 있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여행은 다음을 기약하게 한다. ‘한번 와봤으니 됐다’ 하는 것보다 ‘다음에 또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 ‘이번 여행이 나에게 좋았구나’ 하는 마음에 왠지 더 흐뭇하다.


이렇게 좋은 마음과 추억을 안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난 여행을 다녀오면 캐리어 짐을 바로 정리하는 성격이라 오자마자 짐 정리부터 했다. 짐정리를 다 하고 맘 편하게 씻으려고 하는데 수지가 “엄마 내 딸기이불은?” 하고 물었다.


딸기이불은 수지가 신생아 때부터 덮었던 애착 이불이다. 5살이 된 지금까지도 손에서 딸기이불을 놓지 않고 항상 들고 다닌다. 잘 때는 물론이고 뭘 하든지 항상 옆에 둔다. 딸기이불은 수지의 유일한 애착물건이다. 말이 트이고 난 이후는 ‘내 사랑 딸기이불’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아끼고 챙기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딸기이불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지야 거기 없어? 수지가 안 들고 있었어?” 하며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딸기이불이 집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체크아웃하기 전에 짐정리를 하다가 수지가 아침부터 들고 다닌 딸기이불을 호텔 방 침대 이불속에 넣어둔 게 떠올랐다.


수지의 사랑하는 딸기이불을 호텔에 놓고 온 것이다!


이제껏 아이와 같이 여행을 갈 때 딸기이불을 항상 들고 다녔고 집으로 올 때는 제일 먼저 챙긴 게 딸기이불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 세 명 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 중요한 딸기이불을 까맣게 잊었다.


수지에게 딸기이불을 호텔에 놔두고 왔다고 하자 수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이를 어쩌나 큰일 났다 싶었다. 아이는 울기 직전이고 딸기이불을 계속 찾았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이라면 다 알 거다. 아이의 애착 물건을 잃어버리는 순간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나와 남편은 일단 똑같은 걸 구매할 수 있을까 싶어서 바로 검색해 봤다. 이 딸기이불은 카카오톡으로 선물 받은 거라 선물 받은 내역에 들어가서 구매처와 상품명을 확인했다.

밍크뮤 체리봉봉뱀부담요


그런데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품절됐고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상품이었다. 비슷한 거라도 찾아봤으나 수지는 단호하게 딸기이불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하긴 5년 동안 매일 만지고 덮고 자고 하며 아이의 채취가 묻은 이불을 어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겠나. 딸기이불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면서 ‘딸기 이불 냄새 좋아’ 라고 말하며 자기만 느낄 수 있는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는 아이의 애착이불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순 없었다.


우리 부부는 지금 이 딸기이불을 당장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제야 리조트에 전화해서 물어봤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불을 놓고 왔는데 혹시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니 이불을 발견하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찾게 되면 착불택배로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다행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찾았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물건을 놓고 와서 호텔에 문의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짐정리는 꽤 꼼꼼하게 하는 편이라 특별한 걸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놓고 오는 첫 경험을 해보았다.


그래도 경험해보니 물건을 놓고 왔을 땐 호텔에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고 착불 택배로 보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는 물건을 놓고 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조금 진정하고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반신욕을 하고 있었는데 리조트에서 전화가 와서 얼른 받았다.


“문의하신 핑크색 아기 이불 찾았습니다. 직접 가지러 오셔도 되고 착불택배로 받으셔도 되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착불로 받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받으실 주소 불러주세요.”


주소를 알려주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려고 욕실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오빠!!!!!!!! 수지 딸기이불 찾았데!!!!!!!!! 택배로 보내준데!!!!!!!!!!”


“진짜?!!!!!!!  좋다!!!!!!!! 수지야 딸기이불 찾았데!!!!!!!!!”


거의 승리의 함성이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으니 더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 없이 그냥 잘 돌아왔어도 좋은 여행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물건을 하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게 되니 뭔가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애착이불은 아이에게 또 얼마나 더 소중해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딸기이불을 찾았다는 말에 수지도 좋아했다. 딸기이불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 모두 감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진짜 이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수지의 애착이불이 택배로 도착했다. 며칠 만에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수지는 그토록 기다린 딸기이불을 보고 정말 반가워하며 좋아했다. 간절히 기다린 반가운 친구 ‘딸기이불’을 만나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아이의 얼굴은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게 했다.


‘이렇게 무사히 잘 돌아와 줘서 고마워 이불아.’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아이의 애착이불이 이번 여행의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이 되었다.  




잃어버린 상황만 보면 일단 안 좋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일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했고 배운 것들이 있다. 원래도 소중했던 물건이 더 소중해졌고, 무사히 찾게 된 것에 큰 감사를 느꼈다. 비 온 뒤 맑음 인 것처럼 잠시 비가 온 것 같은 상황이 지나고 나니 더 밝은 햇살이 나타났다.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 사소한 경험을 통해 얻은 사소한 행복이 이번 여행을 더 감사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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