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모델
크리에이터 타운은 예술가와 더불어 다양한 산업의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문화예술 시설과 예술가가 집적된 문화지구와는 다른 개념이다. 크리에이터 타운에서는 예술가와 함께 디자이너, 기획자, 창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교류하며, 이를 통해 혁신적인 콘텐츠와 비즈니스가 탄생한다. 현대 도시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의 존재는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이자 도시 혁신의 거점이 되고 있다.
본 글은 크리에이터 타운의 대표적 사례인 홍대의 발전 과정과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 먼저 홍대가 태동기부터 확장기까지 3단계에 걸쳐 진화해 온 과정을 살펴본다. 이어서 홍대의 성공 요인을 건축환경과 홍익대학교의 역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홍대 사례는 크리에이터 타운의 성공이 건축환경과 콘텐츠 생산 기반이라는 두 축의 균형 잡힌 발전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홍대의 진화 과정
홍대 크리에이터 타운은 태동기, 과도기, 확장기 등 세 단계로 형성되었다. 태동기는 독립 크리에이터가 출현하고 문화씬이 형성된 시기, 과도기는 글로벌 브랜드가 진입하고 상업화가 진행된 시기, 확장기는 도시산업화 과정으로, 골목산업과 문화산업, 디자인산업이 순차적으로 집적된 시기다. 이 발전 과정에서 '인디'(독립과 실험), '소셜'(교류와 공유), '디자인'(미학과 혁신)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가 홍대 크리에이터 산업을 관통했다.
태동기(1990년대 후반)에는 홍익대학교의 예술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실험적인 문화 활동을 시작했다. 예술가 스튜디오와 작업실을 중심으로 독립 예술가가 집적하고, 명월관, 조커레드, 클럽 108, nbnib와 같은 클럽을 중심으로 인디뮤직씬이 형성되었다. 동시에 1990년대 초 압구정동에서 시작된 카페문화가 홍대에 진입, 1990년대 후반 피카소거리에서 예술가 아지트 문화와 결합된 독특한 도시문화로 진화했다.
과도기(2010년대 초반)에는 아디다스, 자라, 코데즈컴바인과 같은 대기업 브랜드가 진입했다. 홍대 출신 디자이너들은 글로벌 브랜드와 지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이는 이후 디자인산업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확장기(2010년대 중반 이후)는 홍대가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터 타운과 크리에이터 산업으로 진입하고 성장하는 시기다. 로컬산업, 문화산업, 디자인 산업의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기업이 홍대 크리에이터 산업을 견인했다.
예술적 감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크리에이티브 리테일’을 의미하는 로컬산업은 카페와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앤트러사이트, 빈브라더스, 매뉴팩트, 펠트, 프릳츠 등의 커피 전문점, 창비와 북티크 같은 북카페, 유어마인드 같은 독립서점이 등장했다. 여기에 폴앤폴리나, 리치몬드과자점과 같은 로컬 베이커리도 가세했다. 로컬산업은 이후 어반플레이(어반 콘텐츠 기획사), 로컬스티치(코워킹스페이스), 라이즈호텔(로컬호텔), 스트리트 H(로컬매거진), 쿠움파트너스(동네부동산개발)와 같은 새로운 커뮤니티 기반 콘텐츠 산업으로 진화했다.
문화산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담당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형화되어 YG엔터테인먼트, WM엔터테인먼트 같은 기업들이 입주했으며, 출판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홍대 일대에 집적되었다. 이들은 홍대가 가진 문화적 분위기와 창의적 환경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한류 문화 콘텐츠 산업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디자인 산업은 독립 디자이너들의 실험적 시도에서 시작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전 경로를 보여준다. 초기에는 홍대 출신 디자이너들의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 편집숍들이 독창적인 디자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창의적 기반 위에서 스타일난다, 젠틀몬스터와 같은 디자인 브랜드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9CM 같은 패션 플랫폼도 등장했다. 이들의 성공은 홍대 디자인 산업이 로컬 단계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홍대의 성공 요인
홍대의 성공은 건축환경과 홍익대학교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의 균형적 발전에서 비롯되었다. 건축환경 측면에서 홍대는 8개 행정동을 아우르는 광역적 저층 주거지역으로, 1960년대 조성된 단독주택을 기반으로 한 도시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과 휴먼스케일의 가로 환경, 양질의 건축물과 정돈된 가로 구조, 점진적 변화가 가능한 유연한 도시 조직, 다양한 규모의 상업 공간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환경이 특징이다.
홍익대학교는 지속적인 창조적 인재 공급원이자 예술적 실험과 혁신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직접적인 개입 없이도 자생적 문화 네트워크의 형성 기반을 제공했으며, 창의적 교육을 통한 문화 생산자를 양성했다. 또한 글로벌 트렌드와 로컬 문화의 접점 역할을 하며, 실험적 문화 활동의 인큐베이터 기능을 수행했다.
크리에이터 타운 조성의 핵심 교훈
홍대의 사례는 크리에이터 타운 조성에 두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첫째는 유연한 건축환경이다. 홍대는 8개 행정동을 아우르는 저층 주거지역의 도시 조직을 바탕으로, 다양한 규모의 문화 활동과 창조산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둘째는 지속가능한 콘텐츠 생산 기반이다. 홍익대학교라는 크리에이터 스쿨이 지속적으로 창의적 인재를 공급하고 문화적 실험의 장을 제공했다.
다른 지역에서 크리에이터 타운을 조성하고자 할 때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건축환경 측면에서는 대규모 건축디자인 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의 물리적 기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존 도시 조직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건축마을'의 형성을 유도하는 도시재생 접근이 중요하다.
콘텐츠 생산 기반 측면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콘텐츠 생산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홍대와 같은 크리에이터 스쿨이 없는 지역의 경우, 로컬 메이커스페이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메이커스페이스는 지역의 창의적 인재들이 모여 실험하고, 학습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결론
크리에이터 타운의 성공은 건축환경과 콘텐츠 생산 기반이라는 두 축의 균형 잡힌 발전에 달려있다. 이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 조건이다. 문화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 크리에이터 타운을 지향할 경우, 홍대의 교훈을 바탕으로 건축환경 개선과 콘텐츠 생산 기반 투자를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