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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의 비극: 제7화 공원

by 골목길 경제학자

한국 도시의 비극: 제7화 공원


1. 도입부: 왜 공원은 도시를 살리지 못하는가?

한국의 공원은 역설적 공간이다.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를 위해 조성된 공간이면서도, 정작 그 주변은 도시의 활력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수많은 시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은 주변 상권과 도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구의 도시들에서 공원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런던의 하이드파크, 파리의 튈르리 정원 등은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상업, 문화, 관광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공원 자체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문화 명소로 기능하며, 공원 주변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활력 있는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원은 다르다. 시민들의 이용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권은 침체되어 있고, 도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지 못한다.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조성되었지만, 정작 이들 공원이 도시의 '생활권 중심'으로 기능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 한국의 공원은 도시를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2. 광주 푸른길 사례: 8.1km의 긴 공원, 단절된 도시 활성화

광주 푸른길은 이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광주 남구에 위치한 푸른길은 총 8.1km에 달하는 대규모 선형 공원으로, 일일 이용자가 1만 5천 명에 이르는 광주의 대표적인 시민 휴식 공간이다. 경전선 폐선 부지를 활용해 조성된 이 공원은 2010년 조성을 시작하여 2014년 전 구간이 완성되었으며, 시민 참여형 도시계획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길 주변 상권 활성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백운 스트리트 푸드존 같은 경우 "컨테이너형 가건물을 임대하여 길을 따라 음식점들을 입점시킨 포장마차 느낌의 장소인데, 2호선 공사로 인해 교통이 많이 불편하다보니 아직 활성화가 잘 되지 않았다." 2023년 백운고가 철거 후 푸른길 브릿지가 개통되어 단절되었던 공원이 연결되었지만, 여전히 공원의 높은 이용률이 주변 지역의 경제적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푸른길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면 현재 도시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푸른길은 구간별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산수동 구간은 상대적으로 쾌적한 공원 환경을 제공하지만 주변 상권과의 접근성이 부족하다. 반면 백운동 구간은 "바로옆에 큰 도로가 있어서, 주거지역의 공원보다는 인도옆 작은 산책로처럼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원보단 인도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쾌적한 구간은 상권 연결이 부족하고, 상권과 가까운 구간은 공원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다.


더욱이 8.1km라는 긴 구간에 걸쳐 조성된 선형 공원의 특성상, 특정 지점에 상권이 집중되기보다는 공원 이용객들이 분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백운동 구간의 백운 스트리트 푸드존 같은 경우 "컨테이너형 가건물을 임대하여 길을 따라 음식점들을 입점시킨 포장마차 느낌의 장소인데, 2호선 공사로 인해 교통이 많이 불편하다보니 아직 활성화가 잘 되지 않았다." 관 주도의 인위적 상권 형성에 따른 기존 상인들 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며, 푸른길을 따라 조성 예정인 500m 구간의 로컬푸드존 역시 실질적인 활성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3. 푸른길공원이 특수한 사례인가? 전국 공원의 공통된 과제

푸른길공원의 사례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한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전국의 대부분 공원들이 시민 이용도와 무관하게 도시 활성화에 기여하는 정도가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공원 설계 철학의 과제가 가장 크다. 한국의 공원은 대부분 '도시에서 벗어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공원과 도시 상권 사이에 의도적인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설계 철학은 공원을 도시와 분리된 섬으로 만들어, 공원 이용객들이 주변 상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광화문광장과 전주역 첫마중길 등은 길 가운데 공원을 조성하여 인근 상권과 연결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의 경우 1차 조성에서는 이러한 한계가 뚜렷했으나, 2차 개편에서 세종문화회관과 연결시키는 등 개선을 시도했다. 청계천 역시 인도와 분리된 지하에 조성되어 일부에서는 지상으로 하천을 들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공원과 광장은 모두 상권 활성화를 위한 유동인구 창출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의 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접근성과 연결성의 부족이다. 많은 공원들이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공원과 주변 상권을 연결하는 보행 동선이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다. 공원 입구와 상권 사이에 큰 도로가 가로막고 있거나, 공원 이용 후 자연스럽게 상권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공원 주변 토지 이용의 문제다. 공원 인접 지역이 주거지역으로만 지정되어 있거나, 상업 시설 입지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권 형성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또한 공원 주변에 문화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하여, 공원 이용이 단순한 산책이나 운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4. 정부 해결책 - 공원 복합화와 문화시설 도입의 과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대표적 해법은 공원 복합화와 문화시설 도입이다. 광주시 역시 푸른길 브릿지 위에서 장터와 버스킹 공연을 열고, 증강현실 콘텐츠 체험 시설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인근에 공영주차장과 로컬푸드직매장, 청년센터 건립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공원을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도시 활성화를 이루기에 한계가 있다.


국내 공원 복합화 사례를 살펴보면 그 과제가 명확하다. 광주 푸른길공원의 경우도 브릿지 위에서 장터와 버스킹 공연을 열고, 증강현실 콘텐츠 체험 시설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관 주도의 인위적 상권 형성에 따른 기존 상인들 반발도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공원 복합화 사업이 문화센터, 체육시설, 편의시설 등을 공원 내부에 배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은 공원 이용객들에게는 편의를 제공하지만, 공원 외부의 주변 상권과의 유기적 연결로는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히려 공원 내부에 시설이 집중되면서 공원 이용객들이 외부로 나가지 않게 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복합화 시설들의 운영 지속성이다. 초기 투자비는 많이 들지만 실제 이용률이나 수익성이 떨어져 유지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방 도시의 경우, 인구 감소와 이용 수요 부족으로 인해 복합시설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의문시된다.


공원 복합화는 대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하드웨어 중심의 접근이다. 이는 공원 이용 패턴이나 시민들의 실제 수요보다는 가시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도시 활성화 효과는 제한적인 또 다른 도시 문제를 양산할 위험이 있다.


5. 건축 주도 크리에이터 타운이 답이다

한국의 공원이 진정한 도시 활성화의 중심이 되기 위한 대안적 접근은 무엇일까? 필자는 연남동 경의선숲길 모델을 벤치마킹한 건축 주도 크리에이터 타운의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원 중심 도시재생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공원과 상권 사이의 접근성 개선이다. 푸른길공원의 동명동 구간 사례에서 보듯이, 공원과 상권을 연결하는 지점에 새로운 건축물을 공급하여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연남동 경의선숲길이 성공한 이유는 공원이 도시와 분리되지 않고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원을 걷다가 자연스럽게 카페나 상점으로 들어갈 수 있고, 상권에서 쇼핑하다가 공원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기적 연결이 핵심이다.


핵심은 공원 접경지역의 건축환경 조성이다. 연남동의 성공 요인은 경의선숲길과 인접한 저층 건축물들이 제공하는 다양하고 유연한 공간 때문이다. 작은 규모의 카페, 식당, 상점들이 공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공원 이용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보행 친화적인 골목길 환경이 공원과 상권 사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푸른길공원과 같은 기존 공원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가능하다. 공원과 상권을 연결하는 핵심 지점에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건축물들을 공급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원에 문화시설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원 이용객과 상권 이용객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건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공원 중심 크리에이터 타운은 예술가, 소상공인, 스타트업이 공원을 매개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연남동에서 홍대 문화가 경의선숲길을 통해 확산되면서 독특한 골목상권이 형성된 것처럼, 다른 지역의 공원들도 지역 고유의 문화적 자원과 결합하여 차별화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포항의 철길숲 같은 경우, 지역의 대표 산업인 철강업과 연계한 '스틸 아트 메이커스페이스'를 조성하여 공원과 창작 활동을 연결하는 모델을 제안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공원에 문화시설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원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향식 접근이다. 정부가 위에서 계획하여 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창작자들과 소상공인들이 자발적으로 공원 주변에 모이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연남동이 민간 주도로 상권이 형성된 후 공공이 경의선숲길로 이를 지원한 것처럼, 공원 정책도 이러한 자생적 동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의 공원이 진정한 도시 활성화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시설 중심의 하드웨어 접근이 아니라, 공원과 상권 사이의 접근성을 높이는 건축적 개입을 통한 크리에이터 타운 조성이 필요하다. 푸른길공원의 동명동 구간에서 보듯이, 공원과 상권을 매개하는 건축물들이 공급될 때 비로소 공원은 도시 활성화의 진정한 동력이 될 수 있다. 건축이 주도하는 공원 중심 크리에이터 타운은 단순히 공원의 기능 확장을 넘어, 한국 각 지역이 공원과 상권의 유기적 연결을 통한 새로운 도시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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