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역은 지역 특성에 따른 산업을 육성한다. 다른 지역에 없는 지역 자원은 지역 산업의 투입재가 된다. 소비를 통해서도 지역 산업이 생성된다. 지역의 차별적 환경이 특색 있는 소비를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이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지역 환경에서 파생된 지역 산업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 '작은 도시 큰 기업'이다.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삿포로맥주는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될 것이다.
「さっぽろの街と共に歩むサッポロビール」- 삿포로 도시와 함께하는 삿포로맥주. 이 문구는 단순한 기업 슬로건을 넘어, 한 기업이 지역과 맺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삿포로맥주의 역사는 곧 홋카이도 개발의 역사이자, 일본 맥주 산업의 역사다.
1869년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 개발을 위해 개척사(開拓使)라는 행정기관을 설립했다. 개척사는 홋카이도 개발 과정에서 맥주의 필요성을 인식했고, 1875년부터 정부 농장에서 맥주 제조용 홉 재배를 시작했다. 1876년에는 공식적으로 맥주 제조를 결정했는데, 홋카이도의 차가운 기후와 깨끗한 물, 그리고 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맥주 원료는 양조에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1880년대에 이르러 양조기술이 안정화되었고, 1886년에는 민영화되어 삿포로맥주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887년에는 최초의 라거맥주를 생산했으며, 1890년에는 지금의 삿포로 클래식의 전신이 되는 맥주를 출시했다. 이 시기에 확립된 품질과 맛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03년, 삿포로맥주는 중요한 도전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국 시장 진출을 위해 도쿄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지역 기업에서 전국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닛폰(일본)맥주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했다. 이는 지역 브랜드를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닛폰맥주' 전략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삿포로맥주는 1956년,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전국 브랜드를 지향했던 '닛폰맥주'에서 다시 지역성을 강조하는 '삿포로맥주'로 돌아간 것이다. 이와 함께 시작된 '홋카이도 한정 판매'는 회사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부활'은 단순한 브랜드 변경이 아니었다. 전국 기업으로 성장했던 회사가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결정은 역설적으로 삿포로맥주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지역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핵심 가치로 삼은 것이다.
삿포로의 지역 중심 전략은 1970년대 이후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많은 일본 청년들이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홋카이도는 이들의 로망이 되었다. 광활한 대지, 깨끗한 자연환경, 그리고 다른 일본 지역과는 다른 개방적인 문화가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영화 '해피해피레스토랑'이나 '실'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홋카이도는 꿈의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홋카이도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은 자연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광활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한 낙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을 넘어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현재 홋카이도는 일본 전체 우유 생산량의 50%를 담당하는 낙농업의 중심지다. 이를 기반으로 유기농 농산물 생산, 치즈 제조, 요구르트 등 유제품 가공은 물론, 이를 활용한 레스토랑과 카페 문화까지 발전했다.
특히 주류와 식품 분야에서 홋카이도만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삿포로맥주를 시작으로 한 주류 산업은 1934년 설립된 니카위스키로 이어졌다. 요이치 증류소에서 만드는 니카위스키는 홋카이도의 차가운 기후와 깨끗한 물을 활용해 스코틀랜드 위스키에 버금가는 품질을 인정받았다. 또한 1983년 창업한 로이스(ROYCE')는 홋카이도의 신선한 유제품을 활용한 초콜릿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홋카이도의 자연환경은 다양한 식품 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
이러한 산업들은 단순한 생산과 소비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도시의 바쁜 삶을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유기농 식재료로 건강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문화, 수제 맥주와 치즈로 대표되는 장인정신 등이 그것이다. 이는 대규모 공장식 생산이 아닌, 소규모 생산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홋카이도는 종종 '일본의 캘리포니아'로 불린다. 두 지역 모두 개척지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환경을 활용한 농업과 관광이 발달했다. 한국의 제주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 지역 모두 중심 지역과는 다른 개방적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청년들의 꿈의 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차이점도 뚜렷하다. 캘리포니아가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첨단 산업을 발전시켰다면, 홋카이도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산업에 집중했다. 제주가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홋카이도는 보다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차이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책적 선택을 반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삿포로맥주의 성공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삿포로맥주는 단순한 기업의 성장을 넘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삿포로 도시와 함께하는 삿포로맥주'라는 슬로건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더욱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겸손함으로 시작된 이 여정은,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현대의 흐름과 맞물려 더욱 빛나는 성공 스토리가 되었다. 오늘날 홋카이도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많은 청년들에게, 삿포로맥주의 이야기는 여전히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